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 사이, 크리스마스 시즌의 가장 끔찍한 도로교통 사고로 회자되는 호주 배우 제시카 팔크홀트(Jessica Falkholt. 작은 사진)씨와 가족이 변을 당한 사고 현장. 안전 전문가들은 도로변에 로프 벽이라도 설치되어 있었다면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도로안전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 Nine Network 뉴스 캡쳐.
도로교통 안전의 ‘잃어버린 10년’... ‘예방가능’ 사고 사망자, 최소 500명
가장 많은 사고 발생 요인은 ‘과속’, 크리스마스-신년 연휴 전후해 사고 많아
2020년까지 도로에서의 치명적 사고를 30% 줄인다는 연방 및 각 주(State) 정부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시드니모닝헤랄드는 도로안전 전문가이자 외상외과 의사인 존 크로지어(John Crozier) 박사의 “지난 10년 사이 ‘예방 가능한 도로교통 사고’ 사망자만 따로 집계해도 최소 500명에 달한다”는 지적을 전하며 이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이전 6일 사이 NSW 주에서만 6명이 사망하고 432건의 충돌 사고가 발생했으며 도로교통 경찰은 8천 건의 위반 사례를 단속한 바 있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에는 18세의 남성 운전자가 길거리의 나무와 충돌,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이틀 뒤 아침에는 본다이 비치(Bondi Beach) 인근에서 모터바이크 운전자가 사고로 사망,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8일 사이에만 무려 7명이 도로 사고로 숨졌다.
지난 2018년, 크리스마스와 신연 휴일을 전후한 12일 동안 NSW 주 도로교통 사고 사망자는 8명으로 집계된 바 있다.
NSW 경찰청 부청장이자 도로 및 하이웨이 순찰대 책임자이자 마이클 코보이(Michael Corboy)씨는 “모든 이들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시기에 교통사로 사망자가 발생한 것”에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과속은 교통사고 사망 및 중상의 상해를 끼치는 40%의 요인이다. 호주 전역에 걸쳐 과속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1천200명에 달하며, 5만 명 이상이 중상을 입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도로교통 안전 전문가들은 도로 사정이 안 좋은 지역에서 운전자들로 하여금 속도를 줄이도록 하고, 피하기 어려운 실수로부터 운전자 및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2017년 박싱데이(Boxing Day) 공휴일에 유명 배우 제시카 팔크홀트(Jessica Falkholt)씨와 가족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당시, NSW대학교 도로안전 전문가인 라파엘 그제비에타(Raphael Grzebieta) 명예교수는 “도로변에 와이어로프 벽이 설치돼 있었다면 목숨을 잃는 치명적 사고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기하면서 “이 같은 끔찍한 사고로부터 인명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그녀는 부모, 여동생과 함께 시드니 남부 휴양지인 서섹스 인렛(Sussex Inlet) 인근의 프린세스 하이웨이(Princes Highway)를 달리다가 마주 오는 50세 운전자의 차량과 충돌, 부모와 함께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그녀의 여동생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3일 뒤 숨졌다, 또한 50세 운전자 역시 현장에서 사망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날 아침, 나무와 충돌한 사망 사고의 경우 전문가들은 “운전자가 살아남기 어려운 정도의 속도에 의한 충돌로 보인다”고 진단하면서 “도로변에 장벽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중상 또는 사망 위험을 15% 이상 감소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NSW대학교 제이크 올리비에(Jake Olivier)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보행자의 경우 시속 28km로 달리는 차량과 충돌했을 경우 사망률은 5%이며 차량 속도가 높을수록 목숨을 잃을 위험 비율도 높아진다. 가령 36km/h에서는 10%로, 57km/h에서는 50%, 78km/h의 차량에 부딪히는 경우 목숨을 잃을 확률은 90%에 달한다. 올리비에 교수는 “30km/h 정도의 자동차와 부딪히는 것은 집 지붕에서 떨어졌을 때의 충격과 같은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시드니 지역 M4 상에서의 충돌사고 현장. 지난 10년 사이 전체 도로교통 사고 사망자 가운데 ‘예방 가능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최소 500명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사진: Flickr / sv1ambo
‘Australasian College of Road Safety’의 마틴 스몰(Martin Small) 대표는 “도로교통 안전에 관한 한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면서 “정부의 도로안전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몰 대표는 “도로 상에서의 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도로 조건 및 그에 맞는 속도 제한’이 일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또한 “속도제한 장치, 첨단 비상제동 시스템 등의 새로운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럽 각국은 2022년 5월부터 새로 출시되는 차량에 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신기술 제품 장착을 의무화 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는 인공지능의 속도제한 보조 장치, 알코올 섭취를 감지해 차량 작동을 차단하는 장치, 운전자 졸음 및 경고 표시 장치, 운전 집중을 촉구하는 경고 장치, 비상 정지 표시, 후진시의 위험요소 감지 장치, 차량운행을 기록하는 블랙박스 등이 포함되어 있다.
2년 전 존 크로지어 박사와 애들레이드대학교 자동차안전연구센터(Centre for Automotive Safety Research)의 제레미 울리(Jeremy Woolley) 교수는 ‘2011-20 도로안전 계획에 관한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연방 정부에 도로안전 예산으로 30억 달러를 지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연방 정부는 이를 미뤄 왔다.
지난 연말 크로지어 박사는 “도로안전 장치를 위한 30억 달러의 추가 예산이 배정되지 않을 경우, 향후 10년 간 도로교통 사망 및 중상으로 인해 정부가 지출하는 비용은 그 10배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로지어 박사의 검토 자료에 따르면 연방 정부의 도로안전 계획은 도로교통 사고 사망자 비율을 15-20% 감소시키는 데 그쳤다. 이는 전체 사고 사망자 수를 감안, 아무리 적게 잡아도 예방 가능한 사망자 수가 500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다.
연방과 각 주(State),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교통 및 인프라협의회(Transport and Infrastructure Council)는 도로안전 전문가들에게 보낸 답변에서 “정부가 30억 달러의 기금을 제공한다는 데 동의했고 그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크로지어 박사 및 울리 교수가 보고서에서 제시한 12가지 권고 사항 중 대부분이 ‘원칙적으로 동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두 가지만 완료된 상태이다. 이는 도로안전 사무국 설치와 정부 장관을 책임자로 임명하는 권고안이었다.
현재 연방 및 주 정부는 2030년까지 모든 하이웨이 상에서의 사고 사망자 수를 ‘0’(제로)으로, 또한 2050년까지 각 주 도시 상업지구(CBD)에서 치명적 사고를 없애는 ‘vision zero target’ 설정에 합의한 상태이다.
하지만 도로교통 안전 전문가들은 “사망자는 물론 심각한 부상을 줄이기 위해 보다 야심찬 계획이 필요하다”는 데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 크리스마스 시즌, NSW 도로교통 사망자 수
(매년 12월23일부터 신년 첫날까지 12일간. 연도 : 사망자 수)
-2008 : 8명
-2009 : 12명
-2010 : 8명
-2011 : 18명
-2012 : 16명
-2013 : 8명
-2014 : 7명
-2015 : 12명
-2016 : 12명
-2017 : 21명
-2018 : 8명
(Source: Department of Infrastructure, Transport, Cities and Regional Development)
김지환 객원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