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터를 찾아간 사연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올랜도 거주 독자) = 중앙플로리다에 살다보면 텔레비전 일기예보에서 ‘애프터눈 샤워’와 ‘모닝 샤워’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될 것이다.

나는 기상학자가 아니니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다. 다만 나의 짧은 상식으로는 애프터눈 샤워는 우선 오후에 만나는 비이다. 낮에 멕시코만에서 형성된 구름이 동쪽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대서양에서 형성된 구름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등 두 구름이 서로 마주치는 시간이 오후이다.

구름이 마주치는 지점은 주로 I-4 도로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래서 오후에는 I-4 선상에서 강한 비바람을 맞닥뜨릴 수 있다.

모닝 샤워는 이와 반대이다. 밤새 대서양에서 형성된 구름이 동쪽바람에 서서히 육지에 다다르는 시간이 주로 아침 즈음이다. 그때 아침 비가 종종 내리게 되는데 바로 모닝 샤워이다. 모닝 샤워는 대서양 바닷가에서 내륙으로 10마일 이내에 주로 내린다.

일손을 놓은 지 10여년이 넘었으니 비가 와도 비를 맞을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닥친 애프터눈 샤워에 온 몸이 젖어버렸다.

내게서 책을 빌려가신 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시고 몸도 성치 않으시다. 이 분이 나에게 책을 돌려주시려고 건물 처마 밑에서 기다리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차문을 열고 내렸다. 그리고 10초 동안에 내 몸은 흠뻑 젖어버린 것이다. 정말 대단한 애프터눈 샤워였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거리에는 그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처럼 꼭 가야하는 곳이 있었을까.

운전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핸들을 돌려 옛날 취업되어 6년을 일한 공장을 찾아가게 됐다.

이민온 첫해에는 매일같이 애프터눈 샤워가 왔다. 온종일 멀쩡하던 하늘은 늦은 퇴근 시간만 되면 먹구름이 모여들었고 이내 소낙비가 내렸다. 당시에는 지역 기상 상식이 없었으니 하늘이 “너 이놈 미국에 살겠다고 왔으니 고생 좀 해 보라”고 유난히 장난을 부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영어 한마디 하지 못하는 처와 제비새끼 같은 자식들을 오두막집에 남겨 놓고 일하러 다녔던 지라 비가 와도 마음이 다급해서 비를 피할 곳을 찾지 않았다. 때로 지나가는 차가 길 웅덩이에 모인 물을 차서 내 몸에 시커먼 물을 씌워도 나는 빗 속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 빗 속에 걸어가는 사람을 보니 그 때 내 자신이 생각나서 옛 일터로 차 핸들을 꺾었나 보다. 공장에는 옛 고용주도 없고 옛 직장 동료들도 없다. 그러나 현재 일꾼들 중 몇몇은 나를 알고 있다. 이 공장 70년 역사에 유색인종은 내가 유일했다. 뿐만 아니라 맨손으로 이민와서 일 한지 6년만에 개인 공장을 시작한 것도 당시에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고 질시도 하게끔 만들었다.

나는 공장 주인에게 “소낙비를 맞고 나니 옛 생각이 나더라. 내가 오늘 당신 직원들에게 점심값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전에 몇 번 대면이 있었던 늙은 정비공에게 점심을 사먹든 저녁에 술 한 잔 하든 하라며 손에 돈을 쥐어주고 공장을 나섰다.

그 공장을 거쳐간 수많은 정비공 중에 훗날 다시 찾아와 수고한다며 점심값을 주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들도 당시의 고생스러움을 회고하며 옛 일터를 찾아갈 수 있는 여유있는 사람들이었으면 한다.

오늘 내리는 애프터눈 샤워는 어려운 형편때문에 소낙비 속을 뛰곤 했던 사람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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