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학위원회, “시험점수는 ‘성취가능성’ 반영 못해”
(올랜도=코리위클리) 박윤숙-김명곤 기자 = 미국 대학 진학을 위한 수학 능력 평가 시험인 SAT에 새로운 점수가 도입된다.
SAT를 관장하는 미국 대학위원회(The College Board)가 지원자들의 환경을 고려하는 ‘역경 점수(Adversity Score)’를 도입하기로 했다.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는 16일 미국 대학위원회가 수학과 영어 능력을 보는 것 외에, 지원자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에도 점수를 매겨서 각 대학이 참고하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역경 점수’는 50점을 평균으로 1에서 100까지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경 점수는 미국 인구조사 자료를 토대로 응시 학생이 거주하는 동네의 빈곤율과 범죄율, 다니는 고등학교 수준 등 15가지 요소를 고려하는데, 인종은 고려 요소에서 빠졌다.
하지만 역경 점수는 영어와 수학 등 시험 점수와는 별개다. 각 대학에 따로 보내서 입학 사정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학생들은 자신이 몇 점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참고로 지난 2018년 영어와 수학을 합친 SAT 평균 점수는 1068점이었다. 최고의 명문 으로 꼽히는 하버드대학교의 지난해 신입생 SAT 평균 점수는 2237점이었다.
그렇다면 대학위원회가 왜 역경 점수를 도입하기로 한 것일까.
대학위원회는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보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가령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들은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 등 부모의 지원을 통해 점수를 올릴 수 있지만, 가난한 환경의 학생들은 이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하여 시험점수가 높지 않다. 하지만 시험 점수는 그렇게 높지 않아도 주어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는데 이런 점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대학들은 입학 사정 과정에서 SAT와 학업성적 외에도 스포츠나 봉사 활동, 교사 추천서, 학생 본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 등 뿐 아니라 다양성을 위해 인종을 고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종 고려 정책은 상당한 논란을 가져왔다. 흑인이나 중남미계보다 비교적 성적이 높은 아시아계나 백인 학생들이 역차별 받는다는 주장으로, 현재 하버드대학교를 상대로 아시아계 학생들이 제기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원고 측은 아시아계 학생들이 학교 성적이나 SAT 점수가 더 좋은데도 호감도와 용기, 친절 등 개인적 특성 부분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합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한편 요즘 미국에서는 유명 배우와 기업인 등이 부정한 방법을 써서 자녀를 일류 대학에 보낸 혐의로 기소되는 등 대학입학 부정사례가 발각되어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고 있다. 대학 운동부 감독에게 뇌물을 주고 자녀를 운동 특기자로 입학시키거나, 학력 평가 시험을 다른 사람이 대신 치르는 방법, 또 시험 관리자를 매수해 성적을 조작하는 방식을 동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학위원회가 SAT에 새로 ‘역경 점수’를 도입한다는 소식이 나왔는데 찬반 논란이 뜨겁다. 단지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학업 점수가 폄하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각 대학이 임의로 지원 학생들의 배경을 고려해온 만큼 ‘역경 점수’ 제도는 훨씬 더 객관적이라며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편 SAT ‘역경 점수’는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이미 시범 도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대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예일대학교와 플로리다주립대학, 트리니티대학 등이 참여했는데, 올해는 150개 대학으로 확대하고, 계속 참여 대학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