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골짜기에서 희망의 골짜기로
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아베정권의 미친 짓에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지금은 1905년 乙巳勒約(을사늑약)으로 국권을 빼앗기던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1905년의 경험을 통해 일본이 왜 저런 짓을 하는지 또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예견하고 준비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었고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베정권은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그 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1905년의 사고로 2019년의 한국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 안에서도 1905년이라는 과거에 묶여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완용의 을사늑약이나 박정희의 한일협정의 사고로 오늘을 보며 대처하겠다고 하다면 우리는 결국 또다시 그 치욕적인 과거로 돌아가게 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수선화는 그 땅에 묻힌 고난의 뿌리에서부터 희망의 새 꽃이 나오는 것이지 그 뿌리를 떠난다면 꽃은 피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흔히 뭔가 새로운 것이 어디선가 확 나타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 해 주기를 바랍니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탁 떨어져서 또는 땅에서 불쑥 솟아올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꽃이 그 뿌리에서 피듯이 나라는 자신으로부터 시작 되어야 하는 것이며 내가 처한 삶의 자리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죽음을 부활로 거듭나게 하는 것,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고, 우리가 처한 이 역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과거, 내 아픈 상처의 과거로부터 기쁨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내 허물로 죽은 과거로부터 부활로 거듭나는 것이고, 내 절망의 수렁으로부터 희망으로 승화 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우리에게 희망을 찾아 어디로 떠나라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에스겔 예언자를 통해서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그 ‘죽음의 골짜기’가 ‘삶의 골짜기’로, ‘절망의 골짜기’가 ‘희망의 골짜기’로 변하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은 죽은 자를 버리고 산자를 따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닙니다. 부활은 죽은 자가 살아난 것이며 우리가 따라야 할 대상은 죽은 자이며 또한 그 죽은 자가 산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승리한 자들의 역사 속에서 산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결과를 가지고 있는가에만 집착하게 되고 그런 사고는 김성태 같은 자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취직이라는 결과에만 집착한 채 부정한 방법이라 하더라도 취업이라는 결과만 얻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그가 누구였는지는 잊어버리게 합니다.
결국 신앙에 있어서도 우리는 이런 결과주의에 빠져서 이전에 예수가 누구였는가를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그 결과 예수는 부활한 영광의 하나님이라는 것에 집착 한 나머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그 예수와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자 하며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는 무덤에 그대로 남겨 둔 채, 아직도 예수를 그곳에 죽은 채로 묻어 둔 채, 부활한 예수만을 찾고 있는 어리석은 믿음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親日(친일)이라는 역사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역사의 뿌리로부터 경험 했고 그 경험을 통해 예견하고 대처 할 수 있는 지혜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에스겔이 죽음의 골짜기에서 생명을 보았듯이 우리는 일본 정부가 던져대는 고통에 대해 다시는 지지 않는, 반드시 이기는 우리 민족의 내일을 보게 되리라 믿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하기에 저는 여러분 각자의 삶에서도 여러분들의 경험이라는 뿌리를 통해 어떤 일이 여러분들에게 닥친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의 삶에서 역시 다시는 지지 않는 삶이 되시리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의 삶이 지지 않는 삶, 이기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우리는 다시는 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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