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독일 적개심 해소에 합동 사업 제안한 쟝 모네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 유니버시티 교수) = 새해 평강과 만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치계는 분열 모습을 보입니다. 친여는 친여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대치현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견해가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른 계파간에 담이 더욱 높게 그리고 더욱 단단하게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학연 지연 및 종교관의 차이로 인하여 생긴 분열 현상은 개탄을 자아냅니다. 한 국가나 정치계 또는 시회계파가 전혀 없을 수도 없고 계파가 있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계파간에 담만 높이 쌓이고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안보인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처럼 좁은 나라에서 갈라지는 경향은 두드러지는데 그들의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노력은 너무도 미약한 것 같습니다. “내 방법 대로가 아니면 적이다”는 전제가 강하게 작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1 운동 당시에는 종교도 지연도 학연도 초월했었습니다. 33명의 독립선언서의 서명자들은 개신교, 카돌릭, 천도교, 유교, 불교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아무런 대치감정 없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한다는 큰 기치 하에 함께 뭉쳤었습니다. 그런 통합정신이 아쉽습니다.
북 아일랜드에서는 카톨릭교인들과 개신교인들이 서로 적대하여 수십년간 서로 살상을 계속해 왔습니다. 최근에 약간 잠잠하지만 종파간의 적개심은 아직도 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담을 쌓는 세력보다 다리를 놓는 세력이 일찌기 출현을 했더러면 무수한 폭력과 살상을 피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한 때 한 나라이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종료된 후에 인도와 피키스탄은 갈라졌고 파키스탄도 방글라데시와 피키스탄으로 갈라졌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는 쉽게 해소할 수 없는 적개심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있는 카쉬미르를 지배하려는 의도하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오래 지속되었고 그들은 상대를 위협하기 위한 무기를 개발했으며 드디어는 양국 다 핵무기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들 두 나라 사이에도 담을 쌓는 세력보다 다리를 놓는 세력이 필요 했습니다.
이라크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소수파인 수니파와 다수파인 시아파 간의 적개심은 그 골이 너무 깊습니다. 수니파의 사담 후세인이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후에 수니파가 아닌 시아파와 제 3세력인 쿠르드 족을 대량 학살했습니다. 이제 사담 후세인과 그의추종자들이 처형되었지만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살상 행위는 식을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상대파를 살상하기 위하여 어린 아이들의 몸에 폭탄을 장착하여 자살 폭파를 시도하는 잔인무도한 종파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코란을 신봉하면서 그와 같이 깊은 적개심을 강화해 온 증오의 역사를 바로 잡을 세력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지금도 종파간의 담은 높아지고 다리를 놓는 세력은 출현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보호 하에 민주적인 정부의 틀이 잡혔고 여러 번의 자유 선거에 의하여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국민의 80%가 선거에 참여했지만 분열된 종파들을 한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융합시키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마도 세계역사상 적개심을 해소시키는 다리를 가장 훌륭하게 놓은 인물은 프랑스이 쟝 모네 (Jean Monnet)일 것입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세계 2차 대전중에 서로 대적하여 전쟁을 치룬 이웃이었습니다. 당연히 두 나라 간에 적개심의 담이 높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 감정의 담을 헐기 위하여 모네씨는 양국간에 합동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처음에 시도한 사업은 약국 산업에 필요한 자원의 공동 개발과 관리이었습니다. 인종과 국적에 상관 없이 인간은 같은 일에 참여를 하면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는 원리를 실험한 것입니다. 그런 사업은 큰 성과를 거두었고 계속 이어지는 공동 사업으로 인하여 독일과 프랑스는 지금 가장 친근한 우방국가가 되었습니다. 쟝 모네 같은 인물과 세력이 지금 처럼 이쉬운 때는 없었을 것입니다.
기타 이스라엘의 렙 모쉐 (Reb Moshe)라는 사람은 자기의 가족과 친척이 대부분 히틀러의 잔인한 손에 희생이 되었지만 그는 유대인과 회교도 간의 친목 활동, 유대인과 카톨릭 간의 화합운동, 그리고 유대인과 개신교 간의 이해 운동을 적극 전개하고 있고 그의 노력은 점차적으로 결실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동포 사회에서도 담을 쌓는 사람들보다 다리를 놓은 시람들이 많이 출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