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I-65 남쪽 방향, exit 116 근처 휴게소에서 쉰다. 여기는 화씨 33도, 섭씨 1도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지만 봄날처럼 느껴진다. 가볍게 입고 운동도 야외에서 했다.
눈이 내린다. 밤새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다. 새벽 1시쯤 야드자키가 밖에서 경적을 울렸다. 빈 트레일러 기다리느냐고 내게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220번 도어 앞에 있는 트레일러를 가져가란다. 나무 조각 몇 개 말고는 깨끗한 편이다. 트레일러를 끌고 나왔다. 근처 트럭을 세울 수 있는 도로로 향했다. 지난여름 이곳에서 쉬어간 적 있다. 이미 많은 트럭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장 뒤쪽에 세웠다.
오전 8시에 일어났다. 오전 8시에서 12시 사이 픽업이다. 배달이 자정이라 시간이 애매하다. 쉬지 않고 달리자니 이르고, 10시간 쉬어가자니 늦다.
밤새 내린 눈으로 도로는 엉망이다. 속도를 낼 수 없다. 중간에 주유만 하고 세차는 생략하기로 했다. 출발 전에 트레일러 내부의 나무 조각들을 주워 버렸다.
11시 30분에 발송처에 도착했다. 일찍 안 오길 잘했다. 눈삽을 단 픽업트럭이 마당의 눈을 치우고 있었다. 거의 다 치우고 닥 앞쪽만 남았다. 일찍 왔어도 기다려야 했다. 10번 닥에 트레일러를 대고 그 옆의 트레일러를 끌고 가라고 했다. 건물 가장 오른편이라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을 해야 한다. 블라인드 사이드 후진은 역시 신경 쓰인다. 어렵기는 해도 지금의 내 실력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글렌은 내일 오전 5시로 약속 시각을 미뤘다. 오전 5시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배달 후에는 밥테일로 다른 곳에서 트레일러를 연결해 스프링필드로 가져가라고 했다. 수리가 필요한 트레일러인 모양이다.
나는 요즘 바보가 된 모양이다. 눈으로 미끄럽고 복잡한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끼어들지 못하고 엉뚱한 진출로로 나왔다. 진출로를 거의 다 내려가니 왼쪽 길의 굴다리 높이가 14피트다. 으악 큰일 났다. 오른쪽 길은 주택가로 이어지는 것 같다. 고속도로 진출로에서 후진했다. 진출로로 빠져 들어오는 차들 때문에 몇 번을 섰다가 옆으로 비켜줬다. 후진 실력이 늘었으니 망정이다. 마지막에는 내 뒤로 승용차들을 세워 놓고 후진해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도 경적(警笛)을 울리지 않고 기다려줬다. 신사들이다. 그런데 트럭 높이는 13피트 6인치다. 굴다리 밑으로 지나갈 수 있었다. 노화 현상인가?
열심히 달렸지만, 눈 때문에 오전에 도로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 배달처까지 한 시간가량 모자란다. 오후 7시, 켄터키주에서 멈췄다. 화장실 이용하고 운동도 했다. 13주 프로그램인데 8주를 소화했다. 남은 5주는 내가 운동 프로그램을 짜서 진행한다. 바닥에 누워서 하는 동작은 다 빼야지.
야간 담당 디스패처에게서 도착 예정 시각을 묻는 메시지가 왔다. 3시간 거리인데 10시간 휴식을 해야 하니 13시간 걸린다. 오전 8시에 도착할 수 있다. 내일 오전 9시로 약속 시각이 다시 변경됐다.
스프링필드 트랙터샵에 전화했다. 일요일 오후에 도착 예정이니 수리 약속을 잡아 달라고 했다. 화요일에나 수리가 가능하단다. 이래서 스프링필드가 싫다. 내 딴에는 일찍 전화한다고 했는데도 이렇다. 오전 4시 30분 약속이라 그나마 다행인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장시간 공회전이 가능했다. 켄터키에 오니 5분 지나자 자동으로 시동이 꺼졌다. 그동안에는 강추위 때문에 공회전 제한을 임시로 풀었던 모양이다.
어제 같은 오하이오에서도 I-80 도로상에 있을 때는 살벌하게 춥더니 I-70으로 조금만 내려오자 견딜만했다.
트레일러 천장에 구멍이
새벽 4시 기상 후 출발. 어제 시간 계산에 조금 착오가 있었다. 3시간 거리면 1시간 쿠션을 줘서 4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 교통이 어찌 될지 모르니까. 토요일이라 출근길 정체는 없겠지만. 역시나 도착 시각은 8시 30분이다. 야간 디스패처가 9시까지로 했으니 상관은 없다. 그런데 현지 시각은 7시 30분이다. 중부시간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1시간 30분 일찍 온 셈이다.
배달처는 예전에 밤에 왔다가 회사 정문 앞에서 혼자서 조용한 밤을 보냈던 곳이다. 오늘은 트레일러를 내려놓기만 하면 된다. 후진 실력이 물이 올랐다. 내가 봐도 제대로다. 네이슨이 봤으면 뿌듯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숙련자라도 후진이 항상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다.
손상된 트레일러를 가지러 갈 시간이다. 밥테일로 갈 때 쇼핑을 하는 게 편하다. 가까운 월마트로 향하다가 중간에 크로그가 나오길래 들어섰다. 밥테일이니 가능하다. 그래도 가장 먼 곳 한적한 곳에 세웠다. 평소 오던 곳이 아니어서 물건 찾기가 불편했다. 스시 코너가 있길래 도시락을 하나 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크로그의 스시 코너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의 저자 김승호 사장이 공급하는 곳이란다. 오늘 유투브 강의를 듣다가 우연히 알았다.
내가 물건을 내린 곳은 네쉬빌 근처고 트레일러를 가지러 가는 곳은 신시내티 근처다. 같은 테네시주지만 거리가 상당하다. 중간에 높은 고개도 넘고, 조지아주도 잠깐 거친다. 시간도 중부시간대와 동부시간대로 다르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야드에 찾는 트레일러가 없었다. 이때는 야드자키에게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다. 번호를 알려주니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영감님의 액센트가 너무 강하다. 눈치를 보아하니 파손된 트레일러를 가지러 왔냐는 것 같다. 하지만 못 알아들었으면서 알아들은 척할 수는 없다. 무전기로 어딘가와 통화하더니 트레일러가 다른 야드에 있다며 여기서 기다리란다. 나는 트레일러를 연결하기 편한 곳으로 이동해 기다렸다. 잠시 후 그가 트레일러를 끌고 와 마당 가운데 내려놓았다.
보기에는 멀쩡하다. 어디가 고장이지? 트레일러 전원을 연결하려고 보니 거기에 메모가 돼 있다. 천정에 구멍 뚫려 있음. 뭐라고? 나는 닫았던 트레일러 뒷문을 열고 다시 보았다. 헐~ 천정에 천으로 가려 있어 잘 못 봤지만, 위에서 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상당히 큰 구멍이다. 녹슬고 삭아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다. 실제 파손 원인은 알 수 없다.
여기서부터 프라임 본사까지는 600마일이다. 오늘 최대한 달리면 내일 오전 중에는 도착할 수 있다. 수리가 화요일로 잡혀 있으니 일찍 간다고 소용은 없다. 그래도 혹시 취소되는 일정이 있으면 중간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본다. 게다가 내일은 수퍼볼 선데이다. 어디 스포츠바에라도 가서 혼술을 즐기며 수퍼볼을 시청하면 너무 처량하려나?
11시간 운전시간이 거의 다 돼 트럭스탑에 들어왔다. 자리는 널널하다. 일부러 한적한 곳에 세웠다. 여긴 봄날씨를 지나 초여름날씨다. 오다가 더워서 에어컨을 잠시 틀었다. 어제 켄터키에서도 중간에 갑갑해서 팬티 바람으로 잤다. 2월이니 봄이 머지않다. 4월까지는 간혹 춥기도 하겠지만 계절의 변화는 막을 수 없다.
아내가 오늘 편지를 받았는데 지난 1월 29일이 시민권 선서식 날짜였다. 우체국 소인도 1월 29일자로 찍혀 있다. 무슨 이런 일이 있나? 다시 우편을 보내 다른 날짜를 받아야 한다. 아내는 미국인되기도 힘들다. 나보다 먼저 인터뷰 통과해 놓고도 아직 선서식을 못 했다. 그래서 우리집은 국제결혼 가정이다.
게임 데이
수퍼볼 경기 있는 날을 Game Day라 부른다. 도로 전광판의 주요 메시지는 게임 데이에 술 먹고 운전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오후 1시 30분에 스프링필드 프라임 본사 터미널에 도착했다. 원래는 터미널에 오면 트레일러와 트럭을 모두 세차하는 게 순서다. 오늘은 모두 생략했다. 트레일러는 천정에 구멍이 나있어 물이 새어들 염려가 있다. 어차피 수리과정에서 더러워진다. 트럭은 트레일러 전원 케이블 피복이 손상돼 일부 전선이 드러나 보여 물이 닿으면 합선(合線)의 위험이 있다. 며칠전 트레일러 서비스 브레이크 에어 케이블이 끊어진 사고가 있었다. 그날 다른 두 케이블은 끊어지진 않았지만, 손상을 입었다. 이번에 APU 수리하면서 케이블도 교체해야 한다. 본래도 케이블이 늘어나서 불편했는데 더 늘어졌다.
오늘은 점심과 저녁 모두 회사 식당에서 사 먹었다. 오늘부터 운동은 내가 자율적으로 한다. 회사 짐에서 그동안 운동보다 훨씬 강도 높게 했다. 55파운드 케틀벨과 하체 웨이트 트레이닝 위주로 했다. 근육의 힘이 빠져 몸이 약간 떨릴 정도다. 오랜만에 강도 높은 운동을 하니 기분이 좋다. 매끼 식사 기록은 계속한다.
운동 전에 체중부터 달아봤다. 체중이 약간 늘었다. 체지방은 19.7%로 줄고, 근육량은 140파운드로 조금 늘었다. 신체 대사 나이는 37세로 확 줄었다. 칼로리와 탄수화물을 줄이고 소량으로 자주 먹는 식사법이 효과가 있었다. 시피위는 탄수화물을 더 줄여보라는데, 뭘 먹을지 고민이다. 닭가슴살만 먹어봐?
회사 영화관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Ready Player One을 봤다. 스토리도 재미있고 그래픽 효과도 뛰어났다. (뉴욕시 퀸즈보로 브릿지를 CG로 재현한 장면은 압권이다) 21세기 중반 오하이오주 콜럼버스가 배경이지만 건담을 비롯한 20세기 추억의 캐릭터도 대거 등장한다. 평론가들이 할 얘기가 많은 영화다. 나는 노화현상에 따른 귀차니즘 증상으로 일일이 따지기 힘들다. 회사 영화관에는 디지털 라이브러리가 있어 수백 편의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다. NEC 프로젝터로 영사하는데 소극장 화질이 나온다.
저녁에는 수퍼볼 게임을 봤다. 한때는 아들과 매주 풋볼 경기를 보던 때가 있었다. 운전 직업을 가진 이후로는 관심에서 멀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올해는 단 한 경기만 봤는데 그게 오늘 수퍼볼이다. 어떤 팀이 올라간 줄도 몰랐다. 오늘도 여러 수퍼볼 신기록이 나왔다. 3쿼터가 지나도록 터치다운을 한번도 못한 최초의 경기. 탐 브래디의 개인 최다 수퍼볼 챔피언 등극. 패트리어츠는 오늘 우승으로 스틸러스와 수퍼볼 6회 우승 동률을 기록했다. 패트리어츠의 6회 우승은 모두 탐 브래디가 뛰는 동안 기록했다. 맨날 빌빌거리는 줄만 알았던 뉴욕의 두 팀도 각 5회 우승 경력이 있다. 예전엔 잘 나갔나보다. 자이언츠 우승은 미국에 온 둘째 해에 목격했다. 패트리어츠를 상대로 극적인 대역전승을 이뤘다. 내가 풋볼에 빠진 계기였다.
내일은 시내 영화관에 아카데미 5개 부문 후보작인 그린북을 보러 가거나, 종일 회사 영화관에서 그간 못 봤던 영화를 볼 작정이다. 오랜만의 문화생활과 여유다.
인터스텔라와 인터내셔널
아침 먹고 운동하러 짐에 갔더니 사람이 많았다. 운동하는 그룹이 있는지 여성들이 많았다. 한가할 때 하기로 하고 회사 영화관에 갔다. 인터스텔라를 선택했다. 한번 본 작품이라 두 번째 보니 더 잘 이해가 됐다. 처음 봤을 때는 한글 자막이 있어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짐(Gym)에 가니 여전히 사람이 많았지만, 그냥 운동했다. 마침 바벨도 준비됐길래 데드리프트 등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식당에서 점심 먹고 휴게실에서 컴퓨터를 쓰는데 글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인터내셔널에 수리 예약한 것 맞아? 아니 회사 트랙터샵에 내일 아침으로 예약했다. 인터내셔널에 예약했어야 되는거냐? 그렇다. 알았다.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스프링필드는 대도시라 유명 트럭회사 딜러가 다 있다. 그 중 인터내셔널이 가장 가깝다. 딜러샵이니 부품도 충분하고 더 잘 고칠 것이다. 바로 전화했다. 언제든 편할 때 오란다. 당장 달려갔다. 회사에서 2마일도 안 떨어진 곳이다. 그곳에는 히마찰, 가이암과 같은 모양의 트럭이 수십 대 있었다. 접수하고 언제쯤 수리되냐고 물었다. 오늘 밤에나. 트럭에 가 있다가 걸어서 회사로 돌아갔다.
벙크룸을 얻었다. 마침 한 방이 남아 있다. 내일 아침 7시까지 쓸 수 있다.
두 번째 영화관람.
루시. 니키타 류의 여성 액션 영화인 줄 알았는데, 메시지가 나름 심오하다 못해 다소 황당한 측면도 있다. 최민식의 역할도 아쉽다. 그의 행동은 개연성이 없고 악당으로서의 무게감도 떨어진다. 한국 깡패들의 연기가 좋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간 숱한 헐리웃 영화에서 한국인 역할 배우의 어색한 한국어 발음은 불편했다. 루시에서는 굳이 국적을 밝히지도 않는다.
저녁도 점심과 같은 메뉴로 먹었다. 세 번째 영화는 블라인드 사이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흑인 소년이 친절한 백인 가족의 도움으로 유명한 풋볼 선수가 된다는 스토리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단다. 기독교, 풋볼, 화목한 가정. 전형적 미국 영화다. 벙크룸으로 돌아와 HLN 채널을 봤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주로 방영한다. 이 또한 미국적이다. 구성을 잘했고 나레이션도 이해하기 쉽다.
하루 세 편의 영화와 두 편의 TV 프로그램. 반년치 문화생활을 다 했다. 조금 버겁다.
설날이라 부모님께 화상통화로 새해 인사를 드렸다. 나는 언제쯤 효도하려나.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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