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출애굽기 16:1-3, 마태복음 6:31-33

(서울=코리아위클리) 서광선 목사(이화여대 명예교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던 날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항의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의 손에 넘겨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하였다. 그런데 너희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다."]
- 출애굽기 16:1-3-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 마태복음 6:31-33 -

1945년 8월

1945년 8월 15일, 우리 광복절 날, 저는 만으로 14살 소년이었습니다. 만주의 일본 군수공장 도시의 일본인 중학교 학생이었습니다.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미국의 원자폭탄이 떨어 진 다음 날, 우리 중학생들은 도시 복판의 산언덕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 산 언덕에 구덩이를 파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주 북쪽의 시베리아 쪽에서 소련 군대가 탱크를 몰고 남쪽으로 몰려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련이 유럽에서 독일군과 싸울 때에, 일본과는 불가침조약을 맺고 있었는데, 독일이 1945년 5월 8일에 연합군에 항복하고, 일본이 미국의 원자탄 폭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의 일본군대를 밀어 내겠다고 탱크부대를 앞세우고 밀려 내려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밀려 내려오는 소련 탱크를 막기 위해서, 구덩이를 판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중학생들이 판 구덩이에 소련 탱크가 빠져 옴짝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일본인 중학생 친구들은 일본인 담임선생의 설명을 듣고 삽과 곡괭이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들끼리 킥킥거리면서, “우리가 판 이 구덩이에 소련 탱크가 빠져 옴짝 못하게 된다고?”하면서 비웃고 있었습니다. 일본 중학생들 태도를 보면서, 일본이 망하는 날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그해 8월 15일, 소련군 탱크 구덩이를 파기에는 너무도 화창하고 더운 날씨였습니다. 아침 내내 그날따라 친구들은 묵묵히 아무 잡담도 없이 구덩이만 파고 있었습니다. 12시가 되어 오자 담임선생이 우리 학생들을 정렬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12시 정오를 알리는 라디오 종소리가 나면 일동 차려 자세를 취하라고 명령했습니다. 12시 정각, 일본인 담임선생이 높이 들고 있는 단파 라디오에서 어떤 늙은이의 감기 걸린 것 같은, 쉰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소위 일본 천황폐하의 음성이었고, 그 약하게 떨리는 음성은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발표하고 있었습니다.

라디오에서 “항복”이라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저의 일본인 동기생들은 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담임선생도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항일 목사 아버지의 아들, 비록 조선인으로 일본인 중학교에 다니면서 모진 차별과 왕따를 당하면서도 참고 견디며 공부하고 있던 이 조선인 중학생은 “만세”를 부르고 싶었지만, 참고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고 서 있었습니다. 담임선생이 떨리는 음성으로 “사요나라...잘들 가요. 집에 가서 짐을 싸고 부모님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저는 걸음아 날 살려라. 산언덕을 정신없이 뛰어 내려갔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항일 목사 아버지가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상상을 해 가면서 말입니다.

항일 목사 아버지

저의 항일 목사 아버지는 문간에 서서 제가 집에 오는 것을 기다리시다가, 저를 보시자마자, 부등 켜 안고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군대와 맞붙어 싸운 의병대장 아버지를 일본 군인들에게 빼앗긴 우리 아버지는 할머니 까지 잃었습니다. 할아버지 총살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나라 잃은 백성, 아버지를 빼앗긴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한국의 열녀답게, 아이들과 함께 자결할 것을 결심하시고, 우리 할머니는 독약이 든 밥을 씹어 삼키셨다는 것입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우리 아버지는 평안도 산골에서 양 치기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성경 쪽 복음을 들고 다니는 판서원 아주머니를 만나 예수를 믿게 되고 강계 영실학교라는 미국 선교사가 세운 기독교학교에서 세례를 받고 신학공부를 하게 되고 압록강 가 시골에 개척교회를 세우며 목회 일을 열심히 하는 열혈 전도사였습니다.

소년 서광선의 절망과 신앙

제가 태어난 해는 1931년, 일본이 한반도를 강압적으로 침략한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만주로 쳐들어가, 청나라에서 그 넓은 땅을 빼앗아, 일본의 괴뢰 정부, 만주국을 새운 그 해입니다. 제가 소학교에 들어 간 해가, 바로 일본이 중국 본토, 청도 (친따오 靑島)를 침공하고 남경 (南京, 난징) 학살을 감행한 1937년이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 정부는 3.1 독립운동을 겪고 나서는 강압정치를 수정하고 문화정치라고 하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창간을 허용하고 한국문화를 장려하는 정책을 전환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만주를 침략하고 중국에 쳐들어가면서 일본은 강압정책을 시작했습니다. “내선일체” 즉 “일본과 조선은 하나다.” 라고 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교에서는 일본말로 공부하고 일본어 교과서를 써야 하고, 아침마다 조회 때는 “황국신민의 선서”라는 것을 소리 지르며 암송하면서, 우리는 일본 제국의 신민이라고 손을 들고 선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 주일에 한번 동네 뒷산에 새로 세워진, 일본 군대 귀신을 모셨다는 신사에 올라가 손뼉을 세 번 두들기고, 세 번 90도 절을 하고 신사주변을 청소하고 내려 와야 했습니다. 막판에 가서는 우리 조상이 내려 준,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해야 했습니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생각만 해도 화가 나서 저의 일본 이름은 말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저희 목사 아버지는 끝내 신사참배를 거부한다고 경찰서에 끌려가 심문을 당하고 일본 경찰에 만이 아니라 조선사람 경찰의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조선 사람 경찰에게 매 맞을 때가 더 아프고 슬펐다고 하시던 말씀이 어린 저에게 분노와 슬픔을 더하게 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견디다 못해 온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조선에서 살 수가 없어서 도망 친 농부들을 위해서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주에서의 생활은 가난하고 배고픈 피난민, 망명가의 처절한 삶이었습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터지는 겨울 만주 벌판 시골에서 막내아들을 낳고 우리 어머니는 영양실조로 폐병에 걸려 그 다음해 돌아가셨습니다. 평안도 외할머니 댁에서 32살의 젊은 나이에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임종도 못보고 잘 가시라는 인사도 못하고, 만주에서 헐레벌떡 외할머니 댁으로 달려가, 통곡으로 어머니를 장사지냈습니다.

겨우 열 살이 넘은 저는 좌절했습니다. 그리고 절망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자포자기하고 말았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의 절망, 이름 까지 잃고 나랏말 까지 빼앗긴 절망, 거기에 더하여 사랑하는 어머니까지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뺏겼다는 설음과 분노로, 저는 절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실감했습니다. 며칠을 두고 울기만 하다가, 이 절망을 극복하는 일 만이 내 인생의 목표고 내가 살아남는 일이라고 결심하고 오늘까지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이 정치적 절망과 실존적 절망을 극복하는 힘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개하시다가 로마제국의 십자가에 유대민족의 해방운동의 정치범으로 처형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좌절과 절망과 죽음, 무덤을 물리치고 승리한 부활의 신앙이었습니다.

해방자 모세와 이집트의 노예 이스라엘 백성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상황에서 민중들의 교회는 그 처음부터 한국의 자주 독립과 일본의 압정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고 설교하고 계몽운동과 정치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100년 전 3.1 독립운동의 주동 세력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였습니다. 모세와 구약성경의 출애굽기는 한국 민족의 해방을 위한 교과서였으며 예언서였으며 지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이야기 속에서 한국 민족의 해방,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고 민족 독립의 희망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의 역사 속에서, 가장 부끄러운 이야기, 그러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오늘 봉독한 출애굽기 16장의 이야기입니다.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 60만 명이 이집트를 탈출해서, 홍해 바다를 뒤로 하고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광야에 들어섰던 것입니다. 광야로 들어 선지 두 달 반이 되었습니다. 광야에 먹을 것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을 합니다.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는 고기 가마 옆에서 먹을 것이 있었는데, 거기 앉아 있을 때 우리를 죽이지 않고 왜 이 광야에 까지 끌어내서 굶어 죽게 하냐?”고 소리 지르며 불평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불평을 한 것이 한번 만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이집트 땅에서 탈출하자마자, 바로의 군병들이 뒤 쫓아 오는 것에 겁이 질려 부르짖으며 불평했습니다. “아니, 이집트에 우리 시체를 매장할 무덤이 없어서 여기까지 끌고 와 아무것도 없는 모래 밖에 없는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소리 질렀습니다. “이집트에서 해방될 때, 우리는 탈출하기 싫다 우리를 내버려 두라. 여기가 편하다. 우리가 이집트 사람들을 섬길 것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 (14:12) 그렇지 않느냐?”고 소리소리 질렀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반동”이라고 합니다. 역사의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반대하고 역사의 흐름과 움직이는 방향을 거역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반동” “꼴통 보수”라고 합니다.

오늘까지도 “그래도 일제시대가 좋았어.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근대화 시키고 잘 살게 해 주고 문명국가로 만들어 준거야…” 일제시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승만 대통령 시대가 좋았어. 그때 북진통일을 했어야 했어.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에 반대한 건 잘한 일이야. 평화통일은 말도 안 돼, 북진 통일 밖에 답이 없어...” “북진통일 아니면, 북은 북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떨어져서 살면 되잖아. 괜히 종북 좌파 주사파빨갱이 놈들 하자는 대로 했다가, 결국 적화통일 되는 거 아냐? 이승만 시대에 대한 향수 세대, 전쟁 찬양 세대가 있습니다. 태극기와 성조기 부대들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그래도 박정희 시대에는 일본 돈을 끌어 다가 경제발전을 일으켰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잖아…”

우리는 해방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땅에서 430년 동안이나 노예생활 하던 그 버릇, 그 생각, 그 정신상태로 일제시대를 그리워하고, 일제시대 식민지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묻게 됩니다. 일본의 군국주의 잔재에 매달려 아직도 한반도와 중국과 동남아시아 나라들을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고, 아시아의 경제적 군사적 패권을 되찾으려는 야욕에 굴복해야 한다는 반동세력, 친일 세력이 있는데 놀라게 됩니다. 한민족의 해방과 자주 독립의 험난한 과정보다는 일본의 노예로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을 섬기면서 그럭저럭 하루 세끼 밥만 먹게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과 정신상태로부터 해방되어야 만, 우리에게 참된 해방이 있고, 우리가 식민지 노예근성에서 해방 될 때만이 남과 북이 화해하고 힘을 합쳐서, 평화 체제를 확립하고 핵무기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45년 8월, 일본에 투하한 두발의 원자탄, 인류 역사상 처음이면서 마지막이 되어야 하는 핵폭탄은 태평양 전쟁을 끝내는데 그런 대로 기여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평화의 무기는 아니었습니다. 강대국이 약소국가들을 협박하고 위협하고 무릎을 꿇게 하는 폭력의 도구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북한 땅과 지구상에서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고 다시는 생산하지 않게 하는 것이 평화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8.15는 비핵화와 평화를 기도하고 만들어 나가는 해방과 평화의 날로 기억하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간구하라

오늘 저희들이 묵상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마태복음 6:31)”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 33). (*이 글은 한국 새길교회 사이트에서 퍼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