[서평] '철학박사 기독교인' 조범의 <하늘문이 열리는 복>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언젠가부터 플로리다 지역에 '괴문서'가 나돌고 있다는 풍문이 들려왔다. 깨알같은 글씨로 촘촘히 채워진 꽤나 두툼한 이 프린트물이 나돌면서 함께 들려온 얘기는, 출판물이 넘쳐나는 시대에 술술 읽힐 것 같지 않은 문서를 '왜' 돌리냐는 것이었다. 최근 그 괴문서가 산뜻한 인쇄물로 시중에 얼굴을 드러내며 '왜'에 대한 답변을 조곤조곤 토해냈다.

철학박사이자 침례교회 집사인 조범이  펴낸 <하늘문이 열리는 복>(도서출판 진흥, 263쪽)은 초두부터 심상치 않은 문제제기가 눈에 들어온다. "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성경말씀에 관한 글을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는" 저자가 흔해 보이면서도 만만치 않은 제목의 책을 내기 위해 세운 원칙은 우선 '의문'을 모든 (성경)문제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바른 의문이 바른 답을 가져온다"

 

<하늘 문이 열리는 복>은 저자가 적시한 대로 "바른 의문만 가지면 바른 답으로 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쓰여진 책이다. 일찍이 마이애미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저자는 "의문이 본능처럼 몸에 배어 있다"면서 "의문을 품어 답을 찾지 못할 때는 그 의문을 '우문'으로 여기겠다"고 선언한다.

저자가 수년 전부터 괴문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도대체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생명의 책'에 대해 의문을 품지않고 교회에 나가서 예배하고 봉사하고 짐짓 직분을 받고 하는 일들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 어딘가에 명토박지는 않았지만, 깨달음보다 입과 몸이 먼저 나가는 신앙적 행태에 제동을 걸어보겠다는 의도가 곳곳에 엿보인다.

평자는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미소를 지었다. "아냐 아냐, 나 혼자 직접 해볼래!"라고 고집을 부리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령 저자는 성경에 나와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만 꼼꼼하고 순박하게 계산하여 인류역사를 6127년으로 잡아 낸다. 말라기 3장의 말씀을 해석하면서 종교 정치 사회사적 배경은 거두절미한 채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은 도둑질'이라고 못박는다.


이밖에도 저자가 품어온 의문들은 족히 1천 수백 년도 넘었을 의문들이기에 교파에 따라 여러 갈래로 답변들이 주어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이런 답변들을 아예 접하지 않은 듯 '순수한' 태도로 접근하여 기왕의 성서해석학, 성서고고학 등을 무색하게 한다.

 

십일조에 대한 해석만 해도 그렇다. 애당초 십일조라는 것이 고대 신정국가에서 제사그룹과 기층민을 위한 세금이었다가 예수의 죽음으로 휘장이 갈라지며 폐지된 율법 규례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 물론 한국의 보수 근본주의 교회들은 그게 무슨 개풀뜯는 소리냐며 거부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각종 의문들에 답을 구하기 위해 칼뱅, 루터, 어거스틴 등 고전적인 기독인물들을 책 초반에 종종 인용하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극히 제한적이다.

저자의 성서이해는 매우 순박하지만 다분히 목적 지향적인 면이 강하고, 이게 책 전체의 뼈대를 이룬다. 천신만고 끝에 예수님을 만나 '생명사건'을 경험한 삭개오의 일화가 갑자기 장수와 부귀의 논리로 전이되며 '하늘문이 열리는 복'을 설명하기 위한 사건으로 환원(reduct)되고 마는 예가 그 하나다.

 

"…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생명이 제일이다. 생명나무는 가지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우편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가지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다. 장수와 부귀를 얻고 나가는 길의 첩경은 다 평강이다. 따라서 지혜자가 얻은 생명나무가 부실해 지면 그 가지들이 열매을 맺지 못하지만, 생명나무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막 12:30) 하나님을 사랑하듯 사랑할 때 그 가지들은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삭개오의 회심으로 나타난 '생명사건'을 훌쩍 부귀와 장수로 연결시키면서 "예수 믿는 자가 가난한 것은 본인에게도 좋지 않다… 예수 믿는 자는 그의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전형적인 후기 청교도주의적 신앙고백을 토해낸다.

'생명'과 '구원'을 믿는 자의 최고 가치로 여기고 있는 듯한 서술들이 언뜻언뜻 보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관심이 일정하게 '하늘문을 여는 복'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최근 한국 보수교회의 '고지론', '긍정의 신학', '믿음 도구주의'에 바로 맞닿아 있다.

 

"필자는 하늘 문이 열리는 복이 어떠한가를 생각할 때, 구름보가 터져 쏟아지는 소낙비를 떠올린다. 검은 구름은 하늘에 떠있는 한 조각에 지나지 않아도 그렇게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내는데, 하늘에서 본격적으로 문을 열고 복을 쏟아 내리면 얼마나 더 엄청날까를 생각해 본다.(중략) 하나님은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셨다(신 11:26). 복 받을 자와 저주 받을 자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기준은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는가 안하는가이다. 하늘문이 열리는 복을 받기 원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신 28:3~6) (중략)

"순종하면 하늘문이 열리고 복세례를 받는다"?

한마디로,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면 하늘문이 열리고 "구름보가 터져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듯 엄청난 복세례를 받는다는 것이다. 저자의 '하늘문 열기'의 결과에 대한 진술을 좀더 들어보기로 한다.

 

"복은 믿음이라는 토양 위해 자라는 생명나무의 가지이다. 즉, 복이라는 찬송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가 얻는 영생에 따라오는 덤이다. 이 덤이 우리 믿는 자가 세상에 사는 동안 살맛나게 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린다. 이것이 바로 영생을 얻은 우리와 하나님의 교제 모형이다."


저자가 순종과 복을 주고 받기 식 교환 가치로 놓고 지속적으로 강조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위와 같은 진술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저자가 이 책과 더불어 '간증'이라는 것을 한다면, 하늘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복을 받은 체험들이 쏟아져 나올 듯하다.

저자는 예정론과 더불어 기독교 신앙의 난제 중의 하나인 '자유 의지'를 설명하면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허락하신 것은 당신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스스 당신을 선택하여, 믿음으로 얻는 영생과 복을 누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며 끝내 '믿음 도구주의'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저자에 의해 '이성'의 상위 개념으로 설정된 '의지' 조차도 하늘문을 여는 복'의 주요 수단이 된다.

<하늘문이 열리는 복>은 오역과 생략 첨삭이 지뢰처럼 숨어있다는 한글성경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어문법적이고 문자적인 성경이해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찍이 시인 신동엽이 말한 것처럼 '먹구름을 하늘로 알고 살아' 오면서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아예 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이 태반인 한국교회 현실에서, 일개 평신도가 성경에 '의문'을 품고 '도해'를 시도했다는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특히 책 전반부 중간 중간에서 성서본문을 탁월한 필치로 치밀하게 이리저리 연결한 솜씨는 예사롭지가 않다. 나름 수년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면 성경 전체를 훓었을 터이다.

평자가 책 내용에 대해 포괄적 서평으로 끝을 맺고, 가급적 세세한 반론적 서평을 자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핏 보아도 엄청난 시간과 정력을 쏟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엮어나갔을 책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이 종교적 담론인데다, 최근들어 자신의 은사를 이만큼 충실하게 활용한 평신도 기독교인을 본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믿음 도구주의'에 방향이 맞춰진 책

'믿음을 뭔가를 달성하기 위한(또는 얻기 위한) 도구'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끝내 사족 한마디를 붙여야 겠다.

 

'믿음은 믿음에서 끝날 뿐, 결과는 인간의 몫이 아니다'는 신념의 순명파 기독교인들이 있어 왔다는 것을 저자에게 소개하려 한다. 종말론적 과정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저자의 책에 나타난 성서 이해와 기독교 신앙 프레임에 펄쩍 뛰며 격한 시비를 걸 것이다. 예수님은 물론 그 많은 선지자들과 사도들, 그리고 자본이 하나님을 대체한 세속도시의 '남은자'들은 저자가 말하는 '복'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다 갔기 때문이다.

좀 실례가 될 수 있는 표현으로 서평의 끝을 맺고자 한다. 종종 인간은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려는 꿈을 자주 꾸다보면 책을 읽어도 '자기 맞춤형'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거기에 모든 것을 투사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신앞의 단독자'로 서려는 기독인이라면 '성경스스로가 말하도록 하라'는 개혁자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온당하다.

 

읽는 도중 '용을 그리려다 이무기를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을 여러차례 가졌던 평자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문득 바둑 고수의 오래된 충고가 떠올랐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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