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순수함 속에서 때로 '진리'를 배운다
(로스앤젤레스=코리아위클리) 홍병식(내셔널유니버시티교수) = 3년전에 장미동산에 네살 짜리 외손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묘석과 주변을 정리하고 되돌아 오면서 무심코 제가 침을 뱉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린 손자도 즉시로 침을 뱉는것 아니겠습니까? 어린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좋지 않은 행동을 보인것 같아서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어른들이라도 어린이들의 눈에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 초등학교 저급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중에 자기가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어서봐.”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만족한 웃음을 짓는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했을 때 한 아이가 일어섰습니다. 선생님이 “너 왜 일어서니? 네가 바보라고 생각을 하는 거냐?” 고 물었습니다. 일어선 그 아이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 아니요. 선생님 혼자 서있는 모습이 민망해서 제가 일어선 겁니다.” 물론 창피해서 얼굴을 붉힌 쪽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역시 초등학교 일학년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숫자의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빨래줄에 네 마리의 새가 앉아 있었다. 집주인이 새총을 갖고 나와서 그 중의 한마리를 쏘아 떨어뜨렸다. 자, 이제 몇 마리의 새가 남았느냐?” 그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한마리도 남지 않았어요.” 머리가 잘 안돌아가는 아이인줄 알고 선생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얘야, 새가 네 마리가 있었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 중에서 한 마리만 총에 맞아 땅에 떨어진거야. 그러니 몇 마리가 남았느냐는 말이다.” 역시 아까 손을 들었던 아이가 또록또록 말했습니다. “한마리도 남지 않았어요.” “너는 왜 그런 대답을 얻게 되었는지 말해보렴” 선생님이 묻자 그 아이는 “한 마리가 총에 맞았으면 다른 새들은 다 놀라서 날라가버렸을 것 아니에요? 그러니 한 마리도 남지 않았지요.”고 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선생님도 그런 어린이의 생각에 감탄을 했을 것입니다.
어른들은 학식과 나이에 상관없이 어린아이들로부터 배울 교훈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깊은 진리를 지혜롭고 슬기있는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한다”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위선과 기교적인 거짓말을 모릅니다.
제가 일전에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외손자 두명을 데리고 기차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를 다녀왔습니다. 기차표를 사는 카운터에서 아이들은 혹시 무료 혜택이 있을까 해서 외손자들의 나이를 매표직원에게 “이 아이는 네살이고 저 아이는 다섯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형되는 외손자가 즉시로 제말의 오류를 지적했습니다. 매표직원에게 자기는 이제 여섯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알고보니 둘다 기차표를 요하는 나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의 생일이 조금 전에 있었던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만일에 제가 의도적인 거짓말을 했었더라면 기차표를 사지 않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할아버지가 될 뻔 했습니다. 간담이 서늘해진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미국의 교육제도에 좋은 점이 많이 있지만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교사 중에 박사학위 소지자가 중고등학교보다 많다는 사실을 좋아합니다. 아마도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성품과 가치관을 배우기에 가장 예민한 나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일 것입니다.
행동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기본적인 성격은 9살 이전에 자리를 잡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 무심코 하는 부모님의 “가벼운” 거짓말 하나라도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하겠습니다.
유치원 이전에 다니는 프리스쿨에서 선생님들이 길을 건너는 방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공을 갖고 놀다가 공이 찻길로 들어가면 그 공을 찾으러 가지 말도록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가면서 줄을 서서 차레대로 들어가는 공중도덕도 가르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때묻지 않은 솜덩어리 같이 흡수를 잘하는 순수한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어른들의 행위를 닮기도 하고 비교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어른들이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