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커네티컷만 와도 주차하기 힘드네. 메사추세츠에서 파일럿 트럭스탑에 들렀다가 자리가 없어 그냥 나왔다. TA에는 자리가 있을 것 같은데, 무료 샤워를 할 수 있는 파일럿 아니면 별 의미 없다. 휴게소에 왔는데 작은 곳이라 그런지 자리가 다 찼다. 내가 세운 곳은 줄이 그어져 있지 않아 엄밀히 따지면 주차공간은 아니다. 다른 차량 통행에 지장은 없다. 그리고 곧 누군가가 이 자리에 세울 것이다. (밤이 깊으면 버스와 캠퍼를 위한 공간도 트럭이 차지할 것이다. 53피트 트레일러는 어려워도 박스 트럭이라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커네티컷은 트럭스탑은 어려워도 휴게소라면 어둡기 전에 세울 만한 곳이 있다. 여기 주차를 못 했으면 거기까지 갔을 것이다.
오늘은 틱낫한 스님의 책을 들으며 왔다. 1926년생이니 올해로 92세다. 내가 들은 책은 80대에 쓴 책이다. 틱낫한 스님도 유명하지만, 그의 책을 읽은 적은 없다. 인터넷, 스마트폰, SNS 등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례를 들며 불교 철학을 풀어 의외였다. 깨어 있는 사람에게 나이는 무의미한 듯하다. 수행이 깊은 사람들의 글을 접하면 많은 영감이 떠오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책을 많이 읽고 싶어서 초등학생때 새생활 속독법이란 책을 사서 혼자서 연습했을 정도다. 커서는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보지 않았다. 읽을 책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가 평생을 읽어도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나와 있는 책만 해도 그런데 앞으로 나올 책까지 생각해보라. 책뿐 아니라 영화와 음악도 그렇다. 24시간 내내 보고 들어도 아주 조금만을 접할 뿐이다. 그래서 선택이 중요하다. 어차피 모든 책(영화, 음악)을 다 볼 수 없다면,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을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인터넷이 있으니 책은 안 읽어도 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얘기는 TV가 있으니 책은 안 봐도 된다는 소리와 비슷하다. 인터넷이 있기 전에도 신문이 있었다. 신문을 읽으면 되니 책은 안 봐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못 봤다. 인터넷, TV, 신문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알고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한국 성인의 열 명 중 네 명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니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다. (수년 동안 성경책 외에는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신앙심을 과시하는 사람도 봤다) 각자 자기 삶을 사는 것이니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책은 예로부터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알 수 있는 지식 전달 수단이었다. 요즘 여러 매체가 발달한 마당에도 책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가 있다. 책은 매우 정제된 아이디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글쓴이의 사상이 함축돼 있다. 글쓴이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효과적이고 논리적으로 배열한다. 인터넷, 신문, TV에는 짧고 단편적인 아이디어가 주로 다뤄진다. 요즘 사람들의 문해력은 극도로 떨어졌다. 세 줄 이상의 글은 아예 혐오의 대상이다.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사고능력이 저하되었다는 뜻이다. 어린아이 정도의 단순한 사고능력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책을 안 읽는 이유에는 시간이 없어서가 1위로 꼽힌다. 맞다 현대인들은 바쁘다. 나 역시도 운전 중에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쉬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요즘 오디오북이 무척 고맙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는 것을 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다. 내가 접할 수 있는 대부분 오디오북이 영어로 녹음돼 영어공부까지 저절로 된다. 일석삼조다. 하루나 이틀에 한 권 정도를 들으니 살면서 이렇게 많은 독서를 한 적이 없다.
읽기와 듣기는 분명 다르다. 속도에서 읽기가 토끼라면 듣기는 거북이다. 꾸준한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듯 듣기로 더 많은 책을 접할 수 있다. (나는 성경 통독에 성공한 적이 없지만, 성경 통청은 한 적이 있다) 또한 읽어서 이해하는 능력과 들어서 이해하는 능력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오디오북은 색다른 체험이다. 지금은 재미있는 책이 많아 매일 새로운 책을 듣지만, 그중 괜찮은 것들을 추려 반복해 들을 계획이다. 오디오북을 듣다 뭔가 연상이 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잠시 놓친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깨닫지는 못해도 통찰력
오늘도 트럭스탑에 주차는 실패했다. 빌어먹을 북동부. 오후 6시만 넘어도 자리가 없다. 휴게소에서 자고 간다. 내일은 중간에 트럭스탑에 들러 샤워를 하고 가리라.
오늘 오랜만에 밥을 지어 먹었다. 이 맛있는 밥을 두 달이 넘도록 안 먹었다. 13주 피트니스 프로그램 때문이다. 덕분에 뱃살을 좀 빠졌다. 밥을 먹으면서도 살을 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어.
노스캐롤라이나로 가고 있다. 가장 오랜 시간 동부시간대에 계속 머물고 있다.
오랜만에 수피 음악을 듣고 있다. 수피(Sufi)는 이슬람 신비주의다. 13세기 이슬람의 성자이자 시인인 루미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인물이다. 유네스코에서는 그의 탄생 800주년을 맞아 2007년을 세계 루미의 해로 선포했다.
나는 수피 음악인 중에서 Nusrat Fateh Ali Khan을 가장 좋아한다. 파키스탄 출신인 그는 1997년 향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가사를 못 알아들으면서도 그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흥이 돋고 의식이 고양된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깨달음(enlightenment)에 이를 수 없다. 예수나 붓다, 노자, 장자 등의 성인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도 통찰력(insight)을 키울 수는 있다.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가운데 통찰력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 현상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이 통찰력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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