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이야기] 할멈 장례식에 참석한 어느 분께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 =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이 우리 할멈 장례식에 참석해 주신 것에 우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처음 뵙는 아주머니께서 부조금 접수와 식권은 어디에서 받느냐고 질문을 하셨을 때 나는 "부조금 받지 않고 식권도 별도로 나눠주지 않는다"고 대답하였지요.

 

그때 아주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이렇게 장례를 치르려면 장례비는 대충 얼마나 드느냐"고 또 질문을 하셨지요. 그래서 나는 "꽃 값이 조금 들긴 했지만 그정도면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하였지요. 그리고는 장례식 후 지정 식당에 가서 꼭 식사하시고 가시라고 당부했는데, 막상 식당에는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미국에는 '장례비 선불제'가 있으니 자세한 것은 지역 신문에서 올리는 내 칼럼에서 알리겠다고 아주머니와 약속을 했는데 벌서 두어 달이 지났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여 주십시오.

우리 할멈은 6.25때 나이가 11살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학교에 가지 못한 한을 미국땅에서 자식을 통해 풀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중노동을 하여 번 돈으로 다섯 아이들 학자금 한푼 대출받지 않고 대학을 마치게 했습니다.

그 당시 같은 이민 소개소를 통해 이곳에 노동 이민 오신 한 분(가장)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비 부담 때문에 장시간 크게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나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우리 자식놈들 하나같이 개성이 다르고 삶의 처지도 다르니, 내가 먼저 죽고 나면 저 불쌍한 할멈이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 나이 60세때 암 중에서도 지독한 암 선고를 받고 대수술을 한 지 10일만에 다시 자동차 정비소 문을 열었습니다. 얼굴에 가느다란 호스를 3개나 꼽은 채 말입니다. 그때는 다른 대출금은 한 푼 없고 우리 부부 장례비 선불 할부금 기한이 1년 조금 남았을 때입니다.

미국에는 장례비 상품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 처지에 맞는 상품을 선택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보시기에 우리 할멈 장례식이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는지요.

우리는 부부 장례식 비용을 18년 전에 완불하였으나 망자나 산사람도 부담 없는 장례를 치렀다고 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으나 우리가 무슨 이름을 남기겠습니까. 다만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부담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하직해야 겠지요.

독자 여러분, '김치 지아이'를 시작으로 이민생활을 하면서 35년간 많은 글을 썼습니다. 요새 세상이 너무 변하는 것이 나에게는 겁을 줍니다. "남이 주는 밥에는 가시가 있다"고 하신 어머님의 말씀을 다시 상기하면서 혼자의 연금으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남은 생은 읽고 싶은 책이나 읽으며 손자 손녀들 용돈이나 주면서 마칠 것입니다.

35년간 저의 부족한 글을 애독하여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부디 행복하시고 건강하게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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