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반전.반핵' 운동 피시오토씨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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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셉션 피시오토씨의 사망을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 ⓒ <워싱턴 포스트> 갈무리
 

(워싱턴=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35년 동안 백악관 앞에서 텐트를 치고 반전.반핵 시위를 펼쳐왔던 콘셉션 피시오토(Concepcion Picciotto)씨가 지난 25일(현지 시각) 워싱턴의 한 비영리 단체 구호시설에서 사망했다. 향년 81세.

피시오토씨는 지난 1981년부터 35년 동안 미국 백악관 앞에서 반전.반핵 텐트 시위를 벌여왔다. 특히 지난 2004년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화씨9.11’에 등장한 이후 그녀의 시위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스페인 이민자 출신으로 1960년까지 주미 스페인대사관에서 일한 피시오토씨는 1979년 남편과 사별, 2년 후인 1981년부터 본격적인 반핵시위를 시작했다. 피시오토씨는 끊임없이 테러 위협에 시달렸고, 지난 2012년 교통사고를 당해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최근까지 젊은 평화운동가들과 함께 시위를 벌여왔었다.

피시오토씨는 지난 2002년 12월 24일에 이어 2003년 12월 31일 기자와 두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2002년 인터뷰 당시 그녀는 백악관을 가리키며 “저 안에 악마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왜 그들을 악마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저들은 히로시마에서 핵으로 수많은 일본인들을 죽였고, 폭탄으로 베트남인들을 죽였고, 지금은 이라크 사람들을 죽이고 북한 사람들도 죽이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텐트 앞쪽에 '한국은 곧 통일이 됩니다'라고 적은 피켓과, 영어로 'US Troops Out of Korea' (미군은 한국에서 철수하라)라고 적은 피켓을, 뒤쪽에는 "Live by the Bomb...Die by the Bomb. Civilized people do not Nuke Fellow Humans."(폭탄으로 살면 폭탄으로 죽는다. 문명인들은 동료 인간들을 향해 핵무기를 쓰지 않는다.)라고 쓴 피켓을 세워두고 있었다.

2003년 12월 31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머리에 방어용 헬멧을 쓰고 있었다. 지나가던 해군들에게 구타를 당해 코와 뺨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당시에도 그녀는 백악관을 가리키면서 “저 안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했고, 자신과 같은 기독교인 부시 대통령을 가리켜 “가짜”라면서 “하나님이 핵무기로 사람들을 이렇게 죽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핵무기를 쓰는 사람은 핵무기로 죽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피시오토씨를 추모하는 뜻에서 지난 2003년 12월 31일에 가진 인터뷰 내용을 다시 싣는다.

【콘셉션 피시오토 할머니를 추모합니다】
“저 안에 악마가 살고 있다”던 백악관앞 움막집 할머니


(워싱턴=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1년 전 12월 24일 밤 기자는 백악관 앞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한 기인을 만난 일이 있다. 스페인 태생의 콘셉션 피시오토(60) 할머니는 백악관 앞에 움막을 지어 놓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안에서 23년째 먹고 자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녀는 백악관을 가리키며 "저 안에 악마(evil)가 살고 있다"는 독설을 서슴지 않고 되풀이 했다.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 창문을 열면 바로 내다보일 거리에서 "네가 악마다! 네가 먼저 대량 살상무기•핵무기 포기하라!"고 외쳐 댄다는 것은 대단한 담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선악의 판단 기준이 누군가에 의해 독점 당한 채 박수부대가 되지 않으면 살아 남기 힘든 요즘 세상에 그녀는 단연코 '반골'이었다.

미국 전역에 오렌지 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12월 28일 기자는 워싱턴으로 향했다. 플로리다에서 워싱턴D.C로 가는 15시간여의 자동차 운전 중에도 그녀의 안전이 못내 궁금했다.

1년 전 그녀를 만난 후로 미국이 진두 지휘하는 역사 진행의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져 버렸다. 설마 했던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고, 후세인이 잡혔고, 리비아는 핵 포기 선언을 했다. 내리막길을 달리던 부시의 인기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백악관 앞으로 이어지는 66번 고속도로를 타고 두려움과 함께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백악관 앞 라파이엣 공원에 도착한 것은 28일 밤 8시경. 도중에 "수상한 행동을 보면 신고하라"는 고속도로 전광판 문구를 여러 번 지나쳤다. D.C 곳곳에 경찰차가 서 있었고, 골목 골목 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정복을 입은 경찰들과 요원으로 보이는 사복들은 무전기를 귀에 댄 채 어디론가 통신을 계속하고 있었다. 백악관으로 들어가는 길목 양쪽에는 컨테이너가 설치되어 일단의 병력이 머물고 있는 듯했고, 자전거를 타고 무장한 경찰들이 주변을 돌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백악관 하늘 주위를 중무장한 듯한 비행기가 선회 비행을 하고 있었다. 으스스했다.

지난 5년간 세 차례나 비슷한 기간에 이 곳을 방문했던 기자의 눈으로 보기에 예년에 비해 방문객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백악관 뒷편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라야 200여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였고, 백악관 정문 앞에서는 십여명의 방문객들이 경찰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기념 사진을 찍고는 총총히 사라지고 있었다.

기자는 백악관 주변 도로가에 쉽게 주차에 성공하고 백악관 정문 앞 움막집을 향해 라파이엣 공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며 먼발치로 살펴보니 1년 전 그 움막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은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움막 앞으로 다가선 기자를 맞아 준 것은 콘셉션 피시오토 할머니가 아니라 웬 늙수그레하고 초췌한 모습의 백인 남자였다. 가슴이 덜컹했다.

- 아니, 여기 콘셉션 할머니는 어디갔나?
"(경계어린 눈빛으로) 왜 그녀를 찾나. 그녀는 지금 여기 없다."

- 지난해 그녀를 여기서 만났다. 보고싶어서 왔다.
"그녀는 방금 전 우리 집으로 샤워하러 갔다. 두 시간쯤 있으면 돌아올 것이다."

- 당신은 누구인가.
"나의 이름은 에이시 기어하트(Acie Gearhart), 그녀의 친구다."

-'동업자'인가?

"동업자는 아니다 1983년 가족과 이곳을 방문했다가 그녀의 친구가 되었다."

- 왜, 어떻게 친구가 되었나.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옆 베니어 게시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로 이 해골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하는 일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친구가 되기로 했고, 종종 그녀 대신 자리를 지켜 주고 있다."

올해 67세라는 에이시 기어하트는 경계하는 표정으로 자신은 반전-반핵운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고 그녀와 그저 친구로 지낸다는 말을 애써 강조했다. 그가 1983년 콘셉션 할머니의 움막을 방문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는 사진은 1945년 히로시마 원폭 사망자들의 해골 모음 사진이었다.

다시 백악관 앞 움막을 찾은 것은 12월 31일 오전 10시경이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그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오랜만이다. 나를 기억하는가?
"기억한다. 그래, 코리안 코리안! 왜 다시 왔는가."

- 1년 동안 별 일 없었는가?
"아니, 별 일 있었다. (기자의 손을 잡아 끌어 자신의 머리로 당기며) 여기 좀 만져 봐라."

- 아니 왜 가발을 썼는가. 머리는 왜 이리 딱딱하고!
"(얼굴을 기자에게 바짝 들여 보이며) 내 코와 뺨의 상처가 안보이는가. 머리도 온통 피멍 투성이다. 그래서 헬멧을 머리에 쓰고 그 위에 가발을 입힌 것이다."

- 아니, 왜 이렇게 됐는가.
"해군들한테 맞아서 그렇다. 여러 번 맞았다."

- 신고도 안했나?
"신고했다. 후다닥 때리고 도망간 해군을 어떻게 찾아 내겠나."

- 무섭지도 않나. 언제까지 이럴 작정인가.
"무섭긴. 이 일을 하다 6개월간 감옥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하나님이 나를 도와준다."

- 아직도 저 건물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손가락을 백악관 쪽으로 향하며) 저들은 악마다."

- 당신도 기독교인이고 부시도 기독교인인데 그를 악마라니.
"(백악관을 가리키며) 저들은 가짜다. (게시판 사진을 가리키며) 여기를 봐라. 하나님이 핵무기로 사람들을 이렇게 죽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핵무기를 쓰는 사람은 핵무기로 죽을 것이다."

재차 다음 질문을 하려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30여m 앞쪽에 있던 경찰이 경찰차에 몸을 기댄 채 계속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고, 이번에도 어디론가 통신을 계속하고 있었다. 갑자기 오른쪽 머리 등성이가 근질거렸고, 어디선가 주먹과 곤봉이 날아들 것만 같았다.

기자는 짐짓 움막을 뒤로 하고 주차장 쪽으로 몸을 돌려 여행객 행보로 태연하게 라파이엣 공원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돌아 봤더니 콘셉션 할머니가 움막 뒤편으로 돌아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들고 나온 비닐봉지에서 먹이를 한줌씩 꺼내 모여든 비둘기 때에게 흩뿌려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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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3년 12월31일 오전 10시, 백악관이 바라다 보이는 움막 앞에서 몰려든 비둘기 떼에 먹이를 주고 있는 피시오토 할머니. 자주 얻어 맞는 바람에 아예 머리에 헬멧을 쓰고 있다.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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