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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h=로창현기자 newsr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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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많이 하고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많이 하고..

 

조용한 음악 같기도 하고

숲을 내달리는 바람소리 같기도 하다...

 

마취에서 간간히 깨어날 때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많이 하고...

 

병실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은 옆 병동 건물의 시멘트 옥상 뿐이다.. 나는 순간마다 생각한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된다.. 일어나야지.. 어려움을 이기고 일어나야지..

지층 어디쯤까지가 겨울인가..”

 

<‘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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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금행 시인의 산문집 ‘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경진출판)’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허 시인이 세 자녀를 키우며 이민 생활의 단상을 정감있는 필치(筆致)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들을 모았다.

 

이화여고와 이대 국문과를 나온 그녀는 수필문학과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45년전 남편의 학업을 위해 미국에 온 후 미주한인 언론을 통해 독자들을 만났고 수년전부터는 페이스북에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진 글들을 실어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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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2018년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지난해 1월4일 남편은 뉴욕에 들이닥친 무서운 눈보라를 뚫고 응급실에 실려와서 무려 네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두 팔과 손에는 더이상 주사 바늘을 꽂을 틈이 없이 멍투성이가 되어, 목에 세갈래의 호스를 시술하고 수혈과 주사약을 투여했다. 위험한 고비에서도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남편은 ‘나 만나서 고생만 했다’는 천사의 말을 들려주었다. 책을 내기로 결심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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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글과 말을 아끼는 사람들을 꼽자면 이민생활을 하는 해외문학가들만한 이들이 없다. 그이들에게 모국어는 정신의 본령(本領)이요, 정서의 원천(源泉)이다. 시인은 정겨운 한글로 그리움을 차분히 적어넣었다. 고향에 대한 향수와 이민생활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눈물겹도록 솔직하고 아름답게 풀어놓았다.

 

 

<1977년 우체국에서의 소인이 그대로 보이는 엄마의 편지.. 그당시는 전화 통화도 어려워서, 엄마와 나는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 이제는 엄마가 안 계시구나.. 가끔 엄마가 보낸 편지를 꺼내보며 엄마가 안 계시다는 것을 실감하면 참으로 허전하다. 23살의 철없는 것을 먼 곳으로 보내시고, 한시도 근심을 놓지 못하며 쓰신 편지들이다. 서울을 떠날 때, 나는 임신 7개월이었으므로, 이민 가방에는 아기 헝겊 기저기와 포대기 등 엄마가 첫 아이 낳고 꼭 필요한 것만 꾸려주셨었지. 그때는 종이 기저귀도 없었고..이민 짐을 하나씩 꺼내 정리하며 자꾸 자꾸 울던 생각이 난다. 첫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들어가서 '엄마 엄마'하고 울었다고 간호원들이 한국 말로 mommy가 엄마라는 것을 다 알았다며 놀리던 일도..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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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년 전의 일이다. 나도 뉴욕에서는 어딜 가든 전철을 타야했다. 그날은 큰아이의 소아과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었는데, 큰아이는 걸리고 둘째는 유모차에 싣고 나는 또 만삭이었다. 전철이 도착하고 차례대로 올라타는데 유모차를 먼저 올리고 큰아이를 태우기 전에, 덜컥 전철 문이 순식간에 닫쳤다. 안에서 사람들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이내 전철이 떠나고 밖에 남겨진 큰아이가 새파랗게 질려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보였다. 어느 흑인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는 광경을 뒤로 하며 굴 속같이 검은 길로 재빨리 전철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다음 역까지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는지.. 문이 열리고 내가 유모차를 끌어내리자, 흑인 청년 한사람이 따라내려 유모차를 번쩍 들어 층계를 뛰어오르고 나도 만삭의 몸으로 그를 따라 되돌아가는 쪽의 전철을 탔다. 전철에서 내리니, 아이를 놓친 그 자리에 큰아이와 그 흑인여인이 부동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다시 층계를 뛰어오르고 뛰어 내려가서, 큰아이를 끌어안고 벅차오르는 울음을 토해내며 주저앉아 버렸다..세상에는 그날 나를 도와준 두사람같은 천사들이 많이 있다. 나는 여러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러한 천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오고 있다. 천사들.. 분명 그들의 하얀 날갯질의 온유함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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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각박(刻薄)할 것 같은 뉴욕에서 그녀는 인정 많은 숨은 천사들을 수없이 만났다. 한 페친은 “책을 읽으면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건 물질이 아닌 바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천사의 역할을 해 줄 때, 사랑과 배려를 해 줄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배운다”며 공감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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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는 서양화가 조성모 화백의 멋진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녀가 사는 뉴욕주 몬로의 이웃인 조 화백은 화려하면서도 기품있는 컬러로 자연과 문명의 조화를 표현하는 ‘러브 로드’ 시리즈로 잘 알려진 주인공이다.

 

갤러리를 운영한 미술전문가이기도 한 허금행 시인이 표지 작품을 위해 조화백의 사이트에서 직접 골랐을만큼 이번 산문집은 어느때보다 정성을 기울였다.

 

조성모 화백은 “이민온 사람이라면 정착과정에서의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치며 드라마틱한 소설 한편씩은 안고 산다. 허금행 선생님이 제 사이트에서 직접 고른 그림을 표지로 싣고, 삶의 시간이 애잔한 아름다움으로, 때론 콧등 시큰하게 써내려간 '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를 읽노라면 잊고 지낸 감성의 바다에 푹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나의 글에서, 삶의 어두운 부분을 지우개로 지워 흐리게 만들기를 희망한다.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동트기 전의 새벽빛이 되기를 꿈꾼다. 그리하여 나의 글들이 화해의 손길이 되고 침묵이 골깊은 하루를 왁자지껄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허금행 시인이 꿈꾸는 새벽은 황금빛이다. “어두움 한 덩이던 밤으로부터 하나하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아침으로의 황홀한 건널목”이요, “지금 깨어 있는 사람들로 하여 아침은 매일매일 새롭고도 활기차게 열린다”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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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최근 건강을 많이 회복한 남편과 함께 몬로의 전원주택으로 돌아왔다. 텃밭을 일구고 꽃을 키우며, 이름 모를 어여쁜 새들을 위한 모이도 주면서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꿈꾸고 있다.

 

“2018년은 넘치도록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천사의 말을 한다’를 쓰면서 힘든 시간을 견뎠습니다.. 오늘도 무너진 돌탑을 다시 쌓는 마음으로 소망의 하루를 살겠습니다. 시골의 생활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물론 이제 시를 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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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과 함께 한 허금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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