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 한바퀴 (16)
Newsroh=안정훈 칼럼니스트
인도에 대한 평가는 사람 마다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린다. 그래서 그 ‘카오스’의 나라에 가서 어떤 곳 인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가보지 않고 후회 하는 것 보다는 가 보고 실망 하는게 더 낫다는 내 평소의 지론을 따르기로 했다. 네팔에서 메르디 히말라야 4200m ( MBC ) 등정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를 인도로 결정 했다. 마침 인도정부가 2018년 10월 1일 부터 한국인 여행자에게 도착 비자를 허용 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마치 나를 인도로 이끄는 啓示(계시) 같았다.
보통 VOA ( VISA ON ARRIVAL) 라고 부르는 도착 비자는 해당 국가에 도착해서 정해진 금액을 내면 체류 허가를 즉석에서 발급해 주는 편리한 제도였다. 나는 준비 없이 여행을 시작 했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도 비자를 미리 받아 두지 않았었다. 그래도 현지에서 온라인 비자나 도착 비자를 받아서 무사히 여행을 계속 할 수가 있었다. 내가 2017 년 - 2018 년에 도착 비자를 받았던 나라는 벨라루스, 쿠바, 볼리비아, 네팔, 인도, 캄보디아 등 6개 나라 였다. 인터넷으로 신청해서 온라인 비자를 받았던 나라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미얀마 등 5개 나라였다.
네팔의 포카라에서 버스를 타고 먼저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로 갈 생각 이었다. 거기서 다시 소나울리로 이동해서 네팔과 인도 국경을 넘어 델리로 갈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복병을 발견했다. 인도 도착 비자는 델리를 비롯한 6개 공항에 비행기로 입국하는 사람들 에게만 허용 된다는 사실을 출발 전 날에야 알게 된 것 이었다. 육로로 입국 할 때는 정식 비자나 인터넷 비자를 미리 발급 받아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온 라인 비자를 받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 해 보였다. 내가 남미에서 만났던 젊은 여행자가 인도 인터넷 비자를 받기 위해 컴퓨터에 매달려 3-4일을 씨름 해서 겨우 성공하는 걸 보았기 때문 이었다. 더군다나 네팔의 인터넷 사정은 후덜덜이라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 했다.
그래도 혹시나 비자 발급을 대행해 주는 여행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시내에 있는 여행사들을 찾아 갔지만 모두가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가는 날이 장 날 이라고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네팔 최대의 민속 명절인 디왈리 기간이라서 모든 상점이나 회사들이 거의 열흘이 넘게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네팔 체류 비자를 이미 한 번 연장 했었는데 또 다시 추가 비용을 내고 두 번째 연장을 해가면서 포카라에 계속 머물며 기다릴 수 도 없는 노릇 이었다.
머리를 짜내서 가능한 방법을 찾아 보았다.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수도인 카트만두로 가서 비행기 편으로 인도 델리 공항으로 가는 것 이었다. 서둘러서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표와 하루 묵을 공항 근처의 숙소 그리고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인도의 델리로 가는 비행기 표와 델리의 숙소를 예약 했다.
인도에 갈까 말까 망설 이다가 네팔 비자 만료일이 임박해서야 가기로 결정 한 것 이다. 그 바람에 준비가 미흡 해지고 여러가지가 엉키고 꼬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매사 서두르면 실수가 생기는 법이거늘 ..... ‘여행 늘보’는 항상 게으름을 피우다가 뒤늧게 비행기 표를 끊고 숙소를 예약하기 때문에 남 보다 더 비싼 요금을 내곤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도 게으름을 즐기려면 그 정도 대가는 치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후회 한 적은 없다. 인도의 델리 공항에 내리니 이민국 직원들이 입구에 서서 VOA 신청자는 이쪽으로 오라고 안내를 해 주었다. 도착 비자 제도를 시행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그런지 이민국 간부가 창구 앞에 직접 나와서 챙기고 안내까지 해 주어서 초 스피드로 60일 체류 가능한 스탬프를 받았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올드 델리의 여행자 거리가 있는 빠하르간지로 가는데 저녁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교통 체증이 정말 심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은 한마디로 混雜(혼잡)의 종합 세트였다.
낡은 차량들이 많아서 매연이 심각 했다 . 호텔에 도착하니 여기서도 여권을 제시하면 복사하고 숙박계를 쓰고 방 키를 건네 주었다. 빠하르간지 골목 안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는데 젊은 사장이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1층 로비에 앉아 궁금 한 것 들을 물어 보고 한참 동안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3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17편 계속)
올드 델리의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간지는 혼잡의 종합 세트였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 따위는 아예 없다. 여기에 소 님이라도 한마리 등장 하시면 정체는 상상 초월이 되지만 잘도 참고 소 님이 비켜 주실 때 까지 기다린다
영혼의 고향 바라나시를 감아 흐르는 갠지스강 . 왼쪽에 보이는 성 아래 계단을 가트 라고 한다. 홍수가 나면 범람하기 때문에 성을 높이 짓고 출입문은 강과 반대편으로 냈다. 계단을 통해 성과 강을 연결 했다. 인도는 물론 주변 나라들의 권력자와 부자들이 이 곳에 별장을 짓고 살았다. 여기서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고 믿었다. 가트는 천국으로 통하는 계단 인 셈이다. 100여개가 넘는 천국의 다리가 있다. 부자는 화려한 저택에서 천국행을 기다렸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트 바닥에 누워서 천국행을 기다렸다.
서민들의 천국행 대합실인 가트에서는 초와 꽃을 갠지스 강에 띄워 보내는 사람들이 넘쳤다. 갠지스 강은 화장한 뼈를 뿌리고 소과 사람이 함께 목욕하고 밤 마다 종교 제사 의식을 치루는 곳 이고 불가촉 천민들이 빨래로 생을 유지하는 삶의 터전 이었다. 주변에는 많은 사두들이 특이한 행색을 하고 명상 삼매경에 빠져있다. 간혹 동전도 구걸 하면서.
한국 여행자들이 워낙 많이 찾아 오는 곳이라 곳곳에 한글로 된 간판과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인도를 찾는 여행자들의 성지라고 불릴 정도로 필수 코스다. 한국인들의 국민 관광 코스가 되 있었다. 류시화 님과 한비야 님의 지대한 영향 탓 이다. 인도 정부는 두 사람에게 훈장을 주어도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작가의 인도인 제자 각각 1명 씩이 이 곳 바라나시에서는 유명인 이었다.
사진 속의 잘 생긴 청년은 카스트라는 신분 계급 제도 때문에 평생 갠지스 강에서 빨래만 하며 살다가 죽을 것 이다. 그걸 운명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도는 불가사의 하다. 배를 타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은 인도의 모순에 대해서는 추호도 관심이 없다. 단지 인도 , 바라나시 , 갠지스에 갔었다는 인증 샷이 중요 할 뿐 이었다. 저 잘 생긴 청년은 그저 괜찮은 사진 모델일 뿐이었다.
델리 시내 곳곳에서 이렇게 길거리 잠을 자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인도는 길거리 인생이다. 나도 길거리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면도를 했다. 솔로 잘라진 머리카락을 털어내고 알코올로 면도 후 소독을 해준다. 인도를 관광만 할 게 아니라 현실을 체험해 보고 싶었다.
갠지스 강의 석양을 감상하기 위해 만수네 보트를 타고 반대편 작은 사막이 있는 곳으로 건너가서 바라나시 갠지스강의가트 쪽을 바라 보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anjh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