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1913년 창단

‘삼일혁명 100주년’ 미국내 독립운동 성지를 찾아서(5)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기획취재 시리즈>

 

 

Newsroh=민지영기자 newsroh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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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노스 피규로아 스트릿 106번지.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살은 눈부셨지만 펜스 너머 집은 적요했다. 이곳은 민족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安昌浩, 1878∼1938)가 1915년부터 1932년까지 17년간 거주했던 곳이다.

 

안창호는 1913년 5월 1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興士團)을 창립한 뒤 1915년 로스앤젤레스에 왔다. 이곳에서 도산은 미국인 홀(Hal) 소유의 2층 목조주택을 세를 얻었다. 거주를 겸한 흥사단소였다.

 

이곳에선 도산의 가족은 물론, 송종익 홍언 장리욱 등도 함께 지냈다. 그러다 1932년 봄 사우스 캐터리나 스트릿 3421번지로 이주할 때까지 도산과 흥사단의 보금자리였다. 캐터리나 스트릿의 두 번째 흥사단소는 2층 건물로 해방과 6.25의 비극까지 목도한 채 1970년까지 유지되었다. 흥사단 2층에는 생활이 어려운 한인 유학생들을 위한 안식처로 제공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곳의 건물은 소유권이 넘어가 옛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노스 피규로아는 개인 소유의 주택이 되었고 캐터리나는 현재 콘도미니엄이 들어서는 등 주위에 LA 수도전력국과 각종 업무용 건물이 둘러싼 번화한 도심으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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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건물로 바뀐 캐터리나 스트릿

 

 

흥사단(興士團, Young Korean Academy)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청년들을 위한 계몽단체로 출범했다. 일제에 의해 국권을 찬탈당한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민족독립운동을 은밀히 지원하며 독립운동가들을 길러낸 ‘애국의 요람’같은 곳이었다.

 

흥사단의 효시는 1907년 유길준이 설립한 단체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길준의 흥사단은 일본제국주의의 탄압으로 1911년 해체되었고 이를 안창호가 미국에서 부활시킨 것이다.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을 기본 정신으로 삼은 흥사단은 독립운동의 여명기부터 오늘날까지 한세기 이상 굳건한 생명력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특기할만 하다. 도산은 흥사단을 통해 지덕체의 삼육을 수련시켜 많은 인재들을 민족독립운동의 지도자로 양성했다.

 

흥사단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강영소의 집에서 25명의 발기인이 참여한 가운데 창립되었다. 단촐한 숫자였지만 8도의 대표자가 있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흥사단은 시작부터 지방과 파벌주의를 배제하고 전 민족의 단체로 결성된 것이다. 당시 8도 대표자로 참여한 인물은 송종익(경상도) 정원도(전라도) 홍언(경기도) 조병옥(충청도) 강영소(평안도) 김종림(함경도) 민찬호(황해도) 염만석(강원도)이었다.

 

모국 땅이 송두리째 일제에 의해 강점되었기에 미주에 위치한 흥사단은 더더욱 존재감이 컸다. 창립 7년만인 1920년 중국에 흥사단원동임시위원부를 설치하였고 1925년 국내에서 수양동맹회와 동우구락부가 통합한 수영동우회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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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wikipedia.org

 

 

평양 출신은 도산은 일찍이 열강의 먹이감이 되버린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나라가 힘을 갖기 위해선 지식과 경제력, 도덕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래세대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한 보기드문 선각자였다. 나라가 부강해 지려면 개개인이 부강해야 하며, 국민 개개인이 힘 있는 국민이 되려면 우선 나부터 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1912년 미국에 도착한 도산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에 취임하여 동포들의 결속을 다지고, 이듬해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을 양성할 흥사단(興士團)을 창단했다. 민족의 각성과 계몽운동을 전개하는 흥사단의 창단은 그에게 필연이었다.

 

1920년 9월 중국 상해에서 설립된 원동위원부는 박선 정인과 김병연 등 미주에서 건너온 단우들을 비롯, 안국형 김여제 박현환 주요한 이광수 백영엽 이용설 차이석 선우훈 등 당대의 인재들이 대거 적을 두었다.

 

1924년 도산은 이른바 갑자논설로 알려진 ‘동포에게 고하는 글’을 발표하고, 남경에 동명학원을 세워 미주로 유학할 인재들을 교육했다. 1931년 남경에 부지를 매입해 이상촌 건설을 위해 매진했으나 이듬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이후 일제에 의해 체포, 국내 압송되었다.

 

도산은 꼬박 2년 반의 옥고를 치르고 가출옥하여 평양 대보산 송태산장에 은거하며 이상촌 건설을 구상하던 중, 1937년 6월 7일, 일제가 중·일전쟁을 앞두고 한반도에서의 민족주의 세력을 말살하기 위하여 일제 검거령을 내리면서 또다시 체포되고 말았다.

 

두 번째 투옥으로 병을 얻은 도산은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결국 1938년 3월 10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도산 타계 이후 흥사단은 국내 조직이 와해되는 등 크게 위축되었지만 많은 단우들이 미주와 원동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동맹수련과 독립운동을 계속했고 마침내 광복의 날을 맞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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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운타운 주택가에 있는 대한국인회 건물 

 

 

흥사단의 비전은 자주독립운동을 전개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들이 자유롭고 고르게 잘 사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목표에 걸맞게 흥사단은 해방후 나라의 발전과 번영에 이바지할 인물양성에 매진하였고 고등학교 대학교 청년 아카데미를 조직하여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하였다.

 

민족통일운동, 투명사회운동, 교육운동 등 3대 시민운동을 비롯하여 지역사회 풀뿌리 시민운동을 꾸준히 전개하는 흥사단은 현재 전국 25개 지부와 미국과 캐나다에 9개 지부가 활동하고 있으며, 자원봉사센터, 청소년 회관, 수련관 등 22개 청소년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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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www.newsroh.com

 

 

<꼬리뉴스>

 

16세에 현실 자각한 도산

 

안창호가 조국의 현실을 자각하게 된 것은 16세였던 1894년(고종 31년) 평양이 청일전쟁으로 파괴당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동학농민운동을 겪으며 청나라와 일본군의 진입을 보고 구국의 대열에 나서야 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집안의 반대가 있었으나, 그는 삼촌의 도움으로 비밀리에 가출, 경성으로 올라갔다.

 

안창호는 어느 날 정동제일교회가 있는 골목을 지나치다가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먹고 자고 마음대로 공부할 수 있으니 우리 학교로 오라' 고 권하는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를 만난 것을 계기로 장로교에서 설립한 구세학당(求世學堂)에 들어가 공부하게 된다. 여기서 산수, 지리, 세계사, 과학 등 새로운 학문을 배우며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

 

1897년 구세학당 보통부를 졸업한 그는 상급 학부로 진학하지 않고 보통부의 조교로 취직하였다. 그해 서재필과 이승만 유길준 윤치호 등이 주관한 독립협회에 가입하였으며, 이승만, 양기탁, 윤치호, 이상재, 이동녕 등과 함께 만민공동회에 참여하였다.

 

이후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조직하고 책임자가 되었으며, 평양부 쾌재정에서 만민공동회 관서지회를 개최하여 강연에 연사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는데, 이 때 청년 웅변가로 명성이 알려졌다.

 

1898년(광무 1년) 11월 경성부 종로에서 열린 만민공동회에서 7대신을 탄핵, 성토하였고, 6개조의 정치혁신안(政治革新案)을 건의했다. 그러나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가 황국협회의 무고와 습격으로 해산되자, 안창호는 은신해 있다가 고향으로 되돌아가 교육과 기독교 전도운동에 뛰어들었다. 1899년 강서군 동진면 암화리에 점진학교와 탄포리교회를 설립하였고, 인근 황무지를 농지로 개간하는 간척 사업을 추진하였다.

 

1902년(광무 5년) 이혜련과 결혼한 그는 11월 4일 아내와 함께 배편으로 출국, 일본 동경에서 1주일을 체류한 후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으로 가는 뱃길에서 일몰 중에 망망대해에 우뚝 솟은 하와이 섬의 웅장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호를 도산(島山)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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