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룡 칼럼니스트
옛 신라의 수도인 '徐羅伐(서라벌)', 경주는 고대 계획도시로 약 천 년 동안 신라의 도읍지를 단 한번도 옮기지 않았다. 그 역사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에 도시 전체가 박물관으로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시대 경주의 인구는 12만 가호가 살았다고 전해오는데, 지금으로 보면 약 100만의 인구가 살았다는 얘기다. 이는 당시 세계적인 대도시였다는 것인데 지리 환경적으로 가능한 얘기인지 궁금하다.
옛날 경주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밥을 짓기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검은 연기가 서라벌의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었다고 하고, 이 때문에 나무 태우는 매연으로 숨쉬기 조차 힘들어 국법으로 나무를 태우지 못하도록 하여 숯으로 밥을 지었다고 하는 얘기도 있기는 하다.
아무튼 경주는 수학여행, 졸업여행 등으로 한 번쯤은 불국사와 다보탑, 석가탑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아침 일찍 등산 겸 석굴암을 다녀오는 코스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이 찾는 곳이다.
나는 경주를 찾으면 感恩寺址(감은사지) 삼층석탑을 가장 좋아해 빼놓지 않는다. 감은사지 앞에 있는 높이 각 13m의 동서 쌍탑으로 같은 구조와 규모로 세워져 있다. 해질 무렵 이 두 탑이 동ㆍ서 양쪽에 외롭지 않게 서서 보여주는 편안한 안정감과 아름다움으로 큰 위안을 준다.
감은사는 682년에 건립되었는데, 문무왕이 불력(佛力)으로 왜구를 격퇴시키려 하였으나, 절을 완공하기 전에 위독하게 되었다. 문무왕은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킬 것”을 유언하고 죽자 화장한 뒤 동해 감포 앞 바다에 안장하였으며, 신문왕이 부왕인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감은사라 했는데 언제 폐사가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주(월성)김씨의 시조 탄생 신화가 깃든 계림 숲,
그 안에 봉긋하게 솟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부터 5대까지의 능이라는 오릉,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이자 현존하는 신라시대의 유일한 탑인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시대 박씨 삼대 왕의 능이라는 삼릉,
능 위에 나무가 자라오르고 있는 이름 모를 능 등을 둘러봤다.
그리고 신라왕경 지구는 월성을 중심에 두고 각종 시설물이 배치가 되었는데, 신라 왕경 복원으로 찬란했던 신라문화를 재현하고 있는 중이다.
북으로는 전량지, 동으로는 황룡사지, 남으로는 동궁과 월지, 서쪽으로는 대릉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2014년 부터 시작한 복원 사업을 2025년까지를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계속>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룡의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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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해질무렵 감은사지 삼층석탑.jpg (File Size:92.0KB/Download:44)
- 2길에서 본 감은사지 삼층석탑.jpg (File Size:137.1KB/Download: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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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상서장 담.jpg (File Size:158.5KB/Download:31)
- 9삼층석탑 뒤 대숲 소리가 솨~~~~.jpg (File Size:88.4KB/Download:35)
- 10삼각형 꼭지점에서 본 쌍탑.jpg (File Size:98.8KB/Download:41)
- 11멀리 계림 옆 오릉.jpg (File Size:189.9KB/Download:36)
- 15삼릉.jpg (File Size:140.2KB/Download: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