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 혹은 실수 우려’
하와이사례 ‘낙원에서의 공포’
Newsroh=김원일 칼럼니스트
북미간 2차정상회담이 다가오며 한반도 핵전쟁위협은 줄어들었지만 지구촌의 핵전쟁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은 1987년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이 체결한 중거리핵전력 조약 탈퇴(脫退)를 발표했다. 미국과 러시아간 핵탄두를 제한한 뉴스타트 조약에서 미국이 탈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존의 핵보유국 외에도 북한 이란 등 핵을 가졌거나 개발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러시아 일간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의 류보피 글라노바 기자가 핵전쟁의 위협아래 놓인 현실을 진단한 ‘낙원에서의 공포’를 송고했다. 기사 전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1년전 하와이 제도에서 미사일 경보가 오작동하는 바람에 주민들은 장난이 아닌 실제 공포를 느꼈고 핵 위협이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2월초에는 미국의 중거리 핵전력 조약 폐기에 대한 최후통첩(最後通牒) 기간이 종료된다. 12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조약 이행 조건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이 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정황을 살펴볼 때 러시아도, 미국도 최종 일자가 도래할 때까지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어 조약은 무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현재는 세계적으로 핵 위협이 현저히 증가하여 군비 관련 핵심 조약을 파기하는데 적절한 시기는 아니다.
맑은 하늘에 청천벽력
미국의 가장 서쪽에 있는 하와이는 알로하 주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알로하란 하와이 원주민 언어로 만났을 때와 헤어질 때의 인사말이며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와이에서 안녕을 의미하는 말인 알로하는 곳곳에서 넘쳐흐른다. 겨울이 없고 휴가 시즌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며, 때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시절을 좇아 피어난다. 그리고 한 달 내내 열대 지역에서 관측할 수 있는 천문학적 현상들을 보기 위해 땅에 등을 대고 드러눕기도 한다. 작년에 일어났던 사건은 이곳 현지의 걱정 근심 없는 느긋한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2018년 1월 13일 이른 아침 하와이의 목가적인 일상은 미사일 경보로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하와이 주민들의 전화기 수천 대에 동시에 “탄도 미사일이 하와이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즉각 피할 곳을 찾으라. 이것은 훈련 경보가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현지 기자인 존 레트만은 이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미사일이 러시아가 아닌 북한으로부터 날아오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인정했다. 당시는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 말싸움이 가라앉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정부는 ICBM실험을 성공했다고 자랑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화염과 분노로 갚아주겠다고 위협했다. 이런 상태에서 하와이는 북한에 가장 가까운 미국의 주로 태평양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북한의 화염과 분노가 미국을 덮칠 경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레트만 기자는 전화의 메시지를 여러 번 읽은 후 자신이 왜 그렇게 하는지도 모르고 창문으로 달려가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그리고 수돗물이 끊길 것을 대비하여 목욕탕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았다. 그 다음엔 핵공격에 대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신시아 라자로프는 “전날 핏빛처럼 붉은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미사일 경보가 날아왔다. 처음엔 사실인가 생각했고 다음엔 친척들을 찾아 연락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가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은 딸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적인 폭격에 대비한 대피소는 하와이 섬에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목욕탕에 숨고 레스토랑의 냉장실에 들어가기도 하고 왜인지도 모르면서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계속 도망을 갔다. 이런 상황이 38분간 계속되었다. 38분 후에 그들의 핸드폰으로 경보가 오보(誤報)였다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하와이 섬의 비상사태부 직원이 단추를 잘못 눌렀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알렉스 웰러슈타인 스티븐스 공대 조교수는 무지와 공포와 운명주의가 모두 한데 섞여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은 민방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 이를 거부한다고 문제점을 꼬집었다.
우리는 깨어나야 한다
러시아 상황은 훨씬 더 나은가? 그럴 리가 없다. 당신은 가까운 폭탄 피난처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당신의 전화로 상기와 같은 메시지가 날아오면 어디로 피난할 것인가?... 2016년 윌리엄 페리 전임 미 국방장관은 허핑턴포스트 지에 기고한 기사에서 “현재 핵 재앙 위험은 냉전시대에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 좋게도 이를 잘 모르고 있다. 우리가 위험을 잘 모르기 때문에 미러 관계에서 적대감을 감소시키기 위해 중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결국 우리는 잠을 자는 것처럼 대재앙을 향해서 가고 있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썼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쓰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상황은 더 악화되기만 했다. 미국은 1987년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이 체결한 역사적인 협정이었던 중거리핵전력 조약 탈퇴(脫退)를 발표했다. 이 조약에 따라 러시아와 미국은 사정거리 500-5500 km의 미사일과 발사 장치를 폐기한 상태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양국은 서로서로에 대해 조약을 위반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 미사일 9M729가 조약의 조건을 위반한다고 확신하고 있고 러시아는 미국이 유럽에 배치한 MD 시스템도 마찬가지라고 맞서고 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다수의 국가들이 미국이 뉴스타트 조약에 대해서도 폐기할 계획이라고 의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조약은 배치된 핵탄두의 수를 양측에 각각 1550개로 제한하고 있다. 이 조약의 유효기간은 2021년에 끝난다. 만약 두 나라가 이 조약을 연장하기 원하지 않을 경우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는 1971년 이후 어떤 조약에도 제한을 받지 않게 된다. 두 핵 강국의 관계에서 불확실성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치명적인 실수 확률도 더 증가하게 된다.
또한 현대 세계에서는 국제 안보에 새로운 도전들이 주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소련과 미국이라는 두 주요 강국이 세계정세의 게임 판을 흔들었다면, 21세기에는 핵 개발 경쟁에 북한과 이란이 끼어들었고 중국도 갈수록 군사적인 야심을 더욱 더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독재 정권들은 핵탄두를 외국의 침략과 민주주의 유입에 대한 예방 수단으로 보고 군비 무장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의 데니 로이 선임연구원은 “북한과 같은 처지에 있는 나라에서 핵무기는 매우 필요하다. 북한은 군사적으로도 약소국인데, 몇 개 안되는 핵탄두만 가지고도 미국이 북한을 진지하게 상대하도록 만들 수 있고 국내적으로는 김정은 정권이 버틸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말하고 있다.
핵폭탄 제어 시스템 해킹
“지금은 뉴스가 하루 종일 24시간 내내 방송되고 특히 SNS 상에서 네티즌들의 순간적인 반향을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시간상의 기회를 좁아지게 만들고 지도자들에게 감정적인 압박을 준다”고 스탠포드 대 국제안보협력 센터 재클린 커 연구원은 지적했다. 게다가 핵 가방의 단추를 누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 자체도 갈수록 더 예측 불가능이 되어가고 있다.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자신의 책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서 부주의한 트럼프의 트윗이 세계를 핵전쟁의 파국(破局)에 몰고 갈 뻔 했던 예를 소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우리는 한국에서 미군과 그 가족을 철수시킬 계획이다”라고 타이핑한 다음 이를 트윗하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북한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준비하느라 미군을 소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그 증거로 여길 수 있다는 경고를 듣고 트윗하려던 것을 그만 두었다. 러시아나 중국이 트럼프의 트윗을 보고 곧바로 대응 핵공격을 개시할 것 같지는 않지만 북한은 좀 더 복잡한 경우라고 웰러스타인 교수는 말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어떤 식으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웰러스타인 교수는 이런 점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속도가 빨라지는 점에 대해 매우 큰 우려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뿐 아니라 모든 세계 지도자들이 SNS 로 직접 소통하는 것을 막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 카네기재단 칼 로비쇼드 국제 평화안보 프로그램 연구원은 핵탄두는 냉전시대부터 변한 것이 없으며 다만 그것들을 운반하는 미사일이 변화했다고 지적했다. 이 미사일들이 더 정확하게 되었기 때문에 경량화된 핵탄두를 탑재(搭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소형 핵탄두들은 전략적 핵무기처럼 큰 파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어서 이것들을 더 많이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보화도 세계에 또 하나의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핵무기 통제 시스템이 주민에 대한 위험 경보 시스템처럼 해커 공격에 취약하게 된 것이다. 영국 레스터 대학교 앤드류 퍼터 교수는 “작년 하와이에서 일어난 일이 충분히 고의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 핵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컴퓨터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보면 그것에 대한 해킹이 가능하다. 그는 이런 오보가 미국, 러시아, 북한의 관계가 위기가 최고도로 도달한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라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 정치가들이 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또 하나의 위험은 딥페이크스(deep fakes) 라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합성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정치가들의 가짜 성명이 담긴 영상물을 만들 수 있는데 컴퓨터 합성한 정치가들의 얼굴이 실제 지도자들과 거의 구별하기 어렵다. 임의의 악당이 네트워크상에 합성된 김정은이 미국에 핵 공격을 선언하는 딥페이크를 배포하게 되면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너무나 새로운 신기술이라 이 기술의 사용 결과에 대해서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정확히 예견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진주만을 기억하라
동서문화센터의 수잔 크레이펠스 연구원은 “나는 평생 북한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1년 전 미사일 경보 메시지을 받았을 때 북한이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눈곱만치도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본 전투기가 진주만을 공습할 것을 믿은 사람도 이와 똑같이 적었다. 현재 미국군이 2차 대전 참전을 시작했던 오아후 섬 항구 기슭에는 기념박물관이 서 있다. 박물관이 소장한 자료를 보면 미국 장성들과 정치가들이 일본의 계획과 능력을 평가하는데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진주만 박물관 안내판에는 “국가 및 군 수뇌부를 포함한 다수의 미국인들이 일본을 미국의 심각한 적과 위협으로 보지 않았다.” 라고 적고 있다. 또한 미국의 국회위원이었던 찰스 패디스는 1941년 “일본인들이 미국과 같은 강대국에 도전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이 사실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들이 잘 알고 있다. 그들의 군사력과 해군력은 충분히 발전되어 있지 않으며, 그들의 본토는 너무나 취약하다”고 말했다.
바로 그 해에 일본 공군은 당시 미국 태평양 함대의 기지가 자리잡고 있던 하와이 항구에 갑작스런 공급을 감행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의 효과는 컸다. 사실상 모든 함선이 침몰했으며 2400명이상의 미국인들이 공격에 희생당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어쩔 수 없이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절망한 반일 운동의 선전 구호는 “진주만을 기억하라”였다. 바로 이 구호와 함께 미국인들은 치욕적인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전장으로 나갔다. 이 구호는 선전 포스터와 배지 등에 계속 등장했다... 거의 80년이 흘렀다.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아직도 진주만을 기억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진주만의 교훈(敎訓)을 이미 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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