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네티즌이 ‘2019년의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한 노르망디 지방 생 바-라우그(Saint-Vaast La Hougue)는 영국해협으로 길게 돌출된 코탕탱 반도 끝자락에 위치한다. 영화 ‘셰르부르의 우산’으로 유명해진 셰르부르에서 동쪽으로 약 20km 지점이다.
생 바-라우그는 노르망디 해안지대의 독보적인 어촌마을 중의 하나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어부들의 지붕이 낮은 집들이 늘어선 어촌 특유의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겨울은 온난하고 여름은 시원한 서양해양성기후 지대라서 19세기부터 해변휴양지로도 인기를 모았던 고장이다. 빅토르 위고, 쥘 르나르, 폴 시니악(Signac) 등 문인, 화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고취시킨 고장이라는 자부심이 스며있다. 1836년 빅토르 위고가 생 바-라우그의 이웃마을 바르플레르(Barfleur)에서 보름간 체류한 사례도 유명하다.
▶ 어선과 레저용 요트가 공존하는 항구
생 바-라우그는 18세기부터 뱃사람들의 항구로 명성을 날렸던 해변마을이다. 주민은 현재 1,800여명 정도이나,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2배가 더 많았을 정도로 어업 활동이 활발했던 항구이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막이 방파제는 1828년과 1845년 사이에 건축됐는데, 이 또한 독보적인 구조를 지닌다. 어선과 요트 840척을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규모로서 영국해협 해안지대에서는 세번째로 큰 항구로 꼽힌다.
생 바-라우그 항구의 독특함은 같은 방파제 안에 어선과 레저용 요트들이 나란히 정박한 정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활기찬 어업 항구이면서 동시에 요트 항구로서도 각광받는 드문 곳이다. 프랑스에는 크고 작은 항구들이 많지만, 대부분 고기잡이 선박과 레저용 요트들의 항구는 구분되어있다.
또한 생 바-라우그 앞바다의 굴 양식장은 노르망디 지방에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곳으로 오늘날에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 영불 역사의 현장
생 바-라우그의 유명한 관광유적지는 단연 보방(Vauban)의 두 탑이다. 육지에 세워진 ‘라우그(La Hougue)’ 요새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타티우(Tatihou)’ 섬 요새에는 도도할 정도로 탑이 우뚝 솟아 있다. 라우그 탑은 높이 20m, 지름은 16m에 이른다. 보방(1633~1707년)은 루이14세 시대에 크게 명성을 떨쳤던 군사요새 건축가이며, 그의 지휘 하에 수제자 벤자맹 드 콩브(1649~1710년)가 완성시킨 쌍둥이 탑이다. 두 보방 탑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생 바-라우그의 역사는 1,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마을 이름도 시대에 따라 변천했다. 처음에는 ‘라우그’로 불렸다가 ‘생 바(Saint-Vaast)’로 바꿔졌으며, 1888년부터 이 모두를 합쳐 생 바-라우그로 부른다.
생 바-라우그의 유적지를 이해하려면 영국해협을 가운데 둔 프랑스와 영국의 역사적 관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14세기부터 영불의 치열한 해상 교전에서 생 바-라우그는 중요한 군사 요지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두 국가는 경제, 사회, 군사, 정치, 문화적으로 교류가 활발하지만, 양국의 끈질긴 분쟁은 세계사에 깊게 각인된 ‘백년전쟁(1337~1453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두 나라 왕조는 5대에 걸쳐 116년 동안 왕위계승, 영토 관할 분쟁으로 휴전과 전쟁이 반복되는 다사다난한 시대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는 잔 다르크(1412~1431년)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웅을 배출시켰다.
17세기에도 ‘30년 전쟁(1618~1648년)’, ‘9년 전쟁(1688~1697년)’등 많은 전쟁을 거쳤다. 루이 14세 시대에 이르러 프랑스 왕권이 강화된 반면, 잉글랜드 왕국은 내전으로 인해 해적국으로 전락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바로 보방의 두 탑은 루이 14세 시대의 찬란한 전성기를 대변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1692년 생 바-라우그 앞바다에서 펼쳐진 치열한 해전인 ‘라우그 교전’이 유명하다. 이 전쟁을 치루면서 1694년에 보방의 두 요새 탑이 세워졌다.
2차 세계대전 시 독일군이 보방의 두 요새를 함락하여 주둔했다. 생 바-라우그는 1944년 6월 21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독일군으로부터 해방된 첫 번째 항구로서 세계사에 다시 각인된다.
▶ 생 바-라우그 앞의 타티우 섬
영불 해전에서 중요한 군사요지였던 타티우 섬 요새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92년부터이다. 거의 300년 동안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던 섬이다. 이 섬에 얽힌 역사는 풍요롭고, 고고학적으로 발굴해야할 역사자료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날 타티우 섬 건너기는 이 고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코스의 하이라이트이다. 발음상 남태평양 타이티 섬과 혼동되기도 하는데, ‘타티우’는 9세기경 노르망디 해안지대에 출몰했던 바이킹족들의 언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우(hou)’는 바닷물로 둘러싸인 육지를 의미했다고 한다.
타티우 섬은 육지에서 약 1km 지점에 떠있다.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썰물 시 걸어서 섬에 진입할 수 있다. 이때 바닷물에 담겨있던 거대한 굴 양식장의 모습도 드러나며, 생 바-라우그 해안선의 독특한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연락선이 정규적으로 운행한다. 조석 시간대를 모르는 방문객들에게는 안전상 문제로 연락선 탑승이 권고된다. 게다가 이 연락선도 생 바-라우그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 중에 하나로 꼽는다. 썰물 때는 자동차처럼 바퀴를 이용하여 갯벌을 달리고, 밀물 시에는 배가 되어 물위에 떠서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자연조건에 따라 약 5분~10분 정도 걸린다.
옛 해양세관 건물마당이 타티우 섬의 선착장이다. 상업선의 출입을 관리했던 곳으로 1805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이 유적지도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타티우 섬은 약 28헥타르 크기의 자연보호관리 지역이다. 타티우 요새에는 18세기 말엽에 세워진 작은 성당, 탄약 창고 등 옛 유적지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군인막사로 사용하던 건물은 레스토랑으로 개조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옛 검역소 건물은 해양박물관로 변신했고, 담 안의 정원에는 열대성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다. 이곳의 기온은 1월 평균 3°C~7°C, 8월 평균 14°C~22°C 사이라서, 카나리아 섬에서 옮겨온 열대성 식물들에게는 아주 적합한 기후조건을 지닌다.
타티우 섬은 매년 8월 말경이면 세계 민속음악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겨울철에도 나름대로 카리스마적인 분위기를 지니는 곳이다.
(☞ 스테판 베른이 사회를 맡아 8회째 진행된 ‘프랑스인들이 선호하는 아름다운 마을 선정’ 테마프로는 지난 6월 26일 프랑스국영방송 france3에서 생방으로 방영했다. 최종결선에 오른 14개 후보마을들 중에서, 1위 자리를 놓고 브르타뉴 지방 퐁-크르와(Pont-Croix)와 경합을 벌인 끝에 생 바-라우그가 최종우승을 차지했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이병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