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11일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지 꼭 100년이 된 역사적인 날이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으려 이역만리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항일 독립투쟁을 벌인 수많은 선열들의 노고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런데, 프랑스 파리가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산실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기폭제가 된 역사적인 장소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19년 초, 임시정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상해의 신한청년당은 대표 김규식 외 3명을 파리에 파견했다. 세계 열강들과 국제 연맹으로부터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기 위한 외교 활동을 전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독립운동 단체의 대표일 뿐 정식 국가의 대표 자격은 아니었으므로 김규식이 국가의 대표로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자격을 부여해야만 했다.
따라서 상해의 독립운동가들은 4월 11일 상해의 프랑스 조계(concession française) 내에 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4월 13일에 이를 공포했으며, 같은 날 김규식을 외무총장 겸 파리강화회의 대한민국 위원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신임장(lettres de créance)을 보냈다. 이때부터 김규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파리 9구 샤토덩 가 38번지에 사무실을 두고 외교 및 홍보 활동을 전개했다. 전 세계에 우리민족의 독립에 대한 결의와 의지를 설파해, 마침내 광복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파리 위원부의 활동은 상해 임시정부의 1919년부터 1932년까지 서구에서 펼친 가장 중요한 업적의 하나로 꼽힌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부끄럽지 않은 경제·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새로운 100년을 맞은 우리 앞엔 임시정부가 이루고자 했던 미완의 과제가 아직 놓여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은 대한민국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100년 전 지역과 세대, 종교를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독립과 국민주권 실현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을 기억하고, 그 국민통합의 정신으로 새로운 100년을 시작해야 한다. 갈등과 이기, 불평등을 극복하고 국민이 주인이 돼 모두 함께 잘사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임시정부 수립 100돌이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잡고 국민 분열을 극복해나가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