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로창현 칼럼니스트
지난 3월 북미간 하노이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마지막 순간 영변핵시설의 완전폐기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했습니다. 북은 이미 6.12 싱가포르회담 전후로 비핵화를 위한 선행조치들을 취해 왔지만 폼페이오와 볼턴 등 회담을 파국으로 몰고가려는 강경파의 기류를 간파하고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영변 카드’를 내놓은 것입니다.
미국은 지난 30여년동안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줄기차게 요구해왔습니다. 반면 북은 핵보유의 원인이 미국의 핵위협에 기인했던만큼 미국이 한머리땅(한반도) 주변에 전개하는 핵타격수단의 제거와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영변핵시설 폐기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노이에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중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부문을 해제’하는 조건으로 영변핵시설 폐기를 하겠다는 실로 대담한 제안이 나온 것입니다.
이는 싱가포르공동성명에서 트럼프대통령이 약속한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지 조차 미국내 강경파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친 상황에서 트럼프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고 기필코 하노이회담을 성공시키겠다는 김위원장의 강력한 의지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어떻게 했던가요. 한머리땅이 평화의 땅이 되고 북미가 친선우호국이 될 수 있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제안을 물리치고 ‘또다른 핵시설’ 운운하며 회담장을 떠났지요.
미국의 이같은 행위는 지난 수십년간 6자회담 등 일련의 비핵화협상에서 합의안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 허위 정보나 어이없는 핑계로 판을 뒤엎는 구태(舊態)를 되풀이 한 것입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한이 1994년 기본합의를 안 지킨 것은 없다”고 했고 부시정부 시절 곤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미국은 (북한과의) 축구경기 도중 골대를 옮겼다”고 털어놓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하노이회담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3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은 새로운 조미관계수립의 근본방도인 적대시정책 철회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으며 최대의 압박으로 조선을 굴복시킬수 있다고 오판하고 있다. 그 무슨 제재해제때문에 대화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있으며 생각하면 아무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도 주고받을수 있다”면서 “년말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것이지만 미국이 계산법을 바로 고쳐야만 제3차 조미수뇌회담이 가능하다”고 표명했습니다.
그무렵 저는 재외동포방송편집인협회에서 주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남북미 쟁점과 北 바로알기> 주제발표를 하였습니다. 발표 자료가 9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용이 유효한 것은 북에 대한 광범위한 무지와 오해가 빚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입니다. 연말까지 새로운 셈법을 가져오라는 최후의 시한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미국이 취해야 할 진정한 솔루션이 무엇인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시점을 고려해 주제발표 글을 다듬어, 소개합니다.
4.27 판문점선언을 시작으로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 한 차례의 남북미 판문점 깜짝회동이 펼쳐진 2018년과 2019년은 현대사의 가장 숨가쁜 시간으로 기록될만 하다.
2020년에도 역사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은 불가피하다. 예측하기 힘든 미래로 기대와 우려는 반반이다. 쟁점인 ‘비핵화’를 놓고 당사자간 해석을 달리하고 있기때문이다. 미국은 북의 비핵화로 인식하지만 북은 자국을 위협하는 모든 핵공격의 비핵화를 말한다. 괌기지와 하와이기지의 전술핵, 나아가 주한미군의 철수(撤收)까지 염두에 둔 비핵화다.
북으로서 핵은 마지막 생존의 담보물이다. 핵이 없었다면, 또한 미대륙까지 쏠만한 로켓엔진이 없었다면 과연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파워의 자존심을 무릅쓰고 두 번씩이나 회담장에 나올수 있었을까.
비핵화는 ‘행동대 행동’
미국은 비핵화를 하면 밝은 미래를 보장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믿지못할 전력(前歷)이 발목을 잡는다. 리비아 카다피와 이라크 후세인의 말로(末路)를 상기해보라. 미국이 신뢰를 주려면 단계적인 스몰딜을 통하는 것이 합리적인데 전면비핵화라는 빅딜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비핵화는 ‘액션 대 액션(행동 대 행동)’을 전제하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이 북의 전면적인 비핵화를 원한다면 동시에 신뢰할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 대북제재와 무관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미국시민 여행금지 해제는 6.12 싱가포르회담을 계기로 실행했어야 온당하다. 그랬다면 하노이에서 북미간 연락사무소 설치, 민생 분야 제재 해제 등의 합의안이 이어졌을 것이다.
북은 6.12 싱가포르에서 미군유해 송환이라는 큰 선물을 했으며, 풍계리 핵시험장 폭파, 동창리 미사일시험장 폐쇄 등의 선제 조치를 했다. 조건없이 비핵화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종전선언은 말 그대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선언이다. 조약이나 협정처럼 무거운 책임을 수반하지 않는다. 만약 북이 약속을 안지키면 선언은 자동취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일방적인 ‘북핵포기’만을 외쳤고 6.12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대규모 한미군사훈련 중지조차 슬그머니 변형된 형태로 재개했다.
대체 미국은 왜 이러한 태도를 고집할까. 북이 인내를 잃고 테이블을 박차게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 세간에서는 하노이 회담 결렬이후 트럼프가 주도하는 미국의 톱다운(Top Down) 방식이 한계를 보였다고 지적한다. 애당초 톱 다운은 미국의 방식이 아니다. 역사적인 하노이회담 합의를 기념하려고 책상까지 들고 간 트럼프가 결국 포기한 것은 미국이 톱 다운 방식과 어울리지 않는 나라임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특유의 허세와 자화자찬으로 스스로를 과대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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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딥스테이트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와 군산복합체를 정점으로 한 그림자 권력 ‘딥 스테이트(Deep State)와의 힘겨루기다. 비핵화 문제가 안풀리는 것은 트럼프가 생각하는 국익과 딥 스테이트가 생각하는 국익이 다르기때문이다. 트럼프는 북핵 위협을 제거하고 주한미군도 철수하는 현실의 실리를 추구하지만 딥 스테이트는 지난 100년간 미국이 세계화전략을 통해 추구해온 질서를 현상유지하길 원한다.
하노이회담 직후 북은 “미국의 계산법이 이해가 안간다”고 실망감을 표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에 대해선 결코 비난하지 않았다. 트럼프를 압박하고 흔들어대는 딥 스테이트를 겨냥한 것이다.
지난 가을 눈엣가시인 볼턴의 해임을 계기로 북은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가져 올 것을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볼턴은 딥 스테이트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볼턴을 대신하는 또다른 ‘볼턴류’는 언제든지 나올 것이다. 딥 스테이트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장감이 넘치는 한머리땅(한반도)을 대결상태로 묶어둠으로써 막대한 분단이익을 누리고 싶어한다. 북핵과 로켓엔진의 위력에 어쩔 수 없이 북미정상회담의 자리는 허용했지만 판을 뒤엎기 위해 반격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딥 스테이트는 군산복합체만이 아니다. 이들과 동일한 기득권을 누리는 민주당 일부와 미국 정계에 집요한 로비를 펼치는 일본의 극우세력까지 연계된 ‘하이브리드 권력’이다. 트럼프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시도 배후엔 딥스테이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작금의 탄핵사태는 백악관의 이단아(異端兒) 트럼프를 길들이고 차기 대권주자들을 향해 ‘고분고분 하지 않으면 누구든 날릴 수 있다’는 경고장이다.
운전자는 촉진자나 중재자가 아니다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이른바 ‘운전자론’의 초심을 회복해야 한다. ‘중재자’요, ‘촉진자’라는 호칭은 적절치 않다. 운전자는 스스로 갈 곳을 정하고 운행한다. 그는 우리 민족의 절반을 이끌어가는 ‘당사자’이다. 남북이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천명하였듯 모든 것을 민족자주,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나아가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모든 것을 민족의 공동이익 아래 판단하되, 그 이익이 미국에도 중장기적으로 돌아간다고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무위로 돌아간다면 과감하게 우리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남북은 9.19 합의를 계기로 DMZ 지뢰제거와 GP 폭파 등 사실상 종전 단계로 깊숙이 들어왔다. 우리 민족을 다시 갈등과 반목, 대립과 전쟁으로 몰아가려는 어떠한 시도도 단호히 맞서는 결기를 보여야 한다. 한머리땅의 두 당사자가 평화를 하겠다는데 누가 반대하고 훼방을 놓는단 말인가. 문재인정부는 그들을 탄생케 한 촛불시민을 믿고 겨레화합과 남북통일의 그날을 위해 담대하게 앞으로 전진해야 할 것이다.
北을 바로 알면 해답이 보인다
북 사람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있다. “남이(미국이) 우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북을 그저 일인 수령체제의 독재국가, 현대사에 유례없는 삼대세습이나 하는 비정상 국가라고 생각한다면 한치도 앞을 나아가기 힘들다. 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은 존재한다. 그것은 북을 바로 아는 것이다. 북이 어떤 나라인지를 이해한다면 비핵화 문제는 아주 쉽게 풀릴 수 있다.
북 주민들에게 두가지 마음이 있다. 자존심과 자부심이다. 그들에겐 그 혹독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이겨냈다는 자신감이 있다. 고난의 행군은 본래 1930년대 항일무장활동을 하던 시절을 이르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90년대 북한이 겪은 최악의 경제난을 이른다. 90년대 들어 동구블럭이 무너지면서 북녘 경제에 큰 타격을 준 가운데 100년만에 한번 온다는 대홍수가 1995년과 96년 연속으로 강타, 대기근 사태가 발생했다. 90년대 후반까지 최소 30만명 이상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대규모 탈북자가 발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물경 10년에 걸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북 주민들은 어떠한 위협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에 대한 공포도 수십년간의 엄혹한 대북제재속에 완성한 ‘핵무력을 통해 씻어낼 수 있었다. ‘사회주의 핵강국’을 선포한 것이다. 미국이 어떠한 위협을 가해도 언필칭 ‘핵보검’을 보유한 이상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미리 만들어간 4분32초 분량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북의 선택에 따라 경제부흥의 밝은 내일이, 혹은 암담한 미래가 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북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소 유치하기까지 한 이 동영상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반증(反證)이기도 하다.
北도 기능하는 정상국가다
북이 서방에서 생각하듯 단지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를 바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는 ‘사회주의 경제강국’이다. 그들은 서방의 선진 경제모델은 도리어 문제가 많다고 비판한다. 국가적 이념인 주체사상이 기반한 사회주의 경제모델을 추구하는데 칭얼대는 어린애에게 사탕 하나 주듯 ‘내 말 들으면 달콤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동영상을 보여주다니 헛웃음이 나올 일이다.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북한을 개혁 개방의 길로 나서게 하겠다는 생각은 ‘두 발은 대지에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려는’ 북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발상이다. 그들이 원하는 부는 집단과 나를 분리하지 않는 인민 전체의 부이지, 적당한 행운과 시장의 기회가 맞물려 하루아침에 ‘대박신화’를 구축하는 소수의 부가 아니다.
북의 슬로건 중 눈여겨 볼 것은 ‘자력갱생’과 ‘일심단결’이다. 그들은 지난 70여년을 ‘기름 한방울, 전기 한 와트, 나사못 한 개’도 아껴쓰는 자력갱생의 기치로, 또 한편으로는 ‘경애하는 령도자’ 아래 일심단결로 뭉치는 사상적 강철대오를 구축해 왔다. ‘기술혁명’ ‘문화혁명’ ‘사상혁명’의 3대혁명이 수립된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그러한 북을 미국은 한낱 ‘불량국가’요, ‘악의 축’으로 매도하고 있다. 그대로 두면 붕괴할 것이라는 ‘전략적 인내’가 엄청난 오산으로 밝혀졌지만, 북을 오인하는 미국의 몰이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의 전략을 ‘벼랑끝 전술’로 폄하(貶下)하지만 알 사람들은 알고 있다. 북이 세계사에 유례없는 제재와 봉쇄의 엄혹한 상황에 내몰렸을뿐 줄곧 합리적 선택을 해왔다는 것을.
북은 2018년 12월 현재, 168개국과 수교(남은 191개국)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다하고 있다, 체제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는 지극히 합리적 사고로 북을 들여다보라. 난마(亂麻)처럼 얽힌 실타래의 매듭이 거짓말처럼 풀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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