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이계선 칼럼니스트
집 떠난지 45일 만에 돌아와 보니 이런 메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를 안 받으시고 메일을 보내도 응답이 없으셔서 혹시나(?) 했습니다. 죽은자는 불러도 대답 없는 님이니까요.”
“혹시 돌섬의 운이 다하여 맨하탄으로 천도(遷都)하신거 아닙니까? 전에 맨하탄으로 이사가게 됐다고 좋아 하시더니… 전화도 없고 소식도 없어 궁금합니다.”
나는 죽지도 않았고 이사 가지도 안했다. 4월 5일 돌섬아파트를 떠났다가 45일만에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이다. 45일간에 있었던 행적을 공개해본다.
맨하탄으로 이사 가는걸 포기하고 돌섬에 주저앉기로 했다. 4월 5일 수술을 받았다. 먼저 이야기. 왕도(王韜)를 옮기는 것만큼 까다로웠다.
10년전 우리 부부는 노인아파트를 찾아 돌섬(Far Rockaway)으로 왔다. 와보니 시영아파트였다. 바다와 포구(BAY)가 있는 아름다운 반반도시(半半都市). 90%가 흑인이다. 10 년 전에는 전체 600가구중 한국인이 6가구였다는데 지금은 달랑 우리 집 뿐이다. 시영아파트는 가난한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사느라고 시끄럽고 더러운 우범지역이다. 아내는 검은 도사견에 물려 피를 흘렸다.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양인의 칼을 맞고 15바늘을 꿰매야했다
“엄마 아빠 너무 위험해요. 빨리 이사가세요.”
애들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아내는 5곳에 입주신청을 냈다. 몇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10년만에 연락이 온 것이다. 맨하탄 108가 센트럴파크 옆이었다. 건축업자들이 아파트를 건축할 때 그 중 몇 채는 노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 줘야한다. 이걸 Section 8케이스라고 하는데 추첨으로 결정한다. 운좋게 우리가 걸린 것이다. 일단 한번 가봅시다. 아들을 앞세워 차를 몰았다. 맘에 들었다.
“와! 우리 엄마 아빠가 백만불 짜리 복권에 당첨된거네요?”
“그럼 그럼, 우리가 100만불이 넘는 아파트에서 350불만 내고 살게 됐으니 밎는 말이야. 이성계가 운이 다된 개성을 버리고 한양으로 왕도(王都)를 옮겨 이조 500년역사의 기초를 다져놓았거든.”
우리가 돌섬에서 맨하탄으로 이사가는게 왕이되어 천도(遷都)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이런이야기. 100년전만 해도 뉴욕부자들은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몰려 살았다. 파크 동쪽에는 젊은 부자들이, 서쪽에는 노인부자들이 살았다. 그래서 동쪽 마을사람들을 영머니(Young Money) 서쪽마을 사람들은 올드머니(Old Money)라고 불렀다. 맨하탄에 여명이 밝아오면 영머니들은 센트럴파크로 몰려와 뉴욕의 새벽을 달렸다. 아침을 먹고 동강(East River)의 억센 물결을 끼고 일터로 달려갔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짓고 다운타운으로 내려가 세계금융센터를 세웠다. 그렇게 일하여 부자가 된 젊은이들이 영머니다.
올드머니는 정반대. 은퇴하여 할 일이 없는 올드머니들은 늦잠을 자고 늦게 일어난다. 더 늦게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서서 서쪽으로 올라간다. 거기에 허드슨강이 있기때문이다. 소리없이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노인들은 세월유수 인생무상에 젖어버린다.
“아! 세월유수라더니 모든게 강물처럼 흘러가는구나. 저녁노을에 붉게물든 허드슨강도 조금 더 흐르다가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리겠지!”
올드머니들의 탄식이다. 아내는 해석이 달랐다. 갑자기 복부인이라도 된 표정이었다.
“올드머니동네로 이사 오게 됐으니 우리는 자동적으로 올드머니가 되겠군요”
“머니 좋아하지 말아요. 젊은 이들이야 돈이 즐겁고 행복한거지. 우리처럼 늙고 병든 노인들에게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사하면 노인의 덕을 쌓아서 맨하탄을 휘젓고 다니는 신선이나 됩시다.”
돌섬에 도착하자마자 이삿짐 꾸리기에 나섰다. 버립시다. 버립시다. 낡은 구닥다리들은 모두 버리고 가볍고 단촐하게 이사갑시다. 맞아요 맞아요. 새술은 새 부대에 넣으라고 했지요. 맨하탄으로 이사가서 외제수입품으로 새집을 꾸밉시다. 새것 사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신바람이 났다. 침대 책장 의자 식탁 옷장을 버렸다. 책과 옷가지는 반으로 썩 잘라버렸다. 문전옥답인 에덴농장 아리랑농장도 버렸다. 재산이 절반으로 팍 줄어버렸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났다. 아내는 잠에 떨어져 고르랑 고르랑 애기코를 골고 있었다. 난 잠이 오지 않았다. 대신 지나온 돌섬10년을 한바퀴 돌아보고 싶었다.
-시영아파트 한곳에서 10년을 살았지, 그런데 8개월만 산 기분인걸!. 처음 8개월동안은 참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굿모닝인사를 했다. 길바닥에 떨어진 종이나 음식찌거기를 비니루봉지에 주워담아 버렸다. 매주 한번씩 내가 사는 3층아파트 복도를 물 걸레로 청소했다. 반응이 놀라웠다.
“네가 뭔데 인사냐?” “위선 떨지 마라.” “돈이나 다오.”
고마워하기는 커녕 빈정거리는 것이었다. 같은 아파트 옆집에 사는 한국인 이씨가 가장 심했다. 술만 마시면 소란을 피웠다. 위선 떨지말고 이사가라고 폭력으로 나왔다. 어느날 새벽에는 우리집 아기농장을 쑥밭으로 만들어 놓고 욕설을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할수 없었다. TV에서 본 UFC(종합격투기)를 흉내내어 그를 패대기쳐 눕힌후 등에 올라타고는 경찰을 불렀다. 경찰서에 수없이 끌려가도 여전했다. 7개월이 지난 어느날 사고가 났다. 그가 휘두른 생선 회칼에 내 손바닥이 찔려 15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를 구속하지 마십시오. 그가 갈곳은 감옥이 아니라 병원입니다”
신기하여라. 그 순간 그는 정신이 말짱하게 돌아왔다. 착한 새사람으로 거듭난것이다. 8개월이나 괴롭히던 시련이 내피를 흘리자 해결되다니!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충12:13).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출애급을 성공시켰듯이. 그 후로는 모든게 일사천리.
난 굿모닝을 안한다. 그들이 먼저인사를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한국식 격투기(UFC)를 가르쳐 달라고 졸라댄다. 난동자 이씨를 파운딩으로 때려눕혔던 “아리랑농장의 결투”를 봤기때문이다. 난 주먹과 주먹을 부딛치면서 “당신은 참피온! 이요” 하는 격투기참피온 인사법을 가르쳐줬다. 남녀노소가 참피온인사다. 인간은 누구나 참피온이니까! 지금은 종이줍기와 복도청소를 안한다. 파킨슨으로 몸이 망가져 힘을 쓸수 없다. 그보다 전보다 많이 깨끗해졌기 때문이다.
그후 돌섬에 이상한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꽃게가 몰려들어 단번에 100여마리나 잡아올렸다. 팔뚝만한 물고기 벙커 수백마리가 파도에 밀려 모래사장에 내동댕이처 팔딱거리면 우리는 바께스에 주워담았다. 공사장에 트럭이 자갈을 붓듯 백합 조개가 가마니로 담아내도 무진장이다. 손바닥농장에서 거둔 수박으로 아내는 뉴욕가든 농원대회에서 일등을 했다. 미국TV 뉴욕1에 비치기도 했다. 난 격주로 에피소드를 돌섬통신에 실려보냈다. 사방에서 구경꾼를이 몰려왔다. 멀리 한국 케나다 나성 워싱턴 호주에서.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는데 아내가 아침먹자고 깨웠다. 숟갈을 든채 물끄러미 아내를 쳐다봤다.
“여보 손바닥만한 맨하탄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는 것보다 망망대회로 뻗어나가는 돌섬의 광활한 바닷길을 걷는게 더 좋을성싶소
(???.....)
맨하탄천도의 꿈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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