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의 대화에 자주 오르내리는 주제들 중 하나가 날씨가 아닐까 싶은데, 물론 비도 굉장히 많이 오거니와, 5월의 홍콩 날씨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낮은 온도(물론 20도 안팎이지만)를 보이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왕 날씨 얘기가 나왔으니, 오늘은 홍콩의 태풍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사실 홍콩에 처음 와서 많이 놀랐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태풍에 대처하는 홍콩 정부의 자세였다. 태풍 온다고 학교를 쉬는 것은 기본이고, 더 심해지면 대중교통 운행 중단에, 더불어 자연스럽게 회사도 일을 멈추고 직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태풍 신호 8호가 예고되면 동네 슈퍼마켓의 식료품이 동이 나는 현상은, 이제 흔하게 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재미있는 풍경이다.
홍콩은 기본적으로 어촌이었고 바다가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1884년부터 정부 건물 앞에 ‘신호센터(信號站)’라는 것을 운영해서 태풍의 신호를 시민들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지금의 침사추이 <Heritage 1881> 쇼핑몰 자리는 원래 홍콩의 수경총부가 자리했었고, 이곳은 항구의 배들에게 태풍 신호를 전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라고 한다. 한 때 홍콩의 신호센터는 모두 42개소가 운영되었지만, 이후 매체의 발달로 그 역할을 점차 넘겨주게 되었고, 2001년 Cheung Chau 長洲 섬의 신호센터가 운영을 중단하면서 모든 신호센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예전에 사용했던 태풍 경보 신호를 이용한 전시물이 <Heritage 1881> 쇼핑몰에 전시되어 있다]
과거에는 다음과 같은 태풍 신호를 사용했는데, 기호로만 이뤄져 있어 태풍의 강도를 표현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 강풍이 북쪽에서 불어옴
▼ 강풍이 남쪽에서 불어옴
❚ 강풍이 동쪽에서 불어옴
● 강풍이 서쪽에서 불어옴
그리하여 1917년부터 숫자와 기호를 조합한 새로운 방식의 태풍 신호 체계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지금 사용하는 신호 체계는 1973년에 고안된 방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기상청에서 태풍 주의보, 태풍 경보 정도로만 분류되어 있는 태풍 경보 체계를 좀 더 다양화하겠다는 계획을 얼마 전에야 발표했는데, 홍콩의 태풍 분류 시스템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오래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위의 표를 보면 1917년에는 7단계로 구별했다가, 1931년에 10단계로 세분화한 후, 다시 1973년부터 5단계로 간소화한 것을 알 수 있다.
1973년부터 적용중인 태풍 경보 신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태풍 신호 1호: 준비단계이다. 모든 학교, 관공서, 사업장은 정상 운영된다.
태풍 신호 3호: 태풍이 점점 강해져 시속 41km 이상 62km이하의 강풍이 영향을 주는 단계이다. 유치원과 특수학교만 수업이 취소된다.
태풍 신호 8호: 강풍이 시속 63km 이상 117km 이하의 세기로 영향을 미치는 단계이다. 모든 학교와 관공서, 사업장 활동이 전면 중단되며, 대중교통은 제한적으로 운행된다.
태풍 신호 9호: 강풍이나 폭풍이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단계이다. 태풍 신호 10호가 발령될 수 있다.
태풍 신호 10호: 허리케인급, 최대 경보 단계이다. 강풍 시속 118km 이상의 세기로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서 태풍 신호 8호에 대해 몇 가지 더 얘기하자면, 1987년부터 홍콩 기상청은 태풍 신호 8호 발령 2시간 전에 8호 발령을 예고하여, 학교와 각 사업장에 있는 사람들을 가정으로 미리 대피시키도록 하였다. 학원업에 종사하는 자로서 수업을 해야만 수입이 발생하는 필자의 경우에는, 아직 8호 경보가 발령되지도 않았는데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야속하다거나 아쉽게 느껴진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인명을 중시하는 홍콩의 경보 시스템에 경의를 표하며 미련없이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사실 요즘은 8호 발령을 기다린다는 게 맞는 표현일 듯하다. 그리고 8호 신호가 네 가지로 나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화살표가 위로 올라가는 경우(▲)는 강풍이 북쪽에서 불어온다는 신호이며, 화살표가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는 강풍이 남쪽에서 불어온다는 신호이다. 또한 화살표가 하나인 경우는 서쪽에서, 화살표가 두 개인 경우는 동쪽에서 강풍이 불어온다는 신호이다.
홍콩에 살면서 처음에는 홍콩 정부와 기상청의 대응이 많이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지금은 홍콩의 이러한 시스템과 대응에 엄지가 저절로 올라가게 된다. 지금은 오히려 한국에서 지낼 때의 필자의 태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응이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인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
태풍 관련 이야기를 아직 못다했는데, 왠지 모를 지면의 압박을 느낀다. 편집장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다음 주에는 기타 날씨와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태풍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럼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하고 다음 주 알쓸홍잡에서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다.
광동어 한마디
A: 而家打緊風呀,你快啲返屋企啦!(지금 태풍이 오고 있어요, 빨리 집으로 가세요!)
yi4 ga1 da2 gan2 fung1 a3, nei5 faai3 di1 faan1 nguk1 kei2 la1!
B: 幾多號風球呀? (태풍 신호 몇 호예요?)
gei2 do1 hou6 fung1 kau4 a3?
A: 而家三號風球,就嚟八號風球呀。(지금은 3호인데, 곧 8호예요.)
yi4 ga1 saam1 hou6 fung1 kau4, zhau6 lai4 baat3 hou6 fung1 kau4 a3.
- 이 프로그램은 RS 어학원에서 이하나 광둥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홍콩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내용이나 광둥어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이쪽으로 문의해 주세요.
(문의 kimzang81@naver.com 9250 5687)
RS 어학원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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