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어머니와 마카오를 다녀오다.
우리집은 할머니까지 모시고 살던 대가족이었다.
아주 기가 센 할머니의 시집살이가 버거워 엄마는 일탈하고자 가게를 시작하셨다. 집에서 할머니와 매시간 신경전을 하면서 속으로 타들어 가는 엄마의 끼는 가게에서 폭발하셔서 돈을 끌어모으셨다. 저녁마다 현금다발을 세다가 잠드는 모습을 매일 보았다.
현금 다발에 파묻힌 엄마의 당당함에 할머니의 기는 여지없이 무너지면서 우리 손녀 손자에게 애정을 쏟으시기 시작하면서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사이 우리 어머니는 부엌과 담을 쌓고 돈만 버셨다.
고부간의 갈등으로 살림살이에 정을 못 붙이고 바깥으로 돌던 엄마는 집 밖에서 더 행복해 하셨다.
당당하시고 , 자기주장을 마음껏 펼치시고 , 가게에서 호령하던 엄마는 집에 오면 시집살이에 기가 죽으셨다.
할머니의 부엌점령에 아빠의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나긋한 엄마가 되는 이중적인 성격으로 살아오셨다.
엄마가 수년전에 가게를 넘기면서 너무 아쉬워 했지만 체력의 열세로 자녀들이 말려서 겨우 강제 은퇴를 시켰다. 은퇴를 하면 편한 노후가 기다릴줄 알았던 엄마의 시간들은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과 대장암으로 먹구름이 끼었다. 몇년간 대장암을 치료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신 엄마는 그사이 노인이 되어버렸다. 한쪽 다리도 관절염으로 걷기가 불편해서 또 수술을 하셨다. 두번의 대 수술로 여행은 애초에 접었으나 강인한 엄마의 정신력은 회복을 빨리 해서 드디어 홍콩에 놀러오셨다. 3시간도 안되는 이 곳을 이번에는 7년만에 온듯하다. 엄마는 홍콩에 4번을 오셨다. 올때마다 새롭다고 하신다.
어느정도 보행이 가능하셔서 마카오를 지난주 다녀왔다.
페리를 타고 다녔던 마카오를 주하이로 연결한 다리를 통해서 가보는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몇년간 공사를 하던 모습의 실체를 보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긴 다리를 보면서 인간의 끈질긴 도전정신과 야망에 무서움을 느낄 정도였다.
엄마랑 여동생이랑 베네시안 호텔로 가서 우선 미니 곤돌라를 태워 드리자 은근히 좋아하셨다.
시시하다고 한마디 할줄 알았는데 노인이 되신 엄마는 이제 이런 소소한 것도 좋아하신다.
노를 젓는 사공의 아리아를 들으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던 엄마의 얼굴이 보기가 좋았다. 한식아니면 잘 안먹던 엄마는 서양식단도 좋아하셨고 호텔 곳곳에 작은 공연도 몰입해서 보시면서 좋아라 하셨다.
택시를 타고 마카오를 제대로 보여주고자 세나도 광장을 갔다.우리도 유명한 육포거리에서 육포도 맛보고 에그타트도 먹었다. 마카오의 명물이라는 간식들을 조금씩 맛도 보면서 성바울성당 문을 보고 옛날 추억에 잠겼다.
씩씩하게 오르시던 계단을 이번엔 두번이나 쉬고 다 오를수 있었고 조용하던 이 명소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으로 북세통을 이루고 있는걸 보시고 의아해 했다.
그래도 간만에 온 딸과의 여행에 엄마는 흡족해 하셨다.
포르투갈 식민지 스타일의 건축물들을 구경시켜 드리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지만 잠시 후 대부분 기억 못하시고 풍경만 보고 왔을 엄마를 이해 하면서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 하지 않기로 했다.
느리신 엄마의 거동에 맞추어, 엄마의 눈 높이에 맞게 느리게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오랜만에 노인이 되셔서 나타난 엄마와의 이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안다. 기센 엄마의 나긋함이 너무 애처롭고 나이를 이기고자 노력하는 엄마의 정신력에 응원을 보낸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타이밍이 있는 듯 하다.
엄마의 인생은 타이밍이 약간씩 어긋난듯 보였다. 답답한 시집살이로 겉돌았던 시간이 아쉬웠던 것 같았고 , 놓친 가족여행들이 많이 생각 나신듯 했다. 곧 팔순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서 한창일때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서 지금의 나이들고 힘없는 엄마의 얼굴이 각인이 안된다.
엄마의 시간속도와 나의 시간 속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리라. 나도 엄마를 보며 그 길을 따라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뜻깊은 시간을 가슴에 새기고 왔다.
이 시간 또한 기억속으로 사라질 순간들을 , 과연 난 지금도 후회하지 않을 최선을 만들고 있는건지....
(사진, 글: Misa Lee 위클리홍콩 여행기자 weekly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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