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벗어나 앙제로 가는 길은 안개에 싸여있었다.
“짙은 안개, 그것은 무진의 명물이었고, 과거에도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면 무진에 오곤 했었다.”라고 쓴 김승옥의 ‘무진안개“가 그렇지 않을까 상상하게 하는 안개였다. 쉽게 잊혀지지 않을 거라 느낄 만큼 짙었다. 막연하게 길을 따라가서인지도 모른다.
흐릿한 길을 따라 가다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성이 눈에 들어오면서 이내 앙제라는 중세의 도시로 들어서게 된다.
앙제의 출구이자 앙제의 가장 큰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앙제성이다.
앙제성은 로망시대부터 방책을 세워 요새가 만들어졌다. 9세기부터 앙주 백작의 본거지로 성벽을 쌓아 더 견고한 요새가 되어 외부의 적들의 공격을 막았다.
앙제성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영토분쟁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1151년 앙주의 백작 조프루아 5세(Geoffrey V)가 죽자 그의 아들인 앙리 2세가 통치권을 이어 받았고 1154년에는 앙리 2세가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다. 앙주 지방의 성들은 잉글랜드로 귀속되었다가 1204년 프랑스왕 필리프2세가 앙주 지방을 탈환하면서 성은 카페왕조의 소유가 된다.
잉글랜드는 앙주지방을 되찾기 위해 부빈전투를 일으켰지만 패해 프랑스 왕조가 계속 통치해왔다. 1230년에는 어두운 편암과 밝은 석회암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반원형의 17개의 망루로 보호되는 이중성벽을 건설하여 난공불락의 요새로 거듭났다. 앙주백작의 권력을 보여주듯이 견고하고 육중하고 아름답다.
성 안에는 프랑스식 정원과 왕족들이 살았던 건물과 예배당이 있고 꼭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이 있다. 19세기까지 앙제성당에서 보관하다가 1954년 복원한 갤러리에 전시 중인 태피스트리이다. ‘니콜라 바타이유 (Nicolas Bataille)’가 루이 1세 공작의 주문을 받아서 1375년부터 5년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높이 2m, 폭 168m에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선과 악, 종말, 그리스도의 등장 등의 요한계시록의 장면과 중세시대의 기근과 질병, 백년전쟁 등의 현실도 담겨 있으며 현존하는 태피스트리 가운데 가장 거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드 브뤼즈(Jean de Bruges)’가 밑그림을 그렸고 양탄자 위에 수를 놓은 것이다.
1875년 앙제 성은 시대를 반영한 뛰어난 건축미를 인정받아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등재되었고 2000년에는 루아르 계곡에 있는 고성 가운데 하나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앙제의 다른 볼거리들
앙제의 구시가지는 보존이 잘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15세기 반목조 건축물인 아담의 집(Maison d’Adam)이 유명하다. 1491년경에 앙제의 부유한 상인을 위해 지어진 집으로 18세기 초에 지역 유지였던 미셀 아담이 구입하면서 “아담의 집”이라 불리고 있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 테두리에는 성경과 신화 속 인물, 야수, 천사, 동물. 식물 등의 다양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어 ‘생명의 나무 집(Maison de l’Arbre de Vie)’이라 불리기도 한다. 15세기 하프팀버(Half Timber) 공법을 사용한 건물로 목조 골격의 일부가 외부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골조 사이 공간을 벽돌과 흙으로 채워져 있다. 이 건물 역시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가치와 독특한 건축미를 인정받아 1922년 문화재로 선정되었다. 현재 ‘아담의 집’은 도자기, 태패스트리, 보석, 장식품 등을 판매하는 전시장으로 사용 중이다.
앙제 생 모리스 대성당(Cathédrale Saint-Maurice d’Angers)은 성당의 잔해만이 있던 자리에 12세기에 새롭게 세워진 성당으로 로마네스크 양식과 앙제 고딕 양식의 조화가 뛰어나게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하다. 화려한 고딕조각으로 둘러싸인 성당은 내부도 금장 장식으로 화려하고 스테인글라스도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반짝인다. 앙제 고딕양식이 가미되어 뛰어난 건축미를 보여주고 오랜 역사적 가치도 인정받아 1862년 문화재로 선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다비드 당제 미술관(Galerie David d’Angers)은 조각 미술관으로 앙제 출신으로 19세기 낭만주의 경향을 이끈 조각가 다비드 당제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인간 내면의 감정과 사고를 보여주려고 한 700여점의 조각품을 볼 수 있다.
장 뤼르사 미술관(Musée Jean Lurçat)은 직물 공예 미술관으로 근 현대 태피스트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12세기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빈민들을 치료하던 병원이었던 곳을 태피스트리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은 장 뤼르사의 ‘세계의 노래(Chant du monde, 1957~1966년)’이다. 생명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세계의 노래’는 10장의 패널로 이어진 총 길이 80m 높이 4.5m로 앙제성의 요한계시록 태피스트리에서 받은 영감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전쟁과 죽음의 종말론적인 것이 아닌 생명의 역동성과 희망 속에 인류애가 담겨있다.
작품이 가진 자유로움, 환희는 보는 이의 가슴을 환하게 열어준다. 현대 태피스트리 기획전시와 장 뤼르사 작품을 보기 위해 세 시간 반 거리의 앙제를 찾을 만큼 예술작품을 보는 감동이 살아있다.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감동이 세계의 노래가 되어 울려 퍼진다. 앙제를 간다면 꼭 들러봐야할 미술관이다.
앙제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Angers)에는 중세 말부터 현대 작품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은 15세기 말에 왕의 재무관이었던 올리비에 바로의 소유였던 7000m²의 대저택을 개조하여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플랑드르 미술의 흐름을 볼 수 있고 앙제의 역사, 문화, 경제 등을 볼 수 있는 문헌과 사진도 있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 조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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