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해 예산안을 공개하면서 세계 최초의 ‘웰빙 예산’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언론들에서도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며 관심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 언론의 가장 큰 뉴스거리는 웰빙 예산 내용들보다는 

공식 발표전 벌어진 예산안 유출이었다. 

이를 두고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제기한 해킹 주장이 지어낸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정부의 도덕성과 신뢰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예산 자체도 웰빙적인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웰빙 예산’이라고 제목을 달고 

차별화할 정도로 이전 예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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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신뢰성에 먹칠한 예산안 거짓 해킹 파문

 

그랜트 로버트슨(Grant Robertson) 재무장관(Finance Minister)이 의회에서 웰빙 예산을 공식 발표한 날은 지난달 30일.

 

하지만 그 이틀 전인 28일 야당인 국민당이 예산안 일부를 공개했다.​ 

 

이와 관련, 예산 담당 최고 실무 책임자인 가브리엘 마크로우프(Gabriel Makhlouf) 재무비서(Treasury Secretary)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무부 컴퓨터 시스템에 ‘의도적’ 이고 ‘조직적’ 인 해킹 시도가 2,000여차례나 있었다고 밝혔다.

 

재무비서는 정부의 금융 및 경제 정책에 대해 재무장관을 보좌하는 영향력 있는 자리이다.

 

그는 “예산안에 대한 해킹 공격은 매우 심각한 사건” 이라며 “재무부는 컴퓨터 시스템이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해킹된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고 정부통신보안국(GCSB)의 조언을 받아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로버트슨 장관은 해킹의 배후로 국민당을 지목했다.

 

하지만 정부통신보안국은 이미 28일에 재무부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해킹 시도가 없었다는 사실을 마크로우프 측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로우프 비서가 거짓으로 해킹 공격 주장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찰 조사 결과도 불법적인 행위가 없었고 국민당은 재무부 웹사이트에서 단순히 ‘검색’ 만으로 예산안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버트슨 장관은 예산안이 공표 전에 그런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실망스런 일이라고 말했고, 마크로우프는 아무런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국민당은 이번 거짓 유출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로버트슨 장관과 마크로우프 비서의 사퇴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자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는 장관들은 보고된 사항에 충실할 뿐이라며 로버트슨 장관을 두둔했다.

 

마크로우프 비서는 9월 1일부터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로 내정되어 오는 27일자로 현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정부 세계 첫 '웰빙 예산' 도입 홍보

 

올해 예산안 책자의 제목은 ‘웰빙 예산’(THE WELLBEING BUDGET)이다.

 

지난해 말 정부는 세계 최초로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중심으로 2019회계연도 국가 예산안을 설계할 계획임을 밝혔다. 

 

당시 로버트슨 장관은 “국민의 주택 보유율이 6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자살률과 노숙자, 식량 지원금이 증가하고 있다”며 “뉴질랜드인들이 일상에서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도입 취지를 밝혔다. 

 

웰빙 예산안은 4년간 총 256억달러를 편성해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을 도모하는 게 목적이다.

 

웰빙 예산의 우선순위는 뉴질랜드의 삶의 기준과 웰빙의 개선에 장기적으로 크게 기여하는 것들을 토대로 하게 된다.

 

로버트슨 장관은 이번 접근법은 현상 유지에서 탈피하려는 중요한 시도라며 뉴질랜드는 이제 성공을 다른 식으로 측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버트슨 장관은 “우리는 단지 국내총생산(GDP)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웰빙을 개선하고 환경을 보호하며 공동체를 강화하는 방안에 의존할 것” 이라고 설명했다.

 

아던 총리도 이번 예산이 경제적 번영을 측정하는 방법에 변화를 주는 세계 최초의 시도라고 설명했다.

 

아던 총리는 “어려운 과제들에 조기에 개입하고 투자해, 결국에는 비용을 아끼고 삶을 구해 내라는 요구를 아주 자주 들어왔다”며 “이번 예산은 이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 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웰빙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은 정신건강과 아동복지에 돌아갔다.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4년간 19억달러 규모의 예산이 편성됐다. 중증 정신질환자로 분류되지 않아 그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던 우울증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이 중 5억달러를 배정했다. 특히 지난 3월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일어난 총격 테러 피해자의 정신 치료에도 550만달러를 따로 마련했다.  

 

아동 복지예산에는 10억달러가 편성됐다. 유니세프 뉴질랜드지부에 따르면 뉴질랜드 어린이 중 27%가 빈곤 속에서 살고 있어,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폭력 및 성폭력 대책에는 3억2,000만달러가 들어갔다. 뉴질랜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가 심한 나라에 속한다. 

 

이전 예산들과 크게 다를 것 없다는 비판

 

웰빙 예산에 대해 국민당은 실체가 없는 보여주기식 조치라고 비판했다.

 

국민당 사이먼 브릿지스(Simon Bridges) 대표는 “경제는 크게 위축되고 있는데 정부는 경제를 자극할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예산은 겉만 번드르르하고 실체가 없다”고 말했다. 

 

여론도 웰빙 예산이 웰빙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이전 예산들과 차별화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뉴질랜드 헤럴드지 고정 논객인 존 로우한(John Roughan)은 칼럼을 통해 ‘웰빙 예산’이 유의어 반복이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뉴질랜드 경제성장률이 2.6%로 비교적 견고하지만 내년에 재정적자를 보여도 현 정부가 올 예산과 같은 복지정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예산에는 부족한 인프라와 주택 공급, 낮은 생산성 등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 예산의 웰빙 요소와 국민의 걱정거리 불일치

 

웰빙 예산이 보통 뉴질랜드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에 맞춰 조정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시장조사기관 ‘EY 스위니(EY Sweeney)’는 뉴질랜드인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걱정거리들이 예산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웰빙 예산이 목표 달성에 실패할 리스크가 있다고 지적했다.

 

‘EY 스위니’가 지난 3월 1,000여명의 뉴질랜드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비자 전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가장 큰 걱정거리로 생활비 상승을 들었고 49%는 에너지 비용 증가를, 48%는 기본 서비스 비용 상승을 각각 꼽았다.

 

‘EY 스위니’는 인플레이션이 낮은 데도 불구하고 생활비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을 차지한 원인은 임금 상승률이 그만큼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또한 응답자의 61%가 올해 수입 증가를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 이번 웰빙 예산에는 그에 대한 내용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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