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문학비평가이기도 한 호르헤 캐리온(Jorge Carrion)씨는 온라인 기반이 확대되는 가운데서도 오프라인 서점은 “세계를 이해하는 완벽한 장소”이며 또한 “공공서비스 차원에서의 중요성을 가진 사적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여행하면서 찾아낸 서점을 주제로 근래 출간한 산문집에서 여행자들이 버킷 리스트에 올릴 만한 서점들을 소개했다. 사진은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에 있는 'El Ateneo Grand Splendid' 서점. 하지만 캐리온씨는 같은 도시의 'Eterna Cadencia' 서점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추천했다.
스페인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호르헤 카리온, 신작 <Bookshops>에서 추천
지난 2017년 말,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으로 170년의 역사를 가진 ‘Birchalls’가 문을 닫았다. 타스마니아(Tasmania) 론세스톤(Launceston)에 있던 이 서점은 1844년 샘 테그(Samuel Tegg)씨가 호바트(Hobart)에 있는 서점의 아울렛으로 개점한 것으로, 이후 몇 명의 새 주인을 거쳐 1867년 앤드류 버챌(Andrew Birchall)씨가 사업 파트너가 되면서 서점 이름도 ‘Birchalls’로 변경, 2세기 가까이 이어오던 곳이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지식정보 유통의 변화는 서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기반의 대형 서적 및 음반 유통사인 ‘Borders’도 최근 수년 사이 상당히 위축됐다. 이 기업은 전 세계에 영업점을 갖고 있던 그야말로 ‘메가 체인’(mega chain) 서점이다.
오프라인 서점이 위축되는 반면 전자출판 서적은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온라인을 통한 유통망도 서적 소비자들을 빠르게 흡수하는 상황이다. 호주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아마존’(Amazon)이 근래 호주에 창고를 마련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 속에서도 소위 재래식이라 할 수 있는 서점(bricks-and-mortar bookshop)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스페인 작가 호르헤 캐리온(Jorge Carrion)씨 입장에서, 책장 가득 책을 선보이는 이런 서점들은 일반 독자들에게 행운일 수 있다. 소설가, 에세이스트, 학자이자 문학비평가로 활동하는 그는 오프라인 서점에 대해 “세계를 이해하는 완벽한 장소”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수년 동안 개인적 즐거움과 연구를 위해 전 세계 유명 서점들을 순회했다. 그리고 이 여행을 통해 그는 서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마치 연인에게 편지를 쓰듯 각 서점에 대한 글을 썼고, 문화적-지적-역사적 중요성을 담았다. 그렇게 해서 나온 그의 산문집이 <Bookshops>이다.
영문판으로 출간된 <Bookshops>. 스페인어 원본인 이 책은 현재 포르투갈어 및 영어 번역본이 나와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서점에 대해 “공공서비스 차원에서의 중요성을 가진 사적 공간”이라고 정리했다. 캐리온 작가는 전 세계 서점들 50개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멜번(Melbourne)에 있는 ‘Embiggen Books’를 “Top 10에 들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가 생각하는 상위 10개 서점에는 ‘Embiggen Books’와 함께 J‘ohn Sandoe Books’(London, UK), ‘Librairie Ulysse’(Paris, France), ‘Libreria Rafael Alberti’(Madrid, Spain), ‘Robinson Crusoe 389’(Istanbul, Turkey)가 포함되어 있다.
최근 ABC 방송의 문화 섹션인 ‘ABC Arts’는 호르헤 캐리온씨의 <Bookshops>에서 다시 5개의 서점을 다시 엄선, 소개했다.
■ Eterna Cadencia(Buenos Aires, Argentina)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점이 있다. ‘El Ateneo Grand Splendid’ 서점이다. 이 도시를 방문하는 여행자들도 그 명성에 따라 대개는 이 서점으로 몰려든다. 하지만 캐리온씨는 ‘Eterna Cadencia’ 서점을 더 높이 평가했다. 보다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이미지에 대해 그는 “목재 바닥과 화려한 팔걸이 의자, 책장의 훌륭한 서적들, 다양한 문학 관련 행사가 열리는 옥외 카페”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애서가들에게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에 있는 'El Ateneo Grand Splendid'는 널리 알려져 있다. 반면 캐리온씨는 이 도시의 또 다른 서점 Eterna Cadencia(사진)을 소개하면서 “냉정하고 우아하며 고전적”이라고 설명한다.
■ Ler Devagar(Lisbon, Portugal)
캐리온씨는 <Bookshops>에서 “서점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소파, 의자를 마련하고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서점이며 다른 하나는 서점 내에서 책을 읽은 것을 금하는 곳이다. 하지만 두 형태 모두 무료로 방문할 수 있고 안전하며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캐리온씨가 이처럼 언급한 것은 바로 리스본(Lisbon)에 자리한 ‘Ler Devagar’ 서점을 소개하기 위한 것. 서점 이름인 ‘Ler Devagar’는 포르투갈어로 ‘천천히 읽으세요’라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이 서점은 앞에서 언급한 형태 가운데 전자에 해당한다. 3층 구조로 된 서점 공간의 사방 벽은 천장에서 바닥까지 세워진 책장이 있고 내부 중앙에는 골동품 인쇄기가 있어 이 건물의 오랜 기원을 짐작케 한다.
서점과 함께 카페가 있고 정기 이벤트가 열리는 이곳은 서적을 판매하는 상업적 매장이라기보다는 공동체 예술 공간처럼 느껴진다.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에 있는 서점 ‘Ler Devagar’. 3층 구조로 천장에서 바닥까지 내려오는 책장이 있으며 소파와 의자, 카페가 마련되어 얼마든지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다. 서점 중앙에는 오래된 골동품 인쇄기가 있어 이 건물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 City Lights(San Francisco, USA)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City Lights’는 이 도시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유명한 서점이며, 포르투갈 북서부 포르투(Porto)의 ‘Lello Bookstore’, 파리(Paris)의 ‘Shakespeare and Company’ 등을 포함하는 서점그룹 중 하나이다. 캐리온씨는 서점 자체가 문화역사적 부분을 담고 있어 박물관으로 변모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당연히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캐리온씨는 맨 먼저 이 도시의 아이콘인 이 서점을 찾았다.
이 서점의 판매원이자 시인인 로렌스 펠링게티(Lawrence Ferlinghetti)씨는 “여행자들, 실제 독자들 및 이 도시의 고객을 위한 공간으로 ‘City Lights’가 유지하고 있다”면서, 캐리온씨는 “이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서점 ‘City Lights Books’. 이 서점은 미국 전역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 The Book Lounge(Cape Town, South Africa)
비록 많은 서점들이 수많은 장서가 있는 책장, 소파로 유명하지만 캐리온씨는 이 서점을 통해 “서점의 주요 특징은 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지난 2007년 남아공 케이프타운(Cape Town)에 문을 연 이 서점은 독자들이 이 서점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배려했다.
“서점 라운지는 멋진 선반과 큼직한 목재 테이블, 소파가 놓여 있으며 아래층에는 러그(rug)를 깔아 편안함을 준다”는 게 캐리온씨의 평이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 “전통적 서점이 그러하듯 편안하고 친숙한 멋을 준다”고 설명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Cape Town)에 있는 ‘The Book Lounge’ 또한 긴 책상과 편안한 소파를 구비해 모든 독자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Librairie des Colonnes(Tangier, Morocco)
탕헤르(Tangier)의 주요 대로변에 자리한 이 서점에 대해 캐리온씨는 “모로코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자, 이 도시에서 지난 60년간 이어온 가장 중요한 문화센터”라고 설명한다.
1940년대 말, 많은 수의 미국, 프랑스 작가들이 탕헤르에 정착했는데, 이 즈음인 1949년 미국 작가이자 작곡가인 폴 보울스(Paul Bowles)가 서점을 열었다.
서점을 찾는 이들은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미국 시나리오 작가), 트루먼 카포트(Truman Capote. 미국 소설가), 윌리엄 버로스(William S Burroughs. 미국 소설가), 장 주네(Jean Genet. 프랑스시인, 소설가), 아민 말루프(Amin Maalouf. 프랑스 소설가), 후안 고이티솔로(Juan Goytisolo. 스페인 소설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enar. 벨기에 태생의 미국 여성 작가), 베르나르도 베르톨로치(Bernardo Bertolucci. 이탈리아 영화감독),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영국의 유명 록 밴드) 등 당시 유명 작가, 예술가, 지식인들의 체취가 남아 있는 서점의 통로를 거닐 수도 있다.
캐리온씨는 “이런 점은 흥미롭지만 오랜 서점답게 책값을 놓고 흥정을 벌이는 옵션은 없으며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로 출간된 고정 가격의 서적을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모로코 탕헤르(Tangier)에서 60년 이상을 이어온 서점 ‘Librairie des Colonnes’. 1940년대 미국을 비롯해 유럽 각국의 예술가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 즈음 미국 작가 폴 보울스(Paul Bowles)가 문을 연 이곳은 당대 유명 작가, 예술가,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던 문화 공간이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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