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오늘은 일찌감치 일을 마쳤다.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출발했으니 그럴밖에. 덕분에 댈러스를 막힘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댈러스, 오스틴, 샌 안토니오를 지나왔다. 텍사스 4대도시 중 휴스턴을 빼고는 오늘 하루에 다 지났다.
8시간 취침 후 출발했기 때문에 4시간 정도를 쓸 수 있다. 어제 7시간 가량 달리고 남은 시간이다. 휴게소에 들러 2시간 휴식을 마저 취해야 7시간이 들어온다. 오전 7시에 휴게소에 도착했다. 이 시간이면 일찍 출발한 트럭이 있어 자리가 빈다. 문제는 어제 늦게 온 트럭이 주차한 트럭 뒤에 바짝 대고 있어 주차공간 입구를 막고 있다. 문을 두들겨 깨우고 싶었다. 깨워봐야 그 트럭은 그 자리에 주차할 수도 없다. 그 위치에서는 꺽을 수 있는 각도가 안 나온다. 다행히 휴게소 거의 끝나는 지점에 입구가 열린 공간이 하나 있었다. 앞으로는 이 시간에는 트럭스탑을 가는게 낫겠다.
모자란 잠을 보충한 후 7시간을 다시 받아 출발했다. 오스틴을 지날 때는 交通停滯(교통정체)를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댈러스에서 막히는 것에 비하면 약과다. 이후로는 공사구간 아니면 제 속도를 유지했다. 오늘은 날씨도 화창하다.
트럭 연료가 1/4 남았다. 원래 주유 예정이 없는데 매크로를 보내니 90마일 전방의 트럭스탑을 지정해준다. 연료탱크 용량이 양쪽에 100갤런씩 200갤런인데 실제로는 150~160갤런 정도 들어가는 것 같다. 주유 노즐이 멈출 때까지 넣으니 100갤런 들어갔다. 트럭 연료 계기판을 확인하면 80% 정도만 올라간다. 넘치도록 꽉 채워야 200갤런 겨우 들어가는 모양이다. 앞서 탔던 인터네셔널은 210갤런 용량인데 가득 채우면 연료 게이지가 최대선에서 한참을 갔다.
라레도에 도착하면 2시간 가량 남을 것 같다. 휴게소에 멈춰 발송처에 전화를 해봤다. 혹시나 오늘 배달할 수 있나 물어보기 위해서다. 멕시코 억양의 여성이 받았다. 내일 배달인데 얼마나 일찍 갈 수 있나? 내일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선착순 접수다. 오늘은 안 되지? 그렇다. 이미 끝났다. 더 고민할 것 없이 정리됐다. 이 놈의 일욕심은. 70시간 중에서 6시간 23분 남은데다 앞으로 이틀 동안 새로 받는 시간도 다해서 9시간도 안되는구만.
라레도까지 가려다 30마일 못간 엔시날(Encinal)의 러브스 트럭스탑에 들렀다. 거리도 적당하고 러브스 샤워 크레딧도 소멸되기 전에 쓰기 위해서다. 라레도에는 대형 트럭스탑 세 곳이 몰려 있어 복잡할 것 같았다.
오후 2시 30분의 트럭스탑은 널널하다. 아무 자리나 내 편한대로 골라잡을 수 있다. 정비창 옆 주차공간에 후진해 댔다. 내 왼쪽으로는 잔디밭이라 시야가 트였다. 그쪽으로는 트럭이 댈 일이 없으니 사고의 위험도 그만큼 적다.
내일은 7시에 일어나 천천히 준비해서 출발해야지. 저녁으로는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야겠다. 오래된 식빵과 우유를 처리해야지.
남부텍사스, 여기가 미국이야 멕시코야?
또 하나의 최고 월마트를 만났다. Uvalde(발음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음. 우발디인가?) 월마트도 트럭 친화적이다. 트럭 진입이 편하고 트럭 주차 금지 규정이 없다. 게다가 함께 있는 몰에는 중국 뷔페까지 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러 갔다. 원래 어제밤에 하려고 했는데 대기자가 6명이었다. 좀 있다하려고 트럭에 돌아와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에어컨을 틀면 춥고, 끄면 덥고,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어제 샤워 크레딧이 3개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2개로 줄었다. 간밤에 1개가 유효기간이 지난 모양이다. 아깝다. 샤워 크레딧은 있을 때 해야지 아끼다가 없어진다. 오늘 하나 썼으니 러브스에는 1개 남았다. 파일럿 플라잉제이는 4개가 있다.
배달지는 쉽게 찾았다. 바깥 도로에 세우고 체크인을 하니 종이에 큼지막하게 3자를 쓰고는 전면 유리에 붙여 놓으란다. 전화를 해줄 것이라 했다. 2시간이 지나도 전화가 안 왔다. 내 앞의 트럭은 2자를 붙여 놓았다. 사무실에 가서 다시 물어보니 계속 기다리란다. 럼퍼(하역인부)가 아직 안 나온 모양이다. 8시 40분에 도착해서 서류 받고 나온 시간은 정오였다. 이곳은 럼퍼피는 현찰 100달러로 균일가였다.
곧장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Mastar라는 곳인데, 라레도 프라임 야드와 공간을 나눠쓴다. 전에도 와 본적이 있다. 자체 와쉬아웃 시설도 있다. 트레일러가 크게 더럽지 않아 조금 쓸기만 해도 될 정도였다. 정문에서 경비가 검사했을 때도 아무 말 없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완벽하게 깨끗하면 더 좋겠지. 세차비는 마스타에서 프라임으로 따로 청구한다.
Mastar는 컴퓨터에 체크인하면 연락을 문자 메시지로 준다. 문제는 이곳에서 내 전화 신호가 안 잡혔다. 이거 대략 난감한 일이다. 혹시 연락이 왔을까 싶어 건물 내부로 들어가니 드라이버 라운지에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적혀 있다. 와이파이를 연결하니 음성통화도 되고 문자 메시지도 된다. 트럭으로 돌아오니 신호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작동했다. 보통 공용 와이파이는 속도가 느린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유튜브 동영상을 끊김 없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양호했다.
원래는 밤 10시에 짐을 싣는 일정이다. 일찍 오면 일찍 실어줄 것 같아서 왔다. 오후 3시 13분에 20번 도어에 대라는 연락이 왔다. 오후 4시 43분에 서류를 받으러 오라는 문자가 왔다. 내가 실은 화물은 토마토다. 멕시코에서 넘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 내가 배달한 화물도 통관 서류가 있었던 것으로 봐서 멕시코로 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배달처도 알 인터내셔널인데 무역회사 같았다.
업무 시간 4시간 30분 남았지만, 일단 출발했다. 월요일 새벽에 와이오밍 Cheyenne의 월마트 DC로 배달한다. 약 1,200마일이니 오늘 조금이라도 달려줘야, 토요일과 일요일 일정에 여유가 생긴다.
83번 국도를 따라 올라갔다. 일부 구간은 멕시코 국경을 따라 간다. 라디오를 틀었더니 스페인어 방송만 잡혔다. 전화기에는 멕시코로 로밍되었으나 따로 비용 청구가 안 되니 걱정말라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여기가 미국인가, 멕시코인가. 멕시코를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며 운전했다. 히스페닉 음악은 대체로 경쾌하고 신난다. 멕시코 인디 밴드인지 꽤 실력 있는 락음악도 나왔다. 이곳은 예전에 멕시코 땅이었을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대대로 이곳에 살아왔을 것이다. 지금은 미국 영토니 공식적으로야 영어를 쓰지만 실제로는 스페인어가 주류 언어일 것이다. 그러니 영어 라디오 방송이 하나도 안 잡히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몇 도시를 지나고 2시간 정도 남았을 즈음에 주차할 장소를 물색했다. 마침 공사 때문에 차선 하나만 열어놓고 교차해서 一方通行(일방통행)시키는 곳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대기 중에 트럭커패스 앱을 검색했다. 트럭스탑은 너무 멀고 몇 마일 전방의 도시에 월마트가 보였다. 리뷰를 읽으니 트럭 주차에 문제가 없다고 적혀 있다. 여기로 가보자. 막상 가까이 가니 제법 규모 있는 소도시라 그냥 지나칠까 고민했다. 교차로에서 파란색 신호로 바뀌자 직감적으로 우회전해 월마트로 향했다.
도착하니 생각보다 트럭 진입이 용이했다. 한쪽에 주유소가 있는데 트럭 주유도 해서 그런 모양이다. 다른 차량이 없는 끝쪽에 주차했다. 구석진 곳에 다른 트럭도 두 대 있었다. 주차를 했으니 뭐라도 팔아주려고 월마트 매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쇼핑몰 한편에 중국 뷔페 식당이 보였다. 오! 대박. 식당에 들어서니 영업시간이 끝나가 조용했다. 가격은 $8.99, 텍스 포함해도 10달러가 안 됐다. 고급 요리는 없었고, 음식도 많이 빠졌지만 한끼 일용할 식사로는 충분했다. 배불리 먹고 팁 2달러를 테이블에 놓고 나왔다.
오면서 저녁으로 뭘 먹을까 생각했었다. 텍사스에서 유명한 스테이크를 먹나, 멕시코가 가까우니 멕시코 음식을 먹나했는데 결국은 중국 음식이다.
나는 인격신을 믿지 않지만, 오늘 같은 경우에는 어떤 초월적인 힘이나 기운이 작동하고 있지 않나 생각도 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의 나는 불가지론자다) 단순 우연과 직감의 조합일 수도 있다.
Happy, TX
텍사스 북단 Amarillo까지 왔다. 텍사스는 남북으로든 동서로든 하루만에 통과하기 힘들다.
새벽에 일어나 월마트에서 장을 봤다. 과일과 야채 위주로 샀다. 그리고 출발.
83번 국도로 한 100마일 가까이 북쪽으로 가니 전화신호도 안 잡히고, 라디오도 안 잡히는 전파 奧地(오지)가 나왔다. 그곳을 지나니 이후로는 영어 방송만 잡힌다.
텍사스에 몇 번 왔지만 주로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를 이용했다. 이번처럼 500마일 정도를 시골 국도로 다니기는 처음이다. 텍사스하면 평지와 황무지에 돌산이 우뚝 서 있는 풍경이 연상된다. 오늘 달린 길은 의외로 언덕이 많았다. 경사가 가파른 곳도 있었다.
유전지대를 지나왔다. 여기가 오일필드인가? 시추기가 많이 있는데 상표가 없다. 개인 시설인가? 대형 에너지 기업이 운영하는 유전은 다른 데 따로 있나? 유전지대를 지날 때 라이터 개스 같은 냄새가 났다. 오일필드에서 운전하면 돈을 많이 번다던데.
I-27을 타고 오다가 해피(Happy)라는 곳을 지나왔다. 작은 마을인데 인구가 678명이다. 해피 표지판을 보고 언뜻 든 생각은 강아지 이름 같잖아.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주민들(Happy Villagers)이네. 아칸소에는 Hope라는 카운티가 있다. 행복과 희망, 어느 쪽이 더 좋을까?
아마릴로에서 서쪽으로 가면 뉴멕시코다. 북쪽은 오클라호마가 잠깐 나오고 그 위로는 왼쪽에 콜로라도 오른쪽에 캔자스다. 나는 콜로라도 쪽으로 간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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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입양
새벽 2시에 일어나 준비 후 3시가 안 돼 출발했다. 오늘 갈 거리는 510마일. 배달 시각은 내일 새벽 2시다. 10시간 휴식을 생각하면 오후 3시 전에는 근처 트럭스탑에 도착해야 한다.
캄캄한 도로를 따라 달렸다. 이른 새벽, 도로에는 다니는 차량은 거의 없다. 익숙한 축산 오물 냄새에 주변을 보니 지난번 물건 받으러 와서 한참 기다렸던 JBS가 있는 Catcus를 지나고 있었다. 출발하고 100마일을 더 달리고서야 텍사스를 벗어나 오클라호마에 도착했다. 다시 50마일을 더 가니 콜로라도가 나왔다. 아직 날이 어두워 속도는 55마일에서 58마일을 유지했다. 왼편으로 지는 달이 나를 따라오고 있다. 그 옆 빛나는 천체는 인공위성이리라. 저렇게 크고 밝은 것을 보면 우주정거장일지도 모르겠다.
날이 밝자 속도를 60마일까지 높였다. 다니는 차량도 늘었다. 1차선 국도라 뒤따르는 차량은 나를 앞지를 기회를 보느라 분주하다. 간혹 나오는 추월차선에서는 오른쪽으로 빠져 속도를 늦춰주기도 했다. 마을을 지날 때 30마일까지 속도를 줄인 것 외에는 막힘 없이 달렸다.
덴버 가까이 오니 만년설에 덮인 설산이 보인다. 콜로라도를 통과해 와이오밍에 들어섰다. 텍사스에서 콜로라도, 와이오밍까지 수직에 가깝게 평원을 달렸다. 산맥과 평지의 경계선을 따라온 길이다.
오면서 중간에 시골 트럭스탑에 들러 30분 휴식을 취한 후 논스탑으로 목적지까지 왔다. 원래 한 번 더 쉬려고 했던 휴게소는 폐쇄됐다. 그 덕분에 정오도 안 돼 Cheyenne의 플라잉제이에 도착했다. 180대 규모의 큰 곳이라 널널한 주차장을 예상했는데 웬걸, 90% 이상 자리가 찼다. 이 시간에 이럴 수가. 프라임 트레일러도 몇 대 있다. 나처럼 월마트에 배달왔나?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여기서 쉬다 새벽 1시에 떠날 예정이다.
오늘 분양받기로 한 새끼 고양이가 집에 도착했다. 진회색 수놈이다. 아내가 아는 사람이 소개해 얼마 전 태어난 네 마리 중 한 마리를 얻었다. (사진에서 한 마리는 다른 사람이 데려갔는데 남은 녀석이 누군지 모르겠단다) 생후 6주 정도 됐을 것이다. 아내가 비디오를 보내왔는데 휴대폰 화질이라 흐릿하고, 아들이 보낸 사진에는 얼굴이 안 나왔다. 딸아이 침대 밑으로 들어갔는지 안 보인다고 한다. Pet이라고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동물을 처음 들였다. 그동안 내가 길렀던 동물은 햄스터, 토끼, 거북이, 물고기 등 크기가 작고 주인을 알아보는지 의심스러운 녀석들뿐이었다.
유타의 첫 사고
12,422마일 만에 첫 사고가 났다. 나는 유타로는 사고가 없을 줄 알았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내가 신도 아니고 어찌 앞날을 알겠나.
새벽 1시, 트럭스탑에서 발송처로 가기 위해 주차공간에서 나오다 왼쪽에 주차한 트럭의 사이드미러를 내 트레일러 뒷부분이 건드려서 상대방 트럭에 손상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트레일러는 멀쩡하다. 트레일러는 보기보다 단단하다.
이런 사고는 처음이다. 아니 그동안 냈던 사고는 뭐냐 싶겠지만 이번 사고는 그동안의 사고와 다르다. 그동안은 닥이나 트럭스탑에서 후진하거나 주차공간에 들어가다 난 사고다. 오늘은 멀쩡히 주차 잘해 놓은 공간에서 나오다 사고가 났다. 이런 형태의 사고를 유튜브에서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내가 낼 줄이야.
사고의 원인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맞은 편 주차열과의 거리가 너무 짧았고, 좌우 트럭과의 간격은 좁았다. 그런 상황에서 하필 내 트레일러의 텐덤 슬라이드 핀은 4번에 위치했다. 가능한 앞쪽으로 당긴 것이다. 보통은 6번 이후로 걸고 다닌다. 텐덤 슬라이드가 앞쪽에 있으면 회전할 때 트레일러 타이어가 안쪽으로 도는 오프 트랙은 줄어들지만, 트레일러 뒷부분이 회전하는 스윙바이 현상은 커진다. 야구방망이 휘두르듯 돌아간다.
그런 면에서 오늘 사고는 다소 불가피한 면도 있었다. 트럭을 주차공간에서 최대한 빼서 핸들을 돌렸을 때 맞은편 트럭에 걸려 회전이 불가능했다. 두 번 짧게 후진 후 각도를 만들어 돌렸지만 트레일러 꽁무니가 옆 트럭을 건드렸다. 나는 오른쪽만 신경 쓰다 왼쪽을 놓쳤다. 그동안 좁은 트럭스탑에서 여러 차례 빠져나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어쩌면 옆 트럭이 너무 내 쪽으로 붙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살살 움직였기 때문에 주의 깊게 듣지 않았으면 사고가 난 줄도 모르고 갔을 수도 있다. 그나마 이상한 소리에 멈춰 다행이었다. 상대방 트럭으로 다가가니 운전자는 자다가 일어나 나왔다. 그의 조수석 사이드 미러는 앞으로 접혔고 아래 볼록 거울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 외 약간의 스크래치와 타이어 장식 볼트 덮개가 몇 개 떨어졌다. 나는 사진을 찍고 침착한 태도로 사고를 수습했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나는 회사에 앱으로 보고했다. 고기도 많이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가 아니잖아 지금. 아무튼, 사고를 하도 자주 쳐서 사고 보고도 익숙하다. 배달에 늦으면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사고를 수습했다. 상대방 운전사도 차분했다. 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게 생겼는데, 내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그도 뭐라 할 여지가 없었다. 사고 보고가 마무리되자 나는 일이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뭐 그럴 수도 있지라며 내가 나갈 수 있도록 자기 트럭을 움직여 주었다. 수리 전까지는 볼록렌즈가 떨어져 우회전할 때 조금 불편할 것이다.
주유 펌프에서 리퍼 연료통을 채우고 발송처로 달렸다. 사고를 냈어도 배달에는 늦지 말아야지. 오전 2시 5분 약속인데 오전 2시에 도착했다. 305번 닥을 배정받아 트레일러를 대고 트럭과 분리해 놓았다. 사무실로 가 서류 접수하니 끝나면 전화 준다고 했다.
안전부서에 전화하려니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전화하라고 적혀 있다. 아침에 해야지.
앉아서 사고에 대해 復棋(복기)했다. 사고 원인은 알았고 방지책을 세워야 했다. 텐덤 슬라이드를 적정 위치에 두기. 주차 간격이 좁은 트럭스탑은 피하기. 내려서 살펴보기 정도다. 사실 아까도 내려서 살펴봤다. 단지 왼쪽은 생각도 못 했다. 이젠 알았으니 앞으로는 자는 사람을 깨워서라도 트럭을 움직여달라고 협조를 구할 것이다. 사고보다는 서로에게 백번 낫다.
시간이 지나도 짐 내릴 기미가 안 보였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금방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곧 탑 200 위험 드라이버에서 빠질 줄 알았는데 이젠 글렀다. 프라임에서 리즈 드라이버를 할 팔자가 아닌 모양이다.
한숨 자고 일어나 안전부서에 전화로 사고를 보고했다. 다음부터는 잘 보고 주의해서 나오라는 당부를 들었다. 당연하다.
아내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통화도 했다. 고양이가 아침에 삐악삐악 울더니 똥을 쌌단다. 리터박스에 앉히려다 손등도 할퀴었다. 조그마한 녀석이 화나면 울버린 손톱이 된단다. 아직 어려서 배변 훈련을 못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환경까지 바뀌었으니. 조만간 잘 적응할 것이다. 아내는 밤새 새끼 고양이가 죽었을까봐 걱정했단다. 깨어나 보니 활발히 뛰어놀고 있더란다. 아침에는 아들의 침대에 못 올라가던 고양이가 오후에는 침대에서 자고 있더란다. 변화하는 것이 하루하루가 다른 게 아니라 아침, 점심이 다르다 했다. 넘치는 에너지로 활발히 움직이는 모양이다.
오늘 제대로 된 사진을 보니 귀여웠다. 몸집은 아직 아기인데 얼굴은 형아 고양이처럼 보여 사진만 보면 더 자란 녀석 같다.
고양이 이름을 정했다. 아들은 심슨 가족의 아빠 이름인 호머(Homer)를 제안했고, 딸은 먼지, 뭉크를 추천했다.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한자씩 따서 수성의 영어명인 머큐리를 냈다. 아내는 라이언킹의 주인공 심바를 밀었다. 고양이가 새끼 심바처럼 생겼다는 이유다. 딸 아이는 모르겠고 아들과 나의 찬성으로 심바로 결정했다. 그래 심봤다.
어느 페친이 러시안 블루 같다고 말했는데 사진을 보니 닮긴 했다. 하지만 눈색깔이 다르다. 러시안 블루는 파란색인데 심바는 검은색이다. 그리고 심바 어미 사진을 보니 일반 줄무늬 고양이다. 심바 아비가 러시안 블루였는지는 모르겠다만. 최소한 혼혈은 분명하다. 흔히 잡종이라 부르는.
정오를 넘겨 짐을 내리고 서류를 받아서 나왔다. 그 사이에 10시간 휴식은 지났다. 사실 이런 경우가 좋다. 새벽에 배달 마치고 갈 데도 없었다. 화물 내리는 동안 10시간 휴식하며 잠도 자고, 하차가 늦어진데 따른 디텐션 페이도 따로 받는다. 꿩먹고 알먹고다. 다음 화물은 이미 들어왔다. 캔자스에서 뉴욕으로 간다. 빈차로 가는 캔자스 홀콤(Holcomb)까지만 390마일이다. 웬만한 화물 운반거리다. 또 거기서 뉴욕주 시라큐스까지는 1,500마일이다. 도합 약 1,900마일이다.
오늘부터 내일 오후 6시 사이에 픽업하면 된다. 육류 운반이라 오늘은 화물이 준비 안 됐을 가능성이 크다. 콜로라도 리몬(Limon)의 플라잉 제이 트럭스탑에 일찌감치 멈췄다. 남은 250마일은 국도길이라 마땅한 트럭스탑이 없다. 오늘 보니 러브스 트럭스탑 샤워 크레딧은 모두 사라졌다. 3개 중에 하나 밖에 못 썼는데. 처음 두 번만 러브스로 주유소를 지정해주더니 다시 파일럿 플라잉제이로 지정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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