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하는 항공사 덕에 조기 귀국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 한바퀴 (25)
Newsroh=안정훈 칼럼니스트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가는 야간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탑승하게 될 항공사 카운터에 갔더니 젊은 남자 직원이 깐깐하게 여러가지를 체크했다. "캄보디아 비자는 있느냐?" "왜 여권에 한국 출국 스탬프가 없느냐?" " 캄보디아 아웃 티켓은 있느냐?" "얼마나 있을 거냐?"
꼬치꼬치 따져 묻는 폼이 항공사 직원이 아니라 캄보디아 이민국 직원 같았다. 나는 딴 소리 않하고 공손하게 답변했다. "도착 비자를 받을거다. 여권을 분실해서 새로 발급 받았기 때문에 한국 출국 도장이 없다. 아웃 티켓은 없다. 전에도 캄보디아를 갔었는데 아웃 티켓이 없이 입국 했었다. 이번에는 한 달 정도 있을거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비아 반다라나이케 국제 공항의 항공사 카운터의 직원은 아웃 티켓이 없으면 발권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주변 국가로 가는 버스 티켓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전에 캄보디아를 여행 했었는데 아웃 티켓을 요구 받지 않았었다고 설명 했지만 젊은 남자 직원은 규정에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발권을 거부했다.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 때 시간이 밤 10시 30분 쯤이고 발권 마감은 밤 11시 20분이라고 했다. 불과 50분 안에 아웃 티켓 표를 만들어 내야 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촉박했다.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검색이나 메일 그리고 결재 등은 아예 안됐다. 혹시 당신네 공항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겠냐? 고 물었지만 冷笑(냉소)와 함께 단칼에 거부(NO!)를 날려 주었다.
그는 친절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차가웠다. 항공사 직원이 아니라 권위적인 후진국 공무원 같은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내가 쩔쩔매며 허둥대는 상황을 즐기는 듯 했다. 이거 똘아이 아니야?
그러면서 나는 이 항공사를 선택 한 것을 후회했다. 2014년 이 회사의 보잉 777이 인도양에 추락한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격추되는 참사가 발생 했었다. 스카이 트랙스 선정 5성급 항공사가 하루 아침에 폐업 위기에 까지 몰리며 최악의 항공사로 몰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로지 가격이 싸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인명은 재천이라고 깝쭉대며 선택했다. 역시나 싼 게 비지떡이었다. 직원이 하는 짓 까지도 진상이었다.
그러나 길게 말 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카톡은 연결이 됐다. 한국은 새벽 3시 정도 됐을 테니 단 잠을 깨우는 게 미안하긴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큰 딸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고 약 2주 정도 후로 해서 한국 행 가장 싼 비행기표 를 끊어서 카톡 사진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예약 확인증을 카톡으로 받았다. 그러데 한글로 된 메일이었다. 영문으로 된 컴펌 메일은 24시간 후에 보내 준다고 써있다. 시간이 없으니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다. 그냥 카운터로 가서 보여 주었더니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안된다고 거부했다.
표정이 완전 싸이코 같았다. 자기는 한국어로 된 예약증을 확인 할 수 없으니 영어로 된 걸 가져 오라는 것이었다. 한글로 쓰여져 있기는 하지만 날짜, 시간, 예약 번호, 금액, 항공사 명과 플라이트 넘버 등은 알 수 있지 않느냐?고 설명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감 시간이 다 되어 갔다. 그는 내가 비행기를 못 타기를 바라는 듯 했다. 어쩔수 없이 항복의 백기를 들었다. 설득도 사정도 모두 포기하고 M 항공사 발권 카운터에서 바로 구입 할 수 있는 표를 사기로 했다. 프놈펜에서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아웃 티켓을 사겠다고 했더니 살짝 입 꼬리가 올라간다. 승리자의 득의만만한 표정이었다. 사무실을 가르쳐 주면서 10분을 기다려 주겠다고 했다. 감사 합니다 ~ 나으리~
사무실로 가니 입구에 나이 든 여자 매니저가 있었다. 한글로 된 예약 확인증을 보여 주며 상황을 설명하고 여기서 아웃 티켓을 살 수 있느냐? 고 물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듣더니 여기서 다시 티켓을 살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자기를 따라 오라고 했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다른 창구로 가서 직원한테 발권 해주라고 했다. 그리고 매니저가 아웃 티켓을 보증한다는 한 쪽 짜리 양식에 싸인해서 나에게 주었다. 알고보니 이런 경우에 쓰이는 확인 문서 양식이 있었던 것이다.
매니저는 바로 이해 하는데 담당 직원은 절대 이해를 못하는 이유는 뭘까? 서비스 마인드의 차이도 있을 꺼고 융통성이나 업무 지식 그리고 경험의 차이도 있을 것 같다. 어쟀든 인생은 ‘운 빨’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짱 매니저를 만나지 못 했으면 나는 비행기를 타지 못했을 것이다. 고약한 사람을 만나 당황하고 울화가 치밀었지만 다행히 융통성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 또 한번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거의 뛰다시피 해서 보딩 게이트에 도착해서 탑승을 했다. 스리랑카는 나를 곱게 보내 주지 않았다. 그래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는 나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 寶王三昧論(보왕삼매론)에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고 했지 않은가? 곤란을 귀찮은 것으로 여기지 말고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회피하지 말고 그걸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교훈을 주려고 했을거야. 이러다가 나 成佛(성불) 하는거 아니야 ?
쌩 쑈 덕분에 갑작스럽게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바람에 미정이었던 귀국 날짜가 얼떨결에 정해진 것이다. 원래는 캄보디아에 갔다가 주변의 라오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 아시아에서 겨울을 보내고 만 2년을 채워서 귀국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갑 인줄로 착각하는 항공사 직원의 완장질 덕분에 한 겨울인 동짓달 추운 12월에 조기 귀국하게 된 것 이었다. 이것도 운명의 바람이 이끄는 것이라 생각 했다. 연말연시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게 됐으니 이 또한 행복하지 않은가?
<26회 계속>
콜롬보 공항 - 네곰보 - 캔디 - 엘라 - 탕갈레 - 갈레- 벤토나 - 콜롬보 시티의 코스로 여행 했다. 스리랑카는 남한의 2/3 정도 면적의 작은 섬나라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합한 크기와 비슷하다. 국토가 좁은 데도 도로와 철도 사정이 좋지 않아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버스는 대부분 에어컨이 없다. 난폭 운전 탓에 안장 없는 말을 탄 것 같다. 기차는 단선 철도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건설 된 걸 그대로 사용한다. 우리나라 옛날 비둘기호와 비슷하다. 정해진 좌석이 없다. 좋게 표현하면 추억 열차가 여전히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스리랑카는 불교 국가다. 동네마다 이렇게 불상을 모신다. 밤에는 부처상 머리 뒷편으로 빨노파 윈색 네온싸인이 켜지고 사이키 조명처럼 빙글빙글 돌아가 현란하다.
갈레 성에 있는 조형물. 식민지 시대의 억압과 착취를 쉽고 간결하게 표현했다.
콜롬보 시내는 툭툭이에 요금 미터도 있다. pick me 라는 app으로 호출 할 수도 있어 편하다. 세상의 진화를 새삼 실감 했다.
스리랑카를 떠나는 날 , 밤 비행기를 타야해서 에어컨이 잘 되는 최신 쇼핑 몰 - 시티 센타로 갔다. 영화관에서 보헤미안 렙소디를 상영하고 있었다. 5천원 주고 피서 겸 해서 들어갔다. 마침 비행기 탈 때 입으려고 준비한 자켓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냉동 될 뻔 했다. 의자가 뒤로 재껴졌다. 돌비 시스템도 훌륭했다. 영화가 아니라 라이브 공연을 보는듯 했다. 1970 ~80년대 유행 했던 퀸의 노래들이 친숙한 탓인지 2시간 반을 푹 빠져서 감상 했다. 스리랑카에서 동성애자 가수의 영화를 본 게 왠지 조화가 안맞는 듯 했지만 오히려 가장 인상에 남는 경험 이었다.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모두 이 영화 보라고 적극 추천 했었는데 모두가 좋았다고 했다.
콜롬보 시내는 최근 들어 초대형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었다. 중국 자본이 밀려 들어와 곳곳에 중국어 간판과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중국의 경제 식민지로 변하고 있었다.
갈레의 올드 타운 중앙에 있는 요새의 중앙 광장이다. 지금은 스리랑카 국기가 펄럭이고 있지만 수백년에 걸쳐 포루투갈 , 네덜란드, 영국의 국기가 걸려졌던 역사적 상징 광장이다. 갈레는 포루투갈 식민지 시대의 수도였다. 해안가에 유럽식 성을 쌓고 포대를 설치 했다. 그 후 네데란드가 통치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영국이 차지 했다. 영국인들은 실론 티에 열광 했다.아프리카 커피의 이면에는 아프리카인들의 한숨이 담겨 있듯이 실론티에는 스리랑카 서민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다. 갈레의 올드 타운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다. 수도인 콜롬보에서 기차로 2시간 반 정도 남쪽에 있다. 거리는 117km 정도다. 에어컨 버스도 다닌다. 인도양을 바라 보고 달리는 구간이 많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이 시원해진다.
어촌 마을인 네곰보의 바다에서는 지금도 옛날이나 똑같은 방식으로 돚단배들이 고기 잡이를 하고 있었다.
네곰보 해변에 고깃 배가 들어 오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어시장에서 팔려 나간다. 냉동 냉장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아 빨리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칼잡이의 생선 해체하는 솜씨가 날쎄다. 한 마리를 사는게 아니라 조각으로 나누어서 사간다.
잡아온 고기 중에 작은 생선들은 백사장에서 바로 털어 내서 옆에 있는 건조장에서 말렸다.
엘라의 나인 아치 브릿지. 차 밭 사이를 달리는 구식 디젤 기차로 유명하다. 고원 지대라 날씨가 좋다. 하루에 한번씩 스콜이 쏟아진다. 볼거리는 영국 식민지 시대 철도 건설 때 만들어진 나인 아치 브릿지 뿐이다. 홍차 밭과 파랗고 투명한 하늘도 그냥 봐 줄만하다. 그런데도 서양인 여행객들이 득실득실 하다. 토요일 새벽 캔디에서 엘라로 가는 첫 기차는 전체가 외국인 전용 퍼스트 클라스 특실로 편성돼 있었다. 그 기차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식민지 시대의 향수를 찾아 가는 여행인듯 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안정훈의 혼자서 지구한바퀴’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an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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