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일 경남 진주시 시장, 11월 4일 월요일 오후 2시, 진주시청 브리핑 룸에서 기자회견 갖고 향후 추진 계획 브리핑 나서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ㅣ기사입력
2019/11/06 [12:30]
【UB(Mongolia)=GW Biz News】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 경남 진주시가 지난 10월 30일 유네스코 창의 도시로 최종 지정됐다. 경남 진주시는 지난 10월 초 세계한인언론인협회(=세언협, 회장 전용창-총재 정영수) 주최로 서울에서 개막됐던 제9회 2019 세계한인언론인 국제 심포지엄 기간 중에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회원들이 조규일 경남 진주시장 초청으로 "2019 진주남강유등축제" 취재 차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방문했던 도시이다. 기회가 된 김에, 관련 소식과 본 기자의 진주 방문 후기를 기사로 남겨 둔다.
경남 진주시가 지난 10월 30일 유네스코 창의 도시로 최종 지정됐다. 이에 앞서, 진주시는 지난 2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의해 국내 추천 도시로 선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진주시는 지난 6월 유네스코 본부에 유네스코 창의 도시 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조규일 경남 진주시 시장이, 11월 4일 월요일 오후 2시, 진주시청 브리핑 룸에서 유네스코 창의 도시 선정 기자 회견을 갖고 향후 추진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규일 경남 진주시 시장은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했던 한국 유학생 출신이기도 하다. (Photo=경남 진주시청).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이에 따라, 11월 4일 월요일, 조규일 경남 진주시 시장이, 진주시청 브리핑 룸에서 오후 2시부터 유네스코 창의 도시 선정 기자 회견을 갖고 그간의 과정에서부터 향후 추진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기자 회견은 조규일 진주시장이 창의 도시 지정을 위한 그동안의 추진 과정, 지정으로 인한 기대 효과와 향후 추진 계획 등을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조규일 시장은 "진주시에 대한 유네스코 창의 도시 지정은 진주 시민이 함께 이룬 쾌거로 그 의미가 깊다"고 전제하고, "그동안 큰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창의 도시 추진에 힘써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진주시가 창의 도시로 지정됨으로써 유네스코의 명칭과 로고를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문화 도시로서의 국제적 공인을 발판으로 향후 진주시의 창의 산업과 창의 관광이 활성화 될 것"이라며, "진주시에 대한 유네스코의 창의 도시 지정은 진주시가 문화 예술의 중심 도시로 우뚝 설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이를 통해 시의 품격을 드높이고 국제 문화-관광 도시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며, 원도심 재생 뉴딜 사업, 부강 진주 3대 프로젝트와 연계하여 문화 창의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발전과 시너지 효과를 추구할 계획"임도 밝혔다.
앞에 쓴 대로 경남 진주시는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회원들이 바로 한 달 전인 지난 10월 초에 방문했던 곳이다. 진주시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며, 기회가 된 김에 "논개(論介)"라는 한민족 여성을 주제로 해 써내려 간 본 기자의 진주 방문 후기를 덧붙여 둔다.
▲경남 진주 시내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2019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열리고 있던, 2019년 10월초순, 경남 진주시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진주에서 논개를 만나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남강 건너편에 진주성이 보인다. 진주성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국내 대표 관광지 99선에 선정되기도 한 유서 깊은 곳이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경남 진주에서 논개(論介, 1574년 9월 3일 ~ 1593년 7월말 또는 8월초)라는 한민족 여성을 만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절개'(남자는 배짱! 여자는 절개!)라는 낱말을 떠올리자면, 일단,"북한에는 계월향, 남쪽에는 논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논개는 참으로 유명한 한민족 여성(물론 열녀비가 세워질 정도로 절개를 지킨 한민족 여성이 수없이 많긴 하지만)으로 추앙된다.
▲진주에서 논개를 만나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논개(論介, 1574년 9월 3일 ~ 1593년 7월말 또는 8월초) 또는 주논개(朱論介)라는 이름의 이 한민족 여성은 1500년대 후반기 조선 선조 시대의 열녀로서 충절로 인해 의암(義巖)이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慶尙右道)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후처(부실)로서,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시문(詩文)에 능하였다고 전해진다. 1593년 최경회가 진주에 부임할 당시 20세(만 19세<=1593년-1574년)의 나이로 그와 동행하였으나,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1532 ~ 1593)는 남강에 뛰어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에, 논개는 왜나라 장수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던 진주 촉석루(矗石樓) 현장에 잠입해, 열 손가락에 가락지(=반지)를 끼고(양손 반지들이 제대로 엉키면 절대로 스스로 양손을 풀 방법이 없다) 왜나라 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진주 남강(南江) 쪽으로 유인한 뒤 강물 쪽으로 밀어붙여 남편이던 경상우도(慶尙右道)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원수를 갚았다고 역사는 전한다. 하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이 논개의 투신 사건이 왜나라 장수와의 사랑 이야기(이렇게 되면 논개는 왜나라 장수의 첩으로 신분이 변환된다. 논개가 그야말로 대성통곡할 일이다)로 왜곡돼 전해지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역사 기록을 보면, 제2차 진주성 전투(第二次晋州城戰鬪)는, 1593년 7월, 왜나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특명으로 10만 왜나라 군이 다시 진주성을 에워싼 뒤 7월 20일(음력 6월 22일)부터 같은 달 27일(음력 6월 29일)까지 벌어진 전투이며, 이 전투의 발발 원인은 바로 1년 전인 1592년의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나라 군이 당했던 패배를 설욕하는 것은 물론 이미 시작된 명나라와의 강화 협상에서 왜나라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속셈에서였다고 역사는 전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주성을 함락하고 움직이는 것은 모두 살육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593년 계사년의 왜나라 군은 전투 경험이 풍부한 부대였다고 전해지는데 이 전투에서 황진과 장윤이 전사했고, 최경회, 고종후, 의병장 김천일과 그의 아들 김상건이 스스로 남강에 뛰어 들어 자결(自決)했다. 이종인은 적병 둘을 껴안고 남강으로 뛰어 들었으며 진주 목사 서예원은 도망치다 붙잡혀 죽었다. 또한, 진주성 안의 백성들과 피난민들은 왜나라 군의 칼에 모두 죽임을 당했다. 7만여, 혹은 6만여 민관군이 한 전투에서 왜나라 군사들의 칼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한편, 논개가 왜나라 장수를 남강 물에 처박아버린 날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긴 하나, 순국 시기는 양력 1593년 7월 27일 진주성이 함락된 걸로 봐서, 진주성에 들이닥친 왜군들이 며칠 동안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고 나서야 술판을 벌였던 양력 1593년 7월말(28일~31일)에서 8월 초(1일~10일) 사이의 어느 날로 추정될 뿐이다.
본국의 중고등학교 한국사 시간이나 한국 문학 시간에 간간히 언급되던 이 논개가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건 1983년도부터 '논개'라는 제목의 가요를 불러 대기 시작한 어느 한국 가수 때문이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던 시기, 즉, 거의 100년 전인 지난 1923년, 고국의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1897∼1961) 선생은 '논개(論介)'라는 시를 통해 논개의 충절을 일찍이 높이 기린 바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 '논개'라는 본국의 이 한민족 여성을 처음 알게 된 게 언제였는지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을 참으로 유감으로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 접했던 이 '논개'라는 변영로 선생의 시 때문인 것인 것도 같고, 아니면 그 이전에 역사 시간에 배운 것도 같으나 내 기억은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기회가 된 김에 아래에 변영로 선생의 '논개'라는 시의 전문을 올려 둔다.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1897∼1961) 선생.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거룩한 분노는 / 종교보다도 깊고 / 불 붙는 정열은 / 사랑보다도 강하다 //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 높게 흔들리~며 /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 '죽음'을 입 맞추었네! //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 흐르는 강물은 / 길이 길이 푸르리니 / 그대의 꽃다운 혼 / 어이 아니 붉으랴! //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참고로, '논개'라는 시를 썼던 이 변영로 선생은 재외 동포와도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바로 이 변영로 선생의 셋째 아들이, 몇 년 전인 지난 2014년 11월에 77세로 세상을 뜬 변천수(卞千壽) 전 미국 뉴욕 퀸즈한인회(옛 플러싱한인회) 회장임을 굳이 기록해 둔다.
▲경남 진주시를 방문한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 )가 일일이 만찬 테이블을 돌던 조규일 진주시장과 조우했다. 조 시장은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했던 한국 유학생 출신이기도 하다. (Photo=경남 진주시청).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경남 진주시를 방문한 강외산 몽골인문대학교(UHM) 교수(본지 몽골 특파원 겸 KBS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 )가 리영달 남강유등축제제전위원회 위원장과 조우했다 .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경남 진주시를 방문한 세계한인언론인협회 소속 언론인들이 기념 촬영에 나섰다. (Photo=경남 진주시청).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내친 김에, 논개와 관련한 추억 한 토막도 기술해 둔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3학년 때였나? 내가 국어 과목 월말 시험을 치를 때였다. 당시 중학교 시험 형식은, 일반적으로, 한 문제에 대하여 네 개의 항목 가운데 정답 또는 가장 적당한 항을 고르게 하는 객관식 문제 형식이었다. 한참 국어 문제를 낑낑거리며 풀고 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된 국어 담당 J 선생이 갑자기 교실에 나타났다. "여러분, XX번 문제를 보세요. 보기 항목 중에 중복된 게 있지요?" 나로서는 XX번 문제까지 미처 풀기 전이었는데, J 선생이 지적한 문제의 4가지 보기 항목을 보니 "1) 한강 2) 금강 3) 낙동강 4) 한강"이었다. "이 XX번 문제의 질문 내용이 "논개가 왜나라 장수와 떨어져 죽은 강은 어느 강입니까?"였는지, 아니면, "촉석루는 어느 강에 위치하고 있습니까?"였는지 현재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으나, 하여튼, 정답은 분명히 남강(南江)이었다. 이어서, 국어 담당 J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여러분, 1번 보기 항목하고 4번 보기 항목이 한강 / 한강으로 똑같습니다. 정답 고르는 데야 상관은 없지만(왜 상관이 없었겠는가? 사실 상관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노련한 국어 선생이다), 그래도 보기가 똑같으면 좀 이상하니 4번 한강을 요강(=방에 두고 오줌을 누는 그릇)으로 고치세요!" 그런데, 웃기는 것은 , 4번 항목을 요강(=방에 두고 오줌을 누는 그릇)으로 고치게 되면 "1) 한강 2) 금강 3) 낙동강 4) 요강"이 돼서 정답이 없게 된다. 왜냐. 정답은 남강(南江)이었으니까. 내가 하도 기가 막혀서, "선생님, 그러면 답이 없습니다!" 하고 반문하려는 찰나, 간발의 차로 국어 담당 J 선생이 먼저 말씀하시기를, "여러분, 요강(=방에 두고 오줌을 누는 그릇)은 이상하니까 동-서-남-북 중의 한 낱말로 합시다. 그냥 남강으로 고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 교실 문을 나서시었다. 이렇게 해서, 보기 항목은 "1) 한강 2) 금강 3) 낙동강 4) 남강"이 되었다. 당연히 나는 4번을 찍었다. 왜냐. 나는 등신이 아니니까! 그런데, 국어 시험이 끝나고 나서 동급생 K가 내게 물었다. "야, 아까 강 이름 묻는 그 문제 정답이 뭐냐?" 나는 응답했다. "남강이지!" 그랬더니, 이 K라는 친구가 펄펄 뛴다. "야, 4번 보기는 아까 선생님이 요강으로 안 고쳤냐?" 결국, 이 친구 말은 요강이라는 선생의 말씀을 듣고 마음 푹 놓고 전혀 엉뚱한 답을 골랐다는 얘기였다. "인간아, 그러니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지!" 국어 선생님이 노련했는가? 아니면, 이 친구가 한심했는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몫일 터이다. 정작 놀랄 만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이 K라는 친구가 고등학교 1학년 방학을 이용해 H강으로 놀러 갔다가 강물에 빠진 뒤 빠져나오지 못하고 익사해 버렸다. 이 친구의 타고난 팔자였을까? 아니면, 촉석루가 진주 남강에 있다는 사실을 몰라 본 내 친구에 대한 논개의 분노였을까? 참으로 오랜만에 꺼내 놓는 얘기이긴 하나, 그냥 넘기기에는 다소 무거운,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논개(論介, 1574년 9월 3일 ~ 1593년 7월말 또는 8월초) 영정.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어둠이 내린 경남 진주 남강 건너쪽 11시 방향에 진주성 촉석루가 보인다. 바로 이 진주성 촉석루 아래에 논개가 왜나라 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진주 남강 물에 처박은 의암(義巖)이 위치하고 있다. 고려 공민왕 14년(1365년)에 건립된 진주성 촉석루는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곳 50선에 꼽힐 정도로 자태가 웅장하고 한국의 미를 잘 살린 누각으로서, 북한 평양의 부벽루, 경남 밀양의 영남루와 더불어 한반도 3대 누각으로 불린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논개, 임진왜란 침략군 왜나라 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진주 남강 물에 처박다!(1593년 7월말 또는 8월초 어느 날)
재외 국민으로 살면서 고국의 논개를 만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일 터이다. 하지만 지난 10월 초 서울에서 개최된 제9회 2019 세계한인언론인 국제 심포지엄 참가 차 고국을 방문했던 본 기자는 일정 중에 진주 방문 일정이 포함되는 바람에 다행스럽게도 논개를 만날 수가 있었고, 그 기회를 빌려, 본 기자는 한민족 구성원으로서 "애국충절"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겼다. 참으로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셈이다.
2019년 11월이 시작됐다. 고국에서는 여야(與野) 사이에 정쟁(政爭)이 한창이고, 한반도를 둘러 싼 한-미-일 '남방 3국'과 북-러-중 '북방 3국'의 대립 구도에서 전자는 '균열 조짐'을 보이고 후자는 '밀월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지금, 한민족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슬픈 족속"(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4년 전 초여름, 몽골 현지에서 국제 열차로 중국으로 남하해 중국 옌볜조선족자치구 룽징(Longjing=龍井) 시 소재 윤동주 시인의 생가 명동촌에서 보았던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라던 윤동주 시인의 "슬픈 족속"이라는 시 구절이 가슴을 후벼 파는 몽골 현지의 늦가을 오전 시각이다.
▲Reported by Alex E. KANG, who is a Korean Correspondent to Mongolia certified by the MFA led by Foreign Minister D. Tsogtbaatar. ⓒ Alex E. KANG
알렉스 강 몽골 특파원 alex1210@epo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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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ius, Altius, Fortius (Faster, Higher, Stronger) <편집자주> 국제 회의 동시 통역사인 알렉스 강 기자는 한-몽골 수교 초창기에 몽골에 입국했으며, 현재 몽골인문대학교(UHM) 한국학과 교수로서 몽골 현지 대학 강단에서 한-몽골 관계 증진의 주역이 될 몽골 꿈나무들을 길러내는 한편, KBS 라디오 몽골 주재 해외 통신원으로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촌에 몽골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