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바는 요물

뉴스로_USA | 미국 | 2019.12.10. 11:44

Newsroh=황길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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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수월하게 배달을 마쳤다. 가까운 곳에 트레일러 세차장이 있어 와쉬아웃도 해결. 릭비 파워 와쉬, 지난번에는 휴일이어서 그랬나 가격이 비쌌는데 오늘은 45달러다. 세차장에 트럭 한 대 세울 곳도 있어 주차하고 기다렸다. 트럭 경정비, 스토리지, 트레일러 세차를 하는 데 별로 오가는 차량이 없어 조용하다.

 

다음 화물이 들어왔는데, 일정이 애매하다. 다행히 뉴햄프셔에 있는 발송처에서 오버나이트 파킹을 할 수 있다. 화물을 받고 8시간이나 10시간 휴식 후 출발해 오전 8시까지 저지 시티로 간다. 발송처에 도착하니 아직 화물을 싣고 있다.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화물을 싣는 중인 트레일러에 연결했다.

 

서류를 받고 보니 주소가 저지 시티가 아니다. 엘리자베스다. 혹시나 해서 발송 사무실에서 확인했는데 주문 번호가 같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물류센터가 두 곳이다. 확인 안 하고 갔으면 엉뚱한 곳에 배달할 뻔했다.

 

저녁 먹고 쉬다가 새벽 2시나 3시에 출발할 작정이다.

 

어제는 간만에 문화생활을 했다. 영화 해피 크리너스를 봤다. 공동 감독 중 한 명이 보내준 후원자 시사용 비디오 인터넷 링크를 통해 봤다. 재미있고 잘 만들었다. 자세한 감상평은 나중에 별도로 쓰기로 한다. 나와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가족의 얘기라 더 공감이 간다.

 

오늘은 기다리며 미드 체르노빌을 봤다. 절친 박건희의 추천작이다. 5부작 중 3편까지 봤다. 공포스러운 재난영화다. 체르노빌에 대해 글로 아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은 천지 차이다. 체르노빌을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이 들었는지 실감한다. 후쿠시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수습 불가능하다는 절망감 때문일까? 애써 숨기고 부정하려는 것은.

 

아침에 일어났더니 나거가 나왔다. 내 샌들에서 고향의 냄새를 맡았나? 오늘은 종일 내 발아래 있다.

 

고양이는 요물이라더니. 정말이다. 요염한 물건이다. 심바 너는 남자야. 정신 차려.

 

 

 

역시나 이곳이 아니었어

 

 

새벽 2시에 출발했다. 미처 생각지 못한 게 있다. 평일 아침 출근길 교통량이다. 중간에 주유도 해야 한다. 새벽 5시가 되니 벌써 길이 막혔다. 도저히 8시까지는 못 간다. 9시로 도착 예정시간을 바꿔 보고했다.

 

엘리자베스에 8시 40분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서류를 내미니 더 이상 여기서 안 받는단다. 다른 주소를 적어 주는데 저지 시티다. 염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러면 발송 서류에도 제대로 적어 놓든지. 그나마 엘리자베스와 저지 시티는 멀지 않다는 게 위안이다.

 

저지 시티에 도착했다. 약속 시각을 넘겼지만 별로 신경 안 쓰는 분위기다. 위성사진에서 보고 염려했던 대로다. 후진할 공간이 엄청 좁다. 반듯하게 대라는 주문을 받았다. 트레일러를 제대로 대면 트럭이 삐딱했다. 다행히 내 왼쪽에 있던 트럭이 빠져서 움직일 공간이 생겼다. 30분 이상을 고생한 끝에 완벽하게 댔다. 트럭 운전 1년이 넘었다. 초심으로 돌아가려 했더니 마음가짐은 그대로고 실력만 돌아갔다. 야드 자키도 후진에 어려움을 겪는 걸 보니 약간 위안은 된다. 굵은 철심으로 된 씰을 끊어야 하는데 내가 가진 볼트 커터로는 어림도 없다. 사무실에서 커다란 커터를 빌려다가 끊었다.

 

바로 앞 펜스는 7천 볼트 전류가 흐른다고 적혀 있다. 실제 흐르는지 시험해 보고 싶지는 않다. 전기 펜스가 있다는 건 우범지대라는 얘기다. 실제로 저지 시티와 뉴왁 일대는 범죄율이 높다.

 

화물을 내리고 롬바르디 플라자로 향했다. 트럭 100대 이상 주차할 수 있다. 항상 트럭이 많다는 게 함정이기는 하다. 10시간 넘기면 견인도 한다고. 안 그러면 트럭 장기 주차장이 될 테니. 톨게이트를 통과하기 직전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발송처가 저지 시티다. 장난하나? 좀 빨리 보내지. 평소에는 두세 시간 걸리길래 휴게소로 이동했는데. 롬바르디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저지 시티로 돌아갔다. 트레일러는 깨끗해서 와쉬아웃은 필요 없었다. 나무 조각 몇 개 손으로 주워서 버렸다.

 

발송처는 트로피카니다. 내일 아침까지 펜실베이니아로 가는 화물인데 거리가 150마일이라 돈은 안 된다. 그래도 어쩌랴. 이런 화물도 받아야지. 드랍 앤 훅으로 알고 왔는데, 아직 화물이 안 실렸다. 그래서 라이브 로드로 바뀌었다. 야드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야드 자키가 와서 7번 닥에 대라고 손가락 7개를 펼쳤다.

 

새벽 2시에 시작했기에 오후 4시에는 시간이 끝난다. 다행히 1시간 남기고 짐을 다 실었다. 서류 받아 나가면서 푸드 카트에서 치킨 라이스를 샀다. 양념이 제육볶음 같이 매콤달콤하다.

 

에디슨 플라자에 도착했다. 오후 4시인데도 자리가 몇 개 안 남았다. 오후 5시가 되니 꽉 찼다. 이 휴게소는 워낙 이용객이 많다. 푸드코트와 매점도 북적거렸다.

 

오늘, 날이 덥고 습하다. 샤워 생각이 간절하다. 내일은 배달 마치고 가까운 트럭스탑에서 돈을 내고서라도 샤워해야지. 샤워비가 12달러라니. 그 돈이면 한국에서는 목욕탕도 갈 텐데.

 

여기서 10시간 휴식을 채우고, 새벽 3시에 출발하면 적당하다.

 

체르노빌 4편과 5편을 마저 봤다. 실화와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체르노빌 수습에 참여한 주요 인물은 대부분 몇 년 이내에 사망했다. 주인공 과학자는 원자로 설계가 문제라는 진실을 알리려고 애쓰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자살하자 소련 정부도 어쩌지 못하고 문제 있는 원자로 모델을 폐쇄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그가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거짓의 댓가는 무엇인가? 작품은 자극적이지 않고 차분하게 전개된다. 어두운 화면은 세기말적 분위기를 잘 담았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위험한 임무를 수행할 사람을 뽑는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자 솔직하게 사실을 밝힌다. 지원자는 일주일 안에 사망할 것이다.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수십, 수백만 명이 죽는다. 그러자 지원자가 나섰다. 진실의 힘은 크다. 원자로 아래로 땅굴을 파는 광부들도 꼼짝 않다가 사실을 말해주자 움직였다. 섭씨 50도가 넘는 열기에 알몸으로 일했던 그들 대부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심바는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잘 지낸다. 나거는 운전석 아래에 계속 있다. 에어컨 바람이 차가운지 비닐로 몸을 가렸다.

 

 

본질에 집중하라. (조국 논란의 본질)

 

 

 

새벽 2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했다. 어제의 경험으로 오늘은 충분한 시간 여유를 뒀다. 오늘은 대도시에서 멀어지는 방향이라 교통이 원활했다. 오히려 시간이 남아 휴게소에 들러 1시간 잠을 잤을 정도다.

 

오전 7시 30분, 배달처에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Flying-J로 향했다. 거리는 20마일이 좀 넘는다. 시골 국도길에다 마을을 몇 개 지나느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시간은 40분이 넘게 걸렸다.

 

플라잉제이에 도착해 샤워하고 아침이 될만한 음식을 샀다. 다음 화물이 들어왔다. 일리노이로 가는 화물이다. 품목은 맥주다. 트레일러 상태가 어중간했지만 와쉬아웃을 하기로 했다.

 

발송처에서 가까운 세차장을 찾아 와쉬아웃을 했다.

 

발송처에 가니 아직 화물을 안 실었다며 라이브 로드를 하란다. 그거야 상관없지. 근데 문제는 이곳이 좁고 차량 통행도 잦다. 들어오는 트럭, 나가는 트럭, 후진하는 트럭 마구 뒤엉켜 복잡한 가운데 후진을 했다. 어렵게 들어갔다. 여기는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근처 트럭에서 드라이버가 나와서 뒤를 봐줬다. 그만큼 힘든 곳이다. 나도 후진을 마치고 다른 트럭 후진을 봐줬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1시간 남겨두고 짐을 실었다. 갈 수 있는 거리는 60마일 내외다. 다행히 그 정도 거리에 휴게소가 있다. 이 시간이면 트럭스탑은 이미 자리가 차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달려 3분 남기고 휴게소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자리가 있었다. 조금 더 가면 큰 트럭스탑이 몇 개 있어서 이곳은 분명 자리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낮에 샤워도 했겠다 굳이 트럭스탑에 갈 이유는 없다. 오늘은 꽤 더워서 한 번 더 샤워해도 괜찮겠지만, 내일 가다가 중간에 쉬면서 하면 된다.

 

모레 오전 8시 배달이니 내일은 종일 달려 최대한 가까이 가는 게 목표다. 700마일 남았으니 최소 550마일 이상은 가야 한다. 모레 새벽에 출발해야 배달 시간 전에 도착한다.

 

정치 얘기와 종교 얘기는 삼가는 편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발전적 토론이 어렵다. 거기에 쏟을 여력도 없거니와. 따로 한국 뉴스를 챙기지 않아도 페친들의 포스팅을 통해 현재 이슈를 안다. 담벼락이 특정 이슈로 도배되기 때문이다. 일본 불매가 한창이더니 지금은 조국이다. 모든 언론 매체에서 그것만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이때는 외국에 사는 게 이점이다. 나 역시 한국에 있었다면 뭐가 뭔지 모르고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본질만 봐야 한다. 본질은 조국이란 사람이 법무부 장관을 잘하겠느냐다. 딸이 어떻고, 동생이 어떻고 다 개소리다. 그런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나는 조국의 가정사와 사생활에 관심 없다. 그가 사법 개혁을 이뤄낼 것이냐만 관심이다. 조국 본인이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도덕적 하자나 범법 사실이 있다면 모를까 가족 얘기는 곁가지다.

 

조국 씨의 딸이 특혜를 받았네, 수시를 없애고 수능으로만 뽑아야 하네 말들을 하는데, 공정한 기회 얘기를 하려면 상위권 대학을 졸업해 고시를 통과하거나 대기업에 들어가야 사람대접받는 구조적 모순을 먼저 봐야 한다. 상위 10%가 독점하도록 판을 짜놓고 (공정하게 경쟁해서) 너도 열심히 하면 10%에 들 수 있다고 독려해봐야 사기다. 공정 불공정을 떠나 90%가 낙오한다면 그런 사회 구조는 바꿔야 한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만 마쳐도 구성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갖은 스펙을 쌓고 외국 유학을 다녀와도 취직조차 어려운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누군가 지옥을 설계했고 많은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동조자가 됐다. 깨어라. 민중들이여.

 

당신이 회사에서 해고됐다. 이유는 당신 형이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냈기 때문이다. 그런 형을 뒀으니 당신은 지금 업무를 할 능력이 안 됩니다. 사표 쓰십시오. 이게 조국 가족 논란의 본질이다. 주변에 누가 조국 딸 얘기를 하면, 그래서 조국은 법무부 장관을 잘할 것 같습니까? 하고 되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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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신전

 

 

Plainfield, IN의 휴게소. 배달지인 에핑햄(Effingham, IL)까지 130마일. 오늘의 숙박지다.

 

오다가 Flying J에서 샤워하고 Denny’s에서 점심도 사 먹었다. 월마트 안 간지가 좀 됐다. 남은 식재료를 처리하고 있지만, 사 먹는 횟수도 늘었다. 한 열흘은 더 있어야 집에 가니 내일은 상황 봐서 월마트 한 번 들러야겠다.

 

나거는 벙커 에어컨 바람이 추웠는지 다시 조수석 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옆이라 따뜻한가? 2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나거가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놀랍다. 방전되지 않는 배터리라도 장착한 것 같다. 거북이의 장수 요인 중에는 음식 없이도 일정 기간 버틸 수 있는 능력이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다음 주 중으로 어디가 됐든 나거를 풀어줄 생각이다. 이왕이면 아칸소가 좋겠지.

 

지금은 종방한 고양이 신전이라는 팟캐스트가 있다. 운전하며 들으니 지루하지 않고 좋았다. 몇 년 사이 고양이를 기르는 인구가 크게 늘었다. 나만 해도 반려동물로 고양이보다 개를 선호했다. 어렸을 때 고양이는 낯설고 약간은 무서운 동물이었다.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도 한몫했다) 마음이 바뀐 결정적 계기는 동물 쉘터에서 직접 개와 고양이를 보고 난 이후다. 고양이가 이쁘기도 했지만, 쉘터에 있는 개를 보니 부담스러웠다. 의연한 고양이와 달리 개는 애절한 눈빛을 보내거나 필사적으로 울부짖었다. 브루클린과 맨해튼에 있는 쉘터 몇 곳을 다녔고 마음에 드는 고양이도 있었지만, 그날 바로 입양할 수는 없었다. 고양이용품 준비도 필요했고, 렌트 계약서나 동물을 기를 수 있다는 아파트 관리실의 레터를 요구했다.

 

심바는 딸아이 친구 엄마의 소개로 미국인 가정에서 분양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양이를 기른 경험이 없는 초보자에게 러시안 블루는 좋은 선택이었다. 영리하고 건강하며 성격 좋고 사람을 잘 따른다. 심바는 금방 온 식구의 사랑을 차지했다. 심바가 새벽에 놀면서 아이나 아내를 물어서 깨운다고 한다. 3개월 된 심바는 사람으로 치면 대여섯 살이다. 한창 장난칠 때다. 팟캐스트에서 들으니 고양이는 2살까지 맹렬히 활동하다 이후로는 심드렁해진다고 한다.

 

 

늦은 출발

 

 

오전 9시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은 지역이라 월마트 와이파이를 연결해 와이파이콜로 간신히 통화할 수 있었다. 건물 밖에서는 안 되고 안으로 들어가야 가능했다. 그나마도 잘 안 들리는지 상대는 내게 여러 차례 물어왔다. 준비가 아직 안 됐다. 그 이후로 한두 시간 간격으로 몇 번을 전화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내가 거는 수밖에 없다.

 

어제 봤던 프라임 드라이버를 다시 만났다. 그는 리즈 드라이버인데 화물이 늦어져서 받는 디테션피를 시간당 85달러 넘게 받는다 했다. 최대 8시간까지 받는다고. 거의 700달러다. 그도 뉴저지로 가는데 화물 운임은 3,500달러라 했다. 나도 디텐션피를 받겠지만 시간당 20달러 정도로 안다.

 

나거를 다시 물에 담가봤더니 오늘은 안 마신다. 나거 꼬리에 진흙 같은 게 붙어 있길래 봤더니 똥이다. 휴지로 닦아 냄새를 맡으니 시궁창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먹은 게 없을 텐데 숙변인가? 나 안 보는 사이에 바닥에 떨어진 음식 가루라도 주워 먹나?

 

나거를 풀밭에 내려놓고 트럭에 돌아와 감시했다. 두리번거리더니 트럭으로 온다. 주변에 마땅히 숨을 곳이 없어 트럭 밑으로 들어갈 작정인 모양이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가니 깜짝 놀라며 빠른 속도로 움직여 인도턱 밑으로 굴렀다. 다시 주워 트럭으로 데려왔다.

 

오후 2시에야 트레일러가 준비됐단다. JBS로 가서 트레일러 연결하고 서류 받아 출발했을 때는 오후 3시였다. 셈이 복잡해진다. 정시에 배달 가능한가? 예정보다 24시간 출발이 늦어졌다.

 

오후 6시, 길맨(Gilman, IL) 파일럿에 들러 주유했다. 자리도 있길래 여기서 자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정시에 배달을 못 한다. 배달하는 곳이 뉴왁인데 두 번 가봤다. 가는 길도 험하고 주변에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내키지 않는다. 화물이 늦게 준비됐다는 핑계로 내일 중간 지점에서 리파워를 요청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내가 맡은 화물이니 내가 끝내자. 샤워하고 출발했다.

 

남은 거리는 약 800마일, 오늘 적어도 550마일 이하로 줄여 놓아야 내일 한 번에 갈 수 있다. 해가 져 어둑해진 고속도로로 나섰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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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내 것이 아니다

 

 

새벽 4시 20분, 운전 시간 30분을 남기고 오하이오 브로드뷰 하이츠(Broadview Heights, OH) 서비스 플라자에 왔다. 앞서 두 곳 다른 서비스 플라자에 들렀지만, 자리가 없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내에서 최대한 가기로 했다. 신시내티가 가까워 자리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인근에 50대 규모의 파일럿 트럭스탑이 있으니 분산 수용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 트럭커는 트럭스탑을 선호하니까.

 

이곳에는 빈자리가 여럿 있는데 다른 종류의 트럭을 위한 공간이었다. 공연히 그런 곳에 세우면 티켓을 받을 수도 있다. 한바퀴 둘러보니 세미트레일러를 위한 자리가 딱 하나 남았다. 운이 좋다. 거기 주차를 막 마치니, 한 트럭이 지나가다 나갈 거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니 그냥 떠난다. 조금만 늦었어도 자리가 없을 뻔했다.

 

내일 아침 6시 배달인데 몇 시에 출발해야 좋을까? 주차할 곳을 찾을 수 있다면 미리 가는 게 좋다. 기다리며 10시간 휴식을 일부라도 취한다면 다음 일을 그만큼 일찍 시작할 수 있다.

 

출발 전에 여기서 샤워는 하고 가야겠다. 북동부에서는 며칠을 샤워 못 할지 모른다. 일주일 치 몰아서 일곱 번 하고 갈까?

 

사람은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페친도 환경의 일부다. 담벼락에 온통 조국 얘기니 나도 이성을 잃고 휩쓸렸다. 페북을 잠시 멀리할 때다. 같이 허우적거려서는 길을 찾지 못한다.

 

내가 가진 생각이나 믿음도 사실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다 천성적 기질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이슬람권에 태어났으면 그에 맞는 사고방식과 도덕관념을 가졌을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는 이유가 뭘까? 종교나 사상이 다르다고 배척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군. 흥미롭네. 왜 이렇게 보이지 않는 걸까? 세상 누구도 나와 같을 순 없는데 말이다. 남들의 다른 생각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인가?

 

나는 한국 민초의 저력을 믿는다. 가짜뉴스와 거짓 선동이 난무하는 현실에서도 역사에 빛날 비폭력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한국의 민주주의 의식은 주변국보다 앞서 있다. 더러운 물에서 연꽃이 피어나고 온갖 세균 속에서 면역력이 세지는 법이다. 휩쓸리지 말고 한발 물러서 냉철하게 핵심 가치만 붙잡고 가면 된다. 나는 말을 아끼련다.

 

 

조국이 자한당이라면?

 

 

오후 4시, 출발했다. 새벽 2시에 도착했다. 배달지 근처에서 길이 헷갈려 잠시 헤맸다. 예상과 달리 주차할 공간이 주변에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그 반대편에는 길가에 트럭 두어 대 정도는 서 있을 자리가 있었다. 주차 후 경비 초소로 서류를 들고 갔다. 통과증을 받아 사무실로 갔더니 육류는 반대쪽으로 가란다. 앞서 두 번은 모두 농산물이었다.

 

바로 닥을 배정받았다. 57번 도어에 대라고 했다. 럼퍼피는 300달러였다. 수표를 여기 갖다 주냐고 물으니 다 끝나고 전화하면 오란다.

 

원래 이곳의 후진 난이도는 중상급이다. 다행히 나는 맞은편에 트레일러가 아직 안 서 있어 수월하게 후진했다. 이제 자자.

 

약속 시각인 오전 6시가 넘도록 하차는 시작되지 않았다. 상관없다. 어차피 정오나 돼야 10시간 휴식이 끝난다.

 

9시 넘어 하차가 끝났다. 누가 문을 두드리길래 보니 인부가 서류를 들고 있다. 나는 럼퍼피 수표를 주고 서류와 영수증을 받았다. 직접 갖다 주니 편리하다.

 

밖으로 나갔다. 어제 내가 세웠던 곳은 자리가 없다. 다른 길에 세웠다. 주차금지 표지판이 없으니 문제는 없으리라. 혹시 이곳에 장기주차도 가능한가? 그러면 홈타임 때 편한데. 아마도 아닐 것이다.

 

다음 화물은 이미 들어왔다. 커네티컷 가나안의 특수광물회사에서 일리노이 애드리안으로 가는 화물이다. 얼마 전 갔던 코스다.

 

특수광물회사에 도착했다. 전에는 서쪽에서 접근했는데 이번에는 동쪽에서 가니 길이 새롭다. 한번 와봤던 곳이라고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길을 막고 있던 기차도 오늘은 없었다. 닥 주변에 주차한 승용차도 없어 오늘은 후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지난번보다 후진 시간이 줄었다. 꺾인 상태에서 닥에 정확히 대는 것은 어려웠는데 요령을 터득했으니 다음에는 더 수월하리라.

 

하얀 가루의 정체는 무슨 라임스톤이란다. 칼슘, 마그네슘 등의 성분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화물은 오늘도 거의 한계치다. 8번핀에서 11번핀으로 옮겼다. 그래도 트레일러쪽에 더 많이 걸린 것 같다. 12번이나 13번으로 옮겨야 하나? I-90 진입로 근처에 있는 러브스 트럭스탑에서 CAT 스케일로 무게를 재봤다. 앞뒤 균형이 이상적이다. 이 상태로 그냥 달리면 된다.

 

I-90을 따라 서쪽으로 향했다. 전에는 밤이면 주차 걱정이 컸지만, 이제는 덜하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이다. 해가 져 어둑해지자 Iroquios Travel Plaza에 들어갔다. 자리가 한 곳 있었다.

 

조국 광풍을 보며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조국이 자한당 후보였더라도 지금의 태도를 유지할 것인가? 언론, 조국 지지자, 비판자 모두 그 정도나 내용이 지금과 같을까?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의 장관 후보에 비하면 조국은 청빈한 선비 수준 아닌가. 그런데도 천하의 파렴치한 취급은 어딘가 공정하지 못하다. 조국이 그만큼 상징적이고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는 반증이겠지. 이제 조국 얘기는 그만하련다. 나는 그를 칼로 본다. 칼은 도구다. 조국 개인의 인간성을 떠나 그가 해야 할 일에 주목한다.

 

몇 대학에서 조국 사퇴 촛불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공정한 기회를 외치고 언론은 20대의 정당한 분노라 보도한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졸업 후 그들만의 리그에서 명문대 출신이라는 기득권 자산을 마음껏 누렸는데, 그것이 폐지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 아닌가? 왜 니들만 실컷 해 먹고 인제 와서 우리는 못 하게 해? 이건 너무 불공정해. 이런 삐딱한 시선은 내가 386 꼰대여서겠지?

 

 

 

빠듯한 배달 시간

 

 

아침에 10시간 휴식 끝나자마자 출발했어야 옳았다. 시간 여유가 있다는 생각은 내 착각이었다. 신시내티를 지날 때 차량정체로 시간을 많이 까먹었다. 평균 속도 시속 58마일로 달린 것도 판단 착오다.

 

Ottawa Lake, MI의 파일럿 주유소에 8시 30분에 도착했다. 주유하니 8시 40분. 내일 오전 6시 40분에 출발할 수 있다. 약속은 7시, 남은 거리는 약 20마일. 내일 아침 배달 시각을 겨우 맞출 수나 있으려나?

 

이 파일럿 트럭스탑은 170대 주차 규모니 꽤 큰 편이다. 어떤 곳은 주차 대수가 많아도 간격을 좁게 만들어 주차가 어렵다. 파일럿이나 러브스나 대형 트럭스탑 중에 그런 곳이 많다. 오히려 50대 정도 규모의 중간급 트럭스탑이 공간이 널널한 경우도 자주 있다. 다행히 이곳은 앞뒤 행 간격이 넓은 편이다. 맞은편 트럭과 간격이 트럭 한 대 정도의 거리가 나와야 주차가 수월하다. 그보다 좁은 곳은 주차할 때도 어렵지만 빠져나갈 때도 힘들다.

 

이 트럭스탑은 늦은 시간에도 몇 자리는 비는 모양이다. 미시간주가 트럭 주차 환경은 제일이다.

 

내일 배달을 마치면 미주리 본사로 가지 않을까 기대한다. ELD 규정이 바뀌어 전원 재교육을 한다. 아직 강의를 안 들은 사람은 최대한 이른 기간 안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코스를 조정한다고 했다. 미주리만 해도 나거가 살던 환경과 비슷하다. 조금만 더 참아라. 나거야. 요즘 나거는 그다지 몸을 숨기지 않는다. 운전석 아래 자리를 잡았다.

 

 

코카콜라

 

 

10시간 휴식을 채우고 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10분만 더 쉬면 되는데 말이다. 오전 6시 30분, 트럭스탑을 나섰다. 7시 전에 PPG에 도착했다. 다른 트럭이 짐을 내리고 있어 기다려야 했다. 그 트럭이 떠나고 내 차례가 됐다. 여기 난이도는 상급이다. 지난번 왔을 때는 드랍 앤 훅이어서 쉬웠다. 후진에 30분도 더 걸렸다. 트럭스탑 같으면 포기하고 다른 자리 찾았겠지만, 배달처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해내야 한다. 닥에 대고 나니 지게차 두 대가 번갈아 가며 십 여분 만에 짐을 내렸다.

 

어제 쉬었던 트럭스탑으로 돌아왔다. 트레일러는 깨끗한 편이고 하얀 가루가 좀 떨어져 있다. 빗자루로 쓸었다. 그 사이 다음 화물 예고가 들어왔다. Paw Paw에 1시까지 갈 수 있냐고 묻는다.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거리를 계산해보니 안 된다. 배달하고 반대편으로 왔기 때문에 거리가 더 멀어졌다. 잘해야 1시 반까지 갈 수 있다고 하니 알았단다. 나는 다른 트럭에게 주려나 보다 하고 계속 청소했다. 그런데 화물이 정식으로 배당됐다. 아까 출발했어야 1시 30분까지 가는데 지금은 더 늦었다. 도착 시각은 2시로 변경돼 있었다. 죽어라 가보자.

 

150마일이 넘는 거리를 달려 포포(Paw Paw, MI) 코카콜라 공장에 도착했다. 2시 4분이었다. 선방했다. 드랍 앤 훅으로 알고 왔는데 화물이 아직 안 실려서 라이브 로드로 바뀌었다. 냉장화물 부서로 가니 드라이 로드라며 반대편으로 가란다. 두 번 연속 드라이 로드네. 리퍼를 안 돌리면 조용해서 좋다. 체크인하고 동그란 버저 단말기를 받았다. 그리고는 함흥차사. 연락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사무실로 다시 가봤다. 다음이 내 순서란다.

 

자정이 넘어 Door 16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미 10시간 휴식은 지났다. 중급 난이도. 밤이라 조심하며 후진했다. 몇 번을 내려서 확인했다. GOAL이다. Get Out And Look. 도어에 댔지만 짐을 실을 기미가 없다. 옆 트럭이 빠지고 다른 트럭이 들어왔다. 내려서 뒤를 봐줬다.

 

미주리에 내일 오전 10시까지 배달이고, 8시간 거리니 늦어도 오전 3시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짐이 늦게 실려서 배달이 지연되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밤새워 가려면 잠이나 자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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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벌었으나

 

 

오전 3시부터 짐을 싣기 시작했다. 오전 4시에 출발했다. 10시까지 가는 건 불가능하다. 넉넉잡고 오후 1시 도착으로 출발보고 통화에서 얘기했다.

 

가는 도중에 배달 시간이 내일 오전 4시로 바뀌었다. 뭥미? 에이 그럼 서둘러 갈 필요 없잖아. 속도를 줄였다. 잠시 후 다시 배달 시간이 오늘 오후 1시로 바뀌었다고 연락이 왔다. 다시 전속력.

 

어제 밤운전을 예상 못 했기에 잠을 충분히 못 잤다. 졸리고 피곤하다.

 

일리노이와 미주리의 경계에 있는 푼툰 비치에서 주유했다. 배달처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30분이다. 다시 메시지가 왔다. 배달 시간이 내일 오전 10시 15분이란다. 뭐야 장난하나. 내 잘못으로 출발이 늦은 것도 아닌데 꼬박 하루를 기다리라고?

 

일단 트럭대기장에 주차하고 정문 경비실로 갔다. 서류를 확인하니 전산에 내일 오전 10시 15분으로 뜬다. 지금 체크인할 거냐? 내일 하겠냐? 좀 생각하다 지금 체크인하겠다고 했다. 지금 체크인하면 트럭에서 대기해야 한다. 트레일러를 내려놓고 어디 가거나 우버를 불러 떠날 수 없다. 알았다. 아까 주유하면서 샤워나 할 것을 그랬네. 내일 온다 할 걸 그랬나?

 

트럭에 앉아 있으니 전화가 왔다. 미주리 번호네? 회사인가? 받아 보니 배달처다. 513번 도어에 대란다. 오늘 받아 주는구나. 하루를 벌었다. 아까 그냥 갔으면 어쩔 뻔했나. 닥킹하고 접수 사무실로 가 체크인했다. 짐은 금방 내리지 않았다. 거의 4시간 걸려서 짐 내리고 서류 받아 나왔다.

 

트럭스탑으로 갈까 하다가 대기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정문 밖에 마련된 대기장에 머물 수 있다. 단 오후 8시에는 떠나라고 한다. 그 전에 다음 화물이 들어오겠지.

 

오후 8시가 넘도록 화물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떠나라는 얘기도 없으니 최대한 버텨보자. 어차피 9시가 돼야 10시간 휴식이 끝난다. 본사가 여기서 200마일인데, 나는 본사로 가서 교육받으라고 할 줄 알았다. 내일이 금요일인데 교육은 아침에 있으니 이번 주는 글렀다. 화요일은 집에 가는 날이니 교육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이래서야 하루 일찍 배달한 소용이 없다. 내일부터 노동절 연휴가 시작돼 화물이 뜸한 모양이다.

 

나거의 체력도 바닥을 드러내는 것인가? 나거가 벙커 냉풍구 근처에서 목을 빼놓고 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죽었나 싶어 보니 눈을 감고 자고 있다. 항상 경계심이 많은데 이렇게 대책 없이 눈 감고 자다니. 체력을 아끼기 위해 동면 상태에 든 모양이다.

 

일단 미주리는 왔지만 좀 더 남쪽이 좋다. 내일 화물 방향을 보고 남쪽으로 가면 나거를 데려 가고 다른 쪽이면 이 근처 적당한 곳에 풀어줘야겠다. 조금만 더 견뎌라.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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