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서(하늘밭교회) = 분당 ㅎ교회를 다룬 기사를 보았다. 막장이다. 할 말이 없다. 물론 그런 곳을 교회로 알고 다니는 분들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신대원시절 한 무리의 목사들이 채플이 끝난 직후 찾아왔다. 부흥사목사들이었다. 번쩍거리는 검정색 고급차를 타고 온 그들은 날선 검은 양복에 강한 향수냄새를 풍기며 다가와 신학생들에게 말했다.
“하나님의 일 하면서 돈도 벌고 싶은 놈들은 나와!!”
반말지거리로 거침없이 그들이 내뱉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말이 기사에 그대로 녹아있었다. 교인들에게 소액대출을 받아 헌금을 하라고 강요하고, 예언 사역자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유학 간 딸의 시중을 들게 사람들을 보내 식모살이를, 그것도 자비를 들여 하게 했고, 개를 키우는 아들의 사업장에 청년들을 보내 일을 시킨 후에 임금을 체불하고, 그 아들은 양진호 회장처럼 청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부교역자들에겐 사례비도 지급하지 않으면서 다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믿음을 강요하고, 교회 모든 행사의 비용을 부교역자나 담당 교인들이 책임을 져야 했단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노숙인과 빈민, 장애인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시작했다고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참 거룩하게 시작했다.
어찌 이런 만무방들이 교회의 간판을 내걸고 예수의 이름을 팔아 호의호식할 수 있는가.
그 답은 이미 그들 스스로 밝혔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도 돈도 벌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어쩌면 전부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교인들이 가장 많이 드리는 기도는 십일조 가장 많이 하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용의 꼬리가 아니라 닭의 머리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제쳤다. 이 기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부흥사들이 말한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일 하면서 돈도 벌고 싶은 놈’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부흥사들은 일터를 잃지 않는다.
그들이 도구로 내세우는 것이 무엇인가. 방언을 필두로 하는 예언과 치유와 같은 신사도운동이다.
오래 전 일이다. 잘 아는 권사님 한 분이 그런 기적을 좋아하셨다. 신앙은 반드시 그런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 당시는 금이빨 기적이 성행 중이었다. 권사님은 자신도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어금니 쪽을 가리키며 당신의 이가 실제로 누렇게 변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분에게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그건 권사님이 이를 잘못 닦으셔서 이가 누레진 겁니다. 그게 정말 금으로 변한 것이라면 저와 함께 과학적인 검증을 받아보시지요.” 그러자 권사님은 꼬리를 내리고 돌아서며 최목사는 저래서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신 후에 자리를 뜨셨다.
이 이야기가 단지 농으로 들리는가. 아니다. 이 분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거의 모든 한국의 교회 다니는 분들이 그런 체험들을 성령 체험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단단한 믿음의 증거로 내세운다. 가장 안타까운 현상은 그런 되도 않는 주장으로 자신의 신앙에 가면을 씌우고 정작 복음대로 사는 일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탱자탱자 신앙생활을 하면서 죽으면 천당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이들은 부흥사들의 말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버는 삶을 축복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보다 한층 교묘한 것은 고지론과 청부론이다.
위의 예가 주로 나이 든 사람들의 경우라면 고지론과 청부론은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영적 함정이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이 또한 부흥사들이 말한 길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놈’의 길이다. 그들은 결코 돈을 벌면서 하나님의 일도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이 길을 잘도 달려간다.
그렇다. 기독교는 시장이 되었다. 세상의 하부구조가 된 교회는 어쩔 수 없이 시장의 원리를 따르게 된다. 꿩 잡는 게 매다. 그리고 꿩 많이 잡은 교회가 바로 대형교회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르는 진정한 교회는 커질 수가 없다. 끊임없이 자신의 것을 나누고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서 이웃이 되어야 하기에 부자가 될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 물론 작은 교회라야 옳은 교회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대로 사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한 번 생긴 산당은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산당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산당은 내버려두자. 그리고 우리는 여호와만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자. 가난한 사람이 되는 그 길은 평탄치 않을 것이다. 세상은 물론 돈을 가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놈’들이 조롱하며 핍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전할 수 있게 해준 ㅎ교회와 부흥사들에게 나의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