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공개입보다 MiG기에 놀라
미그15기, B-29 원폭공격 원천봉쇄
냉전후 한국전 참전 공식 인정
Newsroh=김태환 칼럼니스트
우리는 6.25 동란이라 부르나, 온 세계는 한국전쟁(Korean War)이라 부르는 전쟁기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지도 못한 이변들이 일어났다. 다 지내놓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모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는 서로 상대방의 수를 읽지 못한 탓이다.
저 유명한 맥아더의 인천 상륙을 보라. 중국에서는 도쿄에 있는 맥아더 사령부에 고급 정보원을 침투시킨 적도 없었지만, 전선 지도만 보고, ‘인민군의 보급선을 끊기위한 인천 상륙이 임박했으니 방비하라고, 김일성에게 귀띔을 해줬다’고 하지 않았는가?
맥아더가 신이나서 38선을 넘으려하자 중국에서는 한국군만 월경(越境)하는 것은 용인하지만, 그외 군대 (외국군=유엔군)가 월경하는 것은 좌시 하지 않겠다고 경고했으나, 기고만장(氣高萬丈)한 맥아더는 무시해버렸다. 미국에선 모두 승세에 도취되어 북진을 동감하였으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케난씨만은 달랐다. 그는 38선에서 중지해야 전전 상태 회복(Status Ante Bellum) 으로 유엔 결의에 맞는다고 주장했으나, 무시 당하였다.
즉, 중국군의 개입은 예상외의 일은 아니라, 경고를 무시한 것이다. 그래서 맥아더는 미군 해외 참전 사상 가장 큰 참패를 당하는 치욕을 맛보았다. 평안북도와 함경남도에서 중포도 없고 박격포 등으로 경무장만한 중국인민지원군에게 떡이 되어 만여명의 사상자와 포로를 남기고 남쪽으로 줄행랑 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더 놀란 것은 소련제 MiG - 15 전투기의 출현이었다. 당시 미군에도 제트 전투기가 있었으나, 미그기의 상대가 되지 않아서 F-86 세이버를 도입하여 겨우 맞상대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들 미그기가 중국 또는 북한 표지를 하고 있어서 소련으로부터 비행 전투 훈련을 받은 중국 공군 또는 북한 공군 조종사인줄로 알았다.
소련의 스탈린은 중국의 모택동 주석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직접적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공군 지원을 거절하다가, 다음과 같은 비밀 유지 방책을 철저히 지키는 선에서 소련의 최신예 미그-15 전투기와 전투기 조종사들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가. 비행기 외부 표식은 중국 공군 마크 또는 북한 공군 마크로 위장한다.
나. 조종사들은 중국어 또는 조선어로 지상 관제소, 또는 조종사간 통화에 사용한다.
다. 조종사들은 전선가까이 또는 해안선 부근으로 비행하지 않는다. (적에게 생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
라. 도망치는 적기를 추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미그기의 행동반경이 압록강 한만(韓滿) 국경에서 평양 북방 구간을 ‘미그 회랑’(MiG Alley) 이라 부르고 미그기와 미군기 간의 공중전이 이 주위에서 많이 일어났다.
한국전에 처음 참전한 소련 공군 조종사들은 대부분 제2차 대전 때에 독일 공군기들과 공중전에서 적기를 많이 격추(擊墜)시킨 경험이 많은 에이스(ACE) 들이어서 유엔 공군 조종사들의 희생이 많았다 한다.
그런데 미그 전투기가 특히 눈부신 전과를 올린 것은 B-29 폭격기 사냥할 때였다. 한국전을 중국 본토까지 확장하지 못해서 대통령의 명령까지 어긴 맥아더를 참을 만큼 참아온 트루먼 대통령이 드디어 모든 현직에서 파면한 바로 그날 (1951년 4월 12일) 30대의 B-29 가 100대의 F-84와 F-80의 호위를 받아 북한 상공에 폭격하려 출격했는데, 30대의 MiG -15 가 이들을 맞아 공중전이 벌어졌다. 미그기는 미군 전투기는 곁눈질도 하지 않고 B-29 만 집중 공격하여 그중 3대를 격추하고, 7대를 대파였으며, 한대도 손상 없이 모두 무사히 기지로 귀환하였다.
이 공중전 결과에 유엔군측은 큰 충격을 받아 이날을 검은 목요일 (Black Thursday) 이라 부르고 이후 5개월동안 B-29 출격을 중지하였다.
맥아더 해임후에 그의 해임에 대한 미국 조야에서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상원 외교 국방 합동 비밀 청문회에서 증언하면서 당시 미 공군 참모총장인 반덴버그 장군이 “하찮은 나라(한국)가 너무나 많은 미 공군 자산을 삼키고 있다”고 짜증을 냈다.
왜 그랬을까? 미그기 공격으로 너무나 많은 미군 비행기가 격추되고 조종사들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산측이 미그기의 전투 반경을 더 남하시키기 위하여 평안북도 남시에 미그기 비행장을 건설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파괴하기 위하여 아홉 대의 B-29를 보냈는데, 그 가운데 여섯 대가 격추되었다.
이 일을 두고 검은 화요일(Black Tuesday) 이라고 부르는데, 이날부터 B-29의 주간 폭격은 금지되었다. 따라서, 북한 지역내 도시와 촌락에 대한 융단 폭격이나 네이팜 폭탄 투하가 정지되어 북한 주민들이 숨을 쉴 수 있는 틈을 얻었다.
B-29는 제2차 세계대전 때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우는 아이들도 울음을 멈추게 하고 원자폭탄을 싣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트려서 ‘날아가는 요새 (Flying Fortress)’ 라고 위용을 날렸으나, 미그기의 맛있는 밥이 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소련 미그기 조종사들은 B-29 를 ‘날아가는 통나무집 (Flying Shack)’이라고 조롱하였다.
미국은 호시탐담 소련을 원자탄으로 선제 공격할 틈을 노렸으나, MiG -15 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 갈 수 없는 것을 깨달아서 확전 구상을 접고 한국전을 휴전으로 끝맺었다. 미국은 B-29 를 대체할 B-47 을 만들고 이어서 B-52를 만들어 전략 폭격기의 결정판을 만들어 지금까지 현역에 있다.
이에 소련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과 대공 미사일을 개발하여 미국의 전략 폭격기 침입에 대비하였다. 미국이 소련내 국방 설비를 공중 정찰하기 위해 고공 정찰기 U-2 를 만들어 공군에서 사용하려하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공군기가 소련 상공을 날아가는 것은 대소 전쟁 선포와 같다고 이를 CIA가 관장하게 하였다.
한국전에 중공군이 참전했는데, 이에 대한 갑론을박(甲論乙駁)이 있었으나, 미국은 중국과 다시는 가급적 적대행위를 하지 않으려 하였고, 미국은 월남전이 격화하자, 월맹 폭격은 하였으나, 17도선 이북으로 침입은 하지 않았다.
이처럼 각국은 전쟁터에서도 서로 배워서 좀 더 현명하게 사태를 대비한다. 전 합참 작전 본부장을 지낸 신원식 장군은 트럼프의 북폭을 믿는 사람들이 웃긴다고 하였다. 2017년이었다면 모를까 북미가 정상회담을 하는 상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좀 배우고 잘 판단할 수 있어야 될 것 같다.
소련은 그들의 비밀 전쟁 (한국전에서의 공군기 작전)을 한번도 공언한 바 없고 냉전이 끝나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다음에 사실이 밝혀졌다.
미그기에 혼난 미국/미군은 미그기를 가져오는 조종사에게 당시 돈으로 10만 달러에 미국 시민권을 준다고 선전하였고, 한국전 휴전 후에 본인은 그 선전을 들은 적 없다고 부인하지만 북한 공군의 노금석 대위가 미그기를 한대 몰고 귀순하였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관왕지래: 觀往知來)
글로벌웹진 NEWSEROH 칼럼 ‘김태환의 한국현대사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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