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 어학원 김성수 원장)
[토요일 좀 이른 시간에 동전 없이 홍콩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가 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신 분들도 다수 계실 거라 생각한다. 토요일 오전에 출근을 하거나 혹은 나들이를 하게 되면, 길에서 스티커를 든 채로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게 되는데, 이때 기부할 동전이 없으면 지폐를 꺼내야 한다거나, 밝게 웃고 있는 아이를 차갑게 외면해야 하는 마음 아픈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賣旗籌款(광둥어 병음 maai6 kei4 chau4 fun2)라고 불리는 홍콩의 기부문화의 하나로, 기(旗)를 팔아 돈을 모으는 활동 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 그래서 홍콩 사람들은 손목이나 가슴에 붙여주는 이 스티커를 깃발(旗)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왜 이 스티커를 깃발이라고 부를까? 그것은 이 활동의 역사를 훑어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홍콩의 이 활동은 1939년도로 거슬러 올라가며, 본격적인 활동은 1950년대부터라고 한다. 중일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와 그 속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보양국(PO LEUNG GUK, 保良局)이라는 단체에서 1939년에 처음 모금 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모였던 모금액이 약 8,000HKD였다고 하고, 참고로 당시 일반 근로자의 월급이 9HKD였다고 한다. 처음에 봉사자들은 하얀색 모금함을 메고 모금활동을 했는데, 이 모금함에 시민들이 동전을 넣어 기부하면 빨간색 깃발을 하나씩 줬다고 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기부한 사람이라는 표시로 그 깃발을 옷이나 가방에 꽂고 다녔다고 한다. 홍콩 사람들이 스티커를 깃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깃발은 빨간색 깃털 모양의 핀이 되고, 후에는 종이꽃, 휘장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다가, 현재는 편의성에 기초해 각 자선 기관의 로고가 인쇄되어 있는 스티커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 사용했던 금속재질의 모금함도 현재는 플라스틱 주머니로 바뀌었다.
참고로 2011년 말부터 동전뿐만 아니라 홍콩식 교통카드 八達通 (baat3 daat6 tung1)로도 기부할 수 있게 되었고, 요즘은 스마트폰 앱으로도 기부가 가능하게 되었지만, 아직은 길에서 서로 인사 한마디씩 건네며 스티커를 주고받는 모습이 홍콩 사람들에게도 가장 익숙한 기부의 모습이라고 한다.
깃발 모금 활동의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모금 활동을 진행하고자 하는 단체는 홍콩법에 의거,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반드시 사회복지서장(社會福利署長)의 심사 및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각 단체별 모금일은 추첨으로 정하며, 회계연도 당 1회의 모금 활동만 가능하다. 활동 시간은 토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이며, 여름방학 기간에는 수요일, 토요일 양일에 걸쳐 진행된다. 불법적인 모금 활동이나 사기 행위를 막기 위해, 각 모금 활동 기관은 시민들이 식별할 수 있도록 기관의 이름과, ‘사회복지서에 의해 승인됨(獲社會福利署批准)’이라는 글을 모금 주머니에 반드시 붙여야 한다. 참고로 각 개인도 자원봉사자로 참여할 수 있는데, 참여를 원하는 분은 사회복지서 웹사이트(https://www.gov.hk/tc/theme/fundraising/today/charitable.htm)에 방문하여 신청할 수 있다.
혹시 전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나가다가 동전 하나 빼앗기는 느낌을 받았다면, 이제는 동전 하나 준비하고 있다가 적극적으로 기부 활동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무조건 아이들의 미소에 못 이겨 기부하기보다는, 활동을 진행하는 단체를 확인하고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기부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의 광동어 한마디 [자원봉사자에게 건넬 수 있는 인사 한마디 - 수고 많으십니다.]
辛苦曬你呀! [싼푸싸이네이아!]
san1 fu2 saai3 nei5 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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