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마약 수사 당국은 국경 수비를 철저히 하고 대규모 단속 성과를 올리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공급에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세관 검사대에서 은닉된 마약을 검사하는 탐지견(사진).
수입가 낮아져... 범죄조직들, 저가 공급으로 사용자 확대 노려
호주의 범죄조직들이 아이스(ice)로 불리는 불법 환각제, 코카인, 엑스터시(ecstasy) 등을 저가에 들여와 공급함으로써 지난 18개월 사이 불법 마약 가격이 크게 떨어졌으며 이로 인해 불법 마약을 사용하는 이들도 더욱 늘어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지난 주 금요일(22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NSW 범죄위원회(NSW Crime Commission) 발표를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불법 마약거래가 호주 범죄조직의 주요 수입원이 되면서 이를 해외에서 저가에 대량으로 들여와 공급함으로써 물량이 넘치는 사태에 이르렀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를 발행하는 페어팩스 미디어(Fairfax Media)는 자체 취재를 통해 호주 범죄조직이 해외로부터 밀수입하는 코카인은 3년 전만 해도 킬로그램당 28만 달러였으나 1년 반 전부터는 이 가격이 24만 달러로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20만 달러 이하, 심지어 18만 달러에 들여오기도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얼음 형태의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인 ‘아이스’는 18개월 전 킬로그램당 22만 달러였으나 지금은 9만5천 달러로 떨어졌으며, 엑스터시는 6만5천 달러에서 3만7천 달러로 내려갔다.
호주 마약 및 알코올 연구센터(National Drug and Alcohol Research Centre)의 조사 결과, 같은 기간 마약 사용자들의 구입가는 큰 변동이 없어 범죄조직의 배만 불려준 것으로 진단됐다.
마약수사 당국은 이 같은 마약가격 폭락이 대량 불법수입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호주 국경지역에서 예전보다 더욱 강화된 마약단속을 시행중이라는 연방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 이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지난 2년 사이 호주 내에서 불법 마약을 제조하기 위한 약물과 화학 원자재가 7.3톤 이상 적발, 압류되었음에도 범죄조직이 길거리에 공급하는 마약 량은 더욱 늘어난 셈이다.
호주 수사 당국이 적발한 최근의 가장 큰 사례는 지난 2014년, 호주로 수입되는 가구 안에서 발견된 2.8톤 규모의 ‘아이스’와 MDMA(methylenedioxy-methamphetamine)로, 길거리 공급가로 15억 달러에 달하는 양이다.
NSW 범죄위원회는 이 같은 대량의 불법수입 적발에도 불구, 호주 국내 마약시장에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판단이다.
범죄위원회는 연례 보고서에서 “분명 이 사건은 호주 역사상 가장 대규모 적발 사례 중 하나였으나, 아이스와 엑스터시의 길거리 가격은 계속해서 하락했으며, 이는 ‘여전히 넘치는 공급량’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NSW 수사 당국은 시드니의 경우 이미 마약공급 시장이 팽배해졌으며, 이에 따라 범죄조직들이 브리즈번(Brisbane), 퍼스(Perth), 멜번(Melbourne)으로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울러 범죄위원회는 범죄조직의 마약 수입은 국외에 거주 중인 호주인이 관여하고 있으며, 그 비중 또한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시드니 거주자로 불법 바이키 갱 조직인 ‘코만체로’(Comanchero) 조직원이었던 하칸 아이크(Hakan Ayik)는 고향인 이스탄불에서 국제적인 마약 밀매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시드니 킹스크로스(Kings Cross)에 거주하던 바소 울리치(Vaso Ulic)는 호주로의 불법 마약수입 혐의로 수배 중이며, 현재는 전 유고슬라비아였던 몬테네그로(Montenegro)를 기반으로 마약밀매를 계속하고 있다.
또 다른 불법 바이키 갱인 ‘헬스 엔젤스’(Hells Angels)의 웨인 슈나이더(Wayne Schneider)는 유럽과 남미 마약공급 조직으로부터 불법 마약을 받아 호주 내 범죄조직에 공급하다가 지난해 12월 살해됐다.
슈나이더는 지난 2014년 수사당국이 적발했던 15억 달러 상당의 ‘아이스’ 밀수입 사건에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NSW 범죄위원회는 “범죄조직은 이 같은 적발로 대규모 물량을 잃는 것에 대해서도 ‘지극히 적은 규모의 간접비’ 정도로 취급하기에 실질적인 제지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범죄위원회는 “오히려 압류 후의 손실을 만회하고 사업 확장을 위해 새로운 방식의 유입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호주 마약 관련법 개혁재단’(Australian Drug Law Reform Foundation) 이사장인 알렉스 워닥(Alex Wodak) 박사는 “호주로 불법 수입되는 마약 규모는 이제 장기적인 문제가 되었으며 고비용이 소요되는 수사당국의 단속 또한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워닥 박사는 “불법 마약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전제한 뒤 수요가 있는 한 공급이 있기 마련이고, 특히 마약에 취하고 싶어하는 젊은 수요층은 여전히 많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요를 잠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약 사용을 법 집행으로 처리하기보다는 개개인의 건강 문제로 인식하도록 함으로서 이를 치료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세영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