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장에 등장한 플라스틱 울타리 기둥
만약 인류에게 ‘플라스틱(plastic)’ 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이 어땠을까?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미 인류에게 플라스틱은
삶의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된 지 오래이다.
그러나 편리한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파괴와 이로 인한 보건 문제로 논란이 점점 커지면서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등장한 지 오래 됐다.
뉴질랜드 정부도 오는 7월부터 상점에서의 비닐봉투 사용을 전면 제한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플라스틱 문제에 대처하고 나선 상황이다.
갈수록 지구촌 주민들의 이슈가 되고 있는 플라스틱에 대해 알아보면서 폐기물을 줄이고 또한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는 기업들의 노력도 함께 소개한다.
<한 세기 이상 인류 생활을 지배한 신물질>
백과사전에서는 <플라스틱은 간단한 유기화합물을 많이 결합해 만든 고분자 화합물로 열이나 압력을 가해 어떤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인공재료, 또는 이런 재료를 사용해 만든 물건을 말하며‘합성수지’라고도 한다>고 정의한다.
플라스틱 원료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인데 가장 주된 원료는 석유이며 이들 원료에서 추출한 물질에서 분자량이 작은 원료를 먼저 만든 뒤 이것을 이어붙여 고분자로 만드는 방식으로 생산된다.
문헌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인간이 만든 최초의 플라스틱 물질은 1855년에 영국 화학자이자 발명가였던 알렉산더 파크스(Alexander Parkes, 1813~1890)가 ‘클로로포름(chloroform)’ 과 ‘피마자유’ 혼합물로부터 ‘파크신(Parkesine)’ 이라는 유연하고 내구성 있는 물질인 ‘셀룰로이드(celluloid)’를 개발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파크스는 이 물질로 1862년 런던 세계박람회에서 동메달을 받았는데, 야금술을 연구하던 파크스는 합금 강도를 높이고자 금속 합금에 소량의 인을 첨가하자고 한 사람 중 하나로 납에서 은을 추출하는 방법인 일명 ‘파크스 법’의 발명자이기도 하다.
그의 발명에 뒤따라 1870년에는 미국 발명가 존 W. 하이아트(John. W. Hyatt)가 ‘질산셀룰로오스(nitrocellulose)’와 장뇌의 균일한 분산액으로 역시 셀룰로이드를 만들어 특허를 받았다.
셀룰로이드는 인장강도가 크고 물이나 기름, 묽은 산에 강한 질긴 물질로 색상도 다양하며 생산비도 저렴, 당시에도 머리빗 등 대량 생산이 요구되는 각종 생활용품에 다양하게 응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1909년에는 벨기에의 레오 베이클런드(Leo Baekeland)가 ‘페놀(phenol)’ 과 ‘포름알데히드(formaldehyde)’를 이용한 제조법을 창안, ‘유니온 카바이드(Union Carbide)사’가 자체 상표명으로 이름을 붙인 ‘베이클라이트(Bakelite, 페놀수지)’가 잇따라 등장했다.
이 합성수지는 특히 절연기능이 있어 당시 한창 도래 중이던 전기시대에 기존의 셀룰로이드를 대신해 전화기를 비롯한 각종 전기 기계 기구나 공업용품에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플라스틱 시대가 열렸다.
그 뒤에도 분자물리학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가운데 1933년 영국에서 ‘폴리에틸렌(polystyrene)’이, 그리고 1938년에는 미국 ‘듀폰(Dupont)사’ 에서 최초의 합성섬유인 ‘나일론(nylon)’이 발명되는 등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들이 등장해 우리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 태평양의 쓰레기섬
<전쟁 양상까지 바꿨던 플라스틱>
유사 이래 동서 고금의 전쟁터에서 새로운 기술이나 재료들이 등장하면서 승패를 가른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임진왜란 당시 등장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그러했거니와 화약이 발명된 후 나온 총이나 대포의 발전은 전쟁 자체의 승패 뿐만 아니라 국가 간 국력차를 단기간에 벌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플라스틱 역시 제 2차 세계대전의 방향을 크게 바꾸는 역할을 했는데, 특히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플라스틱 제품인 폴리에틸렌의 등장과 이를 이용한 대량 생산이 이에 해당된다.
흔히 PE라고 불리는 폴리에틸렌은 열가소성 플라스틱의 하나로 가볍고 유연해 병이나 헬멧, 수도관, 포장재, 전기절연체 등 각종 공업재부터 일용잡화에 이르기까지 생활 구석구석에서 사용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는 대표적인 범용 플라스틱이다.
인류 역사에서 5대 화학 발명품으로까지 불리는 폴리에틸렌은 1933년 영국 화학회사인 ‘임페리얼 케미컬 인더스트리(ICI)’에서 고압 반응에 관한 실험 중 실험기구에서 산소가 누출돼 왁스와 같은 물질이 우연히 생성된 것을 발견하면서 상용화의 길이 트였다.
실제로는 이보다 30여년 이상 앞선 1898년 독일의 한스 페치만(Hans F. Pechmann)이 다른 물질을 연구하던 중 실험관 바닥에 밀랍 물질이 달라붙은 것을 발견하고 이를 ‘폴리에틸렌’ 이라고 이름을 붙인 바 있다.
이후 잊혀졌던 이 신물질은 영국에서 재발견돼 2차대전이 본격 시작됐던 1939년에는 ICI사에 의해 산소를 이용한 고압합성법으로 대량 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을 포함한 연합국은 독일 U보트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 폴리에틸렌의 등장은 그때까지 무게로 인해 비행기는커녕 배에도 쉽게 장착하지 못했던 레이더 설계에 혁신을 가져와 1942년에는 야간 비행기에도 레이더를 운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결국 레이더를 단 비행기들의 활약으로 이후 U보트들이 차례로 격침됐으며, 영국에서 경량 레이더 기술을 전수받은 미국도 이를 태평양 전장에서 이용해 신종 플라스틱은 2차대전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 중 하나를 한 셈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패전국 독일에서는 전후인 1953년에 카를 W. 치글러(Karl W. Ziegler)가 할로겐화 티타늄 촉매를 이용한 고성능이자 저비용의 폴리에틸렌 개발에 성공했다.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폴리에틸렌 생산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치글러는 관련 업적으로 이탈리아의 줄리오 나타(Giulio Natta)와 함께 1963년에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 산처럼 쌓인 플라스틱 폐기물들
<썩지 않는 골치덩어리 플라스틱>
그러나 그동안 우리 생활에 비할 바 없이 큰 편리를 가져다 준 플라스틱이 무분별한 남용과 폐기로 인해 인류의 미래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포장에 쓰인 플라스틱이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듯 플라스틱 제품들은 사용기간은 비교적 짧지만 벼려진 후 분해는 물론 녹슬지도, 그리고 쉽게 썩지도 않는 반영구적 특성이 오히려 큰 문제이다.
종이컵 등 주변에서 흔히 사용하는 1회용 용기에 방수용으로 코팅되는 폴리에틸렌은 제거도 쉽지 않거니와 페트병과 빨대의 주원료인 ‘폴리에스테르(polyester)’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halate)’ 같은 물질들은 매립 후 500여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
최근에는 바다에서 떠도는 플라스틱 폐기물들이 해양동물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며 미세 플라스틱으로 쪼개져 결국에는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잇따라 나왔다.
이는 특성상 플라스틱이라고 이름 붙였던 새 물질이 인간의 손에 의해 탄생한 후부터 생산된 제품들은, 결국 제대로 분해되지도 않은 채 지금까지도 지구상 어딘가에 묻혀있거나 떠돌며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근래에는 크기가 1mm 이하에 불과한 ‘마이크로비드(microbead)’가 문제인데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지는 이 재료는 각질 제거용 세안제나 치약에도 들어간다.
하수처리에서도 걸러지지 않은 채 하수구를 통해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 마이크로비드는 물고기 알로 오인돼 바닷새가 먹거나 어류 체내에 축적되며, 자석처럼 오염 물질을 잡아당긴 채 인간이 생산하는 소금에까지 달라붙는다.
어차피 바다로 들어간 모든 플라스틱은 햇빛과 파도로 잘게 쪼개져 나중에는 1mm의 1/1000에 불과한 1μm까지 크기만 작아질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 2015년 일본 도쿄에서 잡힌 멸치 64마리 중 49마리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는데, 호주 한 연구기관은 바닷새 186종을 심층 조사한 결과 오는 2050년이면 모든 바닷새의 99.8%가 플라스틱을 먹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마이크로비드 문제가 대두되자 미국에서는 2017년부터 사용을 전면 중지했으며 ‘유니레버(Unilever)’나 ‘존슨 앤 존슨(Johnson & Johnson)’ 같은 국제적 위생용품 제조업체들도 사용 중단에 나섰다.
▲ 쓰레기 매립장
<국민 1인당 연간 31kg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
‘뉴질랜드 플라스틱산업협회(NZ Plastics Industry Association)’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는 플라스틱과 관련된 기업이 300곳 이상에 종업원이 9000여명, 그리고 연간 매출액은 26억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격적인 석유화학 공장이 없어 플라스틱 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raw materials)’는 주로 아시아와 미국에서 전량 수입하는데 지난 2014년에 25만479톤의 원료가 수입됐다.
이들 원료로 만든 제품 중 60%는 페트병 등 ‘포장용(Packaging)’ 이며 40%는 기타 제품인데, 또한 포장용 중 60%는 ‘단단한(Rigid) 상품’을, 나머지는 ‘유연한(Flexible) 제품’ 제조에 쓰였다.
한편 뉴질랜드인들이 400곳에 가까운 전국 각지의 ‘매립장(landfill)’으로 배출하는 ‘플라스틱 쓰레기(plastic waste)’는 연간 25만2000톤(인당 31kg)에 달하며 이는 315만6000톤에 달하는 전체 매립쓰레기 중 8%에 해당된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무게가 가벼워 매립쓰레기 중 부피 비중은 20%나 차지하는데, 문제는 수년 전부터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중지하면서 매립장으로 가는 플라스틱 쓰레기도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한편 재활용과 녹색쓰레기를 포함해 연간 뉴질랜드인들이 배출하는 ‘폐기물(discard)’은 인당 3200kg, 전체로는 1천550만톤이나 된다.
또한 매년 뉴질랜드인들은 약 10억장의 각종 쇼핑용 비닐백을 사용했는데, 이미 사용을 중지한 대형 슈퍼체인인 ‘푸드스터프스(Foodstuffs)’ 에서만 연간 3억5000만장이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9년 비닐봉투를 10센트 유료로 전환한 ‘웨어하우스(Warehouse)’의 경우 사용량이 연간 4300만장에서 1800만장으로 크게 감소한 바 있다.
▲ 퓨처 포스트가 만든 울타리 기둥
<사용량 줄이고 재활용은 늘려야>
쓰레기 처리 문제는 어느 나라나 항상 골치거리이지만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는 수십 세대를 뛰어넘는 영구적 재앙을 초래할 초인류적인 문제이다.
뉴질랜드 정부 역시 플라스틱 사용량을 최대한 줄이고 재활용률은 높여 쓰레기 배출량을 최소화하고자 고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내의 한 기업 관련 행사에서 폐기된 플라스틱으로 농장과 목장들에서 많이 쓰는 울타리 기둥을 만든 업체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내셔널 필드데이즈(National Fieldays)’ 에서 ‘퓨처 포스트(Future Post)사’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최고상(Agricultural Innovation award)’을 받았는데, 특히 기둥 생산에는 버려진 비닐백이나 플라스틱 우유병이 주로 사용됐다.
회사 관계자는 수년 간 연구 끝에 상용화에 성공했다면서 첫 제품 제조에 지난 6개월 동안 오클랜드 지역에서 나온 500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기둥 한 개 제작에는 우유병 360개가 필요하며 개당 가격은 25달러로 목재 기둥의 20달러보다는 높다면서, 하지만 최소 보장기간은 50년이지만 아마도 250년은 견딜 정도로 경제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한 세기 이전에 등장해 인류의 삶을 이미 송두리째 변화시킨 플라스틱을 우리 주변에서 몰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해악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미리 대처하지 않는다면 플라스틱 남용은 기후변화처럼 인간은 물론 지구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된다는 사실 역시 자명하다.
이제는 비닐백 금지 등 국가 시책에 대한 적극 동참은 물론 조금 불편하더라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은 늘리면서 인류적 재앙 방지에 함께 나서는 것이 우리들 각자에게 숙명으로 주어진 시대가 됐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