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언론 및 소수계 “역사적 조치” … 일부 공화 의원들 “주 정부 권한 침해”
(올랜도=코리아위클리) 박윤숙-김명곤 기자 = ‘린치(lynch)’ 행위를 연방 범죄로 다루는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됐다. 지난 26일 미 하원 본회의는 ‘에밋 틸 반린치 법안(Emmett Till Antilynching Act)’을 찬성 410 대 반대 4표, 초당적인 지지로 가결했다. 미국 주요 언론은 일제히 ‘역사적’ 조치로 평가하고 있고, 흑인을 비롯한 소수계 사회와 주요 시민단체들도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린치’란 법에 근거하지 않은 사적인 처벌 행위를 가리킨다. 과거에 주로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했던 행동으로, 1955년 미시시피에서 발생한 ‘에밋 틸’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14살 소년이었던 틸은 백인 여성을 붙잡고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폭행당해 숨졌다. 이 사건은 곧바로 미국 전역에 충격을 주었고, 대대적인 민권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이번에 연방 하원은 ‘에밋 틸’ 사건 이후 65년 만에 틸의 이름이 붙은 반린치 법안을 채택한 것이다. 에밋 틸 사건 현장인 미시시피 출신인 베니 톰슨 의원은 “얼마나 오래 걸렸든 간에, 정의가 실현되도록 한 것은 늦지 않은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 금지 법규가 체계화되기 전인 1882년부터 1968년까지 린치 희생자는 4천 명이 넘었는데, 희생자는 대다수가 흑인이었다. 흑인 인구가 많은 남부 지역 미시시피, 앨라배마, 루이지애나, 조지아, 텍사스주 등지에서 린치가 잇따라 일어났다.
지금까지 린치에 대한 입법 노력이 있었으나 번번히 좌절됐다. 1900년 처음 반린치 법안이 발의된 이래 200차례 가까이 비슷한 법안이 나왔으나, ‘과도한 입법’이라는 반대 주장 때문에 처리되지 못했다. 이번 ‘에밋 틸 법안’도 작년 1월 초에 하원에 발의됐다가 1년여 만에 비로소 채택한 것이다.
반린치 법이 ‘과도한 입법’이라고 봤던 근거는 각 주에서 린치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죄목들이 이미 여러 개 있기 때문이다. 살인이나 폭행죄를 비롯 납치죄 등을 각각 린치 행위에 적용할 수도 있고, 이런 죄목들을 병합 처벌할 수 도 있는데, 린치 행위를 특정해서 ‘연방 범죄’로 만드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 것이다.
이번에 반대한 의원 4명 가운데 공화당의 테드 요호, 루이 고머트, 토머스 매시 의원, 그리고 무소속 저스틴 아마쉬 의원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이번 조치가 각 주의 사법행정에 대한 연방 차원의 지나친 간섭(overreach)이라고 주장한다. 린치를 비롯한 혐오 범죄(hate crime) 행위들은 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받아야 할 사안이긴 하지만 처벌 권한은 각 주에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요호 의원은 플로리다주 출신인 요호 의원은 “플로리다에서 린치 행위는 이미 사형까지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토머스 매시 의원은 “이른바 ‘혐오 범죄’에 대해 가중 처벌을 하게 되면 ‘표현의 자유’ 같은 다른 자율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면서 “미국 헌법에는 연방 범죄로 다룰 수 있는 사항을 소수로 특정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각 주의 재량권으로 남겨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번 법안 통과 적극 환영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표결 통과 즉시 “이번 조치로 린치와 인종 폭력의 흔적을 모두 지울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더 나은 미래로 가는 빛을 비출 것”이라고 말했다.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됐지만 상원에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상원에 3명 뿐인 흑인 의원들이자 발의자들인 카말라 해리스, 코리 부커, 그리고 팀 스캇 의원은 일제히 ‘에밋 틸 반린치 법안’ 하원 통과를 환영하고, 상원의 후속 조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