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캔버라 연방의사당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에서 함께 자리한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피터 하처 정치부장과 케빈 러드 전 총리.(AAP)
호주 사회 일각에서 중국 경계론이 급부상하자, 다른 일부에서는 “황화론을 재연시키려 한다”고 논박하는 등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연방 정부는 “호주로의 외세 개입 차단을 위한 TF(타스크포스, 전담반) 신설을 위해 9000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호주정부가 언급한 외세 개입은 다름아닌 ‘중국의 영향력 침투’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최근 몇주간 호주 정치권은 물론 일부 언론들은 앞다퉈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 확대’ 내지는 ‘중국의 호주 정치권 장악 음모론’을 제기하며 중국 경계론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호주보안정보국(ASIO)의 전현직 수장이 연거푸 “중국이 스파이 행위 등을 통해 '은밀하게' 호주 정치권을 장악하려 한다”, “ASIO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본격적으로 점화된 바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른바 호주에서 중국 스파이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 왕리창이 호주보안정보국(ASIO)에 모든 첩보를 제공한 후 호주에 망명을 요청하는 이례적 상황까지 발생했다.
언론인 피터 하처…ASPI 존 가넛
중국 경계론은 언론과 싱크탱크 등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호주의 거물급 언론인인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피터 하처 정치/외신부장은 ‘오성홍기: 우리를 깨우는 중국의 도전’이라는 제하의 에세이집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정면으로 경고했다.
캔버라 연방의사당에서 최근 열린 출판 기념회를 통해 피터 하처 정치/외신부장은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호주 거주 ‘중국계 애국 열사’들이 모국의 지정학적 전략과 목표에 따라 공세적 행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처 부장은 같은 맥락에서 “다행히 호주의 강화된 테러 및 보안법이 이런 문제를 대처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법규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앞서 호주전략연구원의 존 가넛(Johan Garnaut) 외교전략분석가는 “호주 대학들이 중국 발 이념전쟁의 최전선이 됐다”면서 “호주에 유학중인 13만여 중국인 대학생들이 호주 대학을 ‘인종에 기반을 둔 맹목적 애국주의의 산실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100만을 넘어선 중국 교민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국 유학생들이 호주에서 자국의 이념 구현에 앞장서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호주 정치권을 겨냥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케빈 러드 전 연방총리가 “황화론(yellow peril) 시절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이냐’고 자유당 연립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황화론이란 청일전쟁 말기인 1895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주창한 황색인종 억압론으로 “황색인종이 유럽 문명에 대해 위협을 준다고 규정하고, 황색인종을 세계의 활동무대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창했던 차별론이다.
케빈 러드 “황화론으로의 회귀”
중국어가 능통한 외교관 출신의 케빈 러드 전 총리는 자유당 연립정부의 중국 문제 대처방식을 ‘자기 잇속 차리기’로 단정지으며, ‘황색인종 억압론 시절로의 회귀’라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케빈 러드 전 총리의 이 같은 주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피터 하처 부장의 ‘오성홍기: 우리를 깨우는 중국의 도전’이라는 제하의 에세이집 출간 축사를 통해 제기됐다.
러드 전 총리는 “중국과의 관계 유지는 외교적으로 늘 어려운 과제이지만 자유당 연립의 현 중국 정책은 외교가 아니라 정당 정치”라고 일축했다.
그는 또 “나를 ‘만주 출신 후보’라고 비아냥댄 자유당 연립은 수십년 동안 유지돼 온 초당적 중국 정책에 대한 관례를 파괴하기 위해 온갖 정치적 공작을 벌였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특히 그는 “말콤 턴불 전 총리가 당권 강화 차원에서 강경 중국 정책으로 선회했었다”고 주장하며, 그 예로 2017년 턴불 당시 총리가 외세 개입에 맞선 호주국민 우선 정책을 선언한 것이 현재 상황의 도화선이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러드 전 총리는 “호주의 민주주의와 헌법, 그리고 호주의 인프라스트럭처를 위협하는 현실에 경계는 해야겠지만 상상적 위협에 경각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일갈했다.
같은 맥락에서 러드 전 총리는 “테러 방지를 위해 도입된 일련의 국가 안보 강화법안을 폴린 핸슨 식의 차별주의적 황화론으로의 회귀를 위한 정치정 동력으로 삼으려 할 경우 나부터 나서 이를 저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변했다.
사진: 봅 카 전 외무장관이 부인 헬레나 여사와 함께 지난 6월 거행된 봅 호크 전 연방총리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있다.(AAP Image/Dan Himbrechts)
봅 카 “중국 공포론 확산의 장본인은 말콤 턴불, 존 가넛”
NSW 주 역대 최장수 주총리 및 줄리아 길라드 정부 하에서 외무장관을 역임한 봅 카 전 연방상원의원 역시 케빈 러드 전 총리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논리를 펼쳐온 것은 호주 정치권, 학계, 언론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봅 카 전 외무장관 역시 현재의 상황을 촉발시킨 장본인으로 말콤 턴불 전 연방총리와 호주전략연구원의 존 가넛 씨를 지목했다.
그는 “지난 2017년 말콤 턴불 정부부터 ‘중국 공포론’이 정치권에서 퍼지기 시작했다”면서 “턴불 전 총리의 이 같은 발상의 근저에는 패어팩스의 중국 특파원을 역임한 호주전략연구원의 존 가넛 연구원의 억지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봅 카 전 외무장관은 중앙 일간기의 기고문을 통해 정치권의 과민 반응을 꼬집었다.
그는 “백인 민족주의자의 ‘직관력’을 앞세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외교정책과 맥을 같이하려는 일부 보수 정치인들의 터무니없는 억측이자 과대망상증 반응이다”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현재 UTS 대학의 호주-중국 관계 연구원의 원장직을 맡고 있는 봅 카 전 외무장관은 각종 여론조사와 논문 등을 예로 들며 “과도한 중국 경계론은 냉전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진 못한 일부 보수 정치인들의 편협한 사고에 기초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국가의 발전을 퇴보시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정부 여당은 선명하고 지속적인 대 중국 정책 및 외교적 전략 개발 및 쇄신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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