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기업 및 실직자 지원 방안을 발표한 모리슨 총리가 국제학생들에 대해서는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며 “자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 시민 및 영주 거주자 지원에 초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3일(금) 내각 회의 후 미디어 브리핑을 갖는 모리슨 총리. 사진 : ABC 뉴스 화면 캡쳐
모리슨 총리, 자국민 우선... “유학생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국제교육 명성에 영향 우려... 학계-주 정부에서는 유학생 지원 모색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사태가 주는 어려움은 특정 계층이나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특히 곤란에 처한 이들이 유학생들일 것이다. 급격한 경기 위축에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폐쇄 조치들이 시행되면서 이들 또한 현지 고용자들과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JobSeeker’, 또는 ‘JobKeeper 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이런 이들에게 또 한 번 타격을 주는 언급이 나왔다. 지난 주 금요일(3일) 호주 언론들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더욱 악화됨에 따라 모리슨(Scott Morrison) 총리가 방문비자 소지자 및 유학생들에게 자국으로 돌아가 달라고 한 것이다.
모리슨 총리는 이날 내각 회의 후 “현재 여러 카테고리의 비자를 소지한 채 호주에 체류 중인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없다”며 “자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 시점의 어려움을 피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가진 경제적 지원의 초점을 시민 및 영주 거주자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이유이다.
다만 총리는 현 사태에 필요한 기술을 가진 방문자들은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 분야 종사자이거나 위기에 처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중요 기술을 가진 여행자 및 유학생에게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현재 호주에는 약 50만 명의 유학생이 체류하고 있으며,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이들 대부분은 이번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상태이다. 이들은 현지 고용자들과 달리 정부의 재정 안전망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북부 호주 다윈(Darwin, Northern Territory)의 민들비치 카지노(Mindil Beach Casino)에서 바텐더 일을 병행하는 방글라데시 유학생 선데이 미슈(Sunday Mishu)씨도 대다수 해외 유학생과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잃었다.
현재 찰스 다윈대학교(Charles Darwin University. CDU)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는 “카지노 측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을 때는 스트레스가 컸다”면서 “다행히 학업을 계속할 만큼 저축을 해 두었다”고 덧붙였다.
미슈씨는 이어 “유학생들이 이번 바이러스 사태로 상당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총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미 학비를 납부한 상황이고, 돌아간다고 해서 대학 측이 학비를 돌려주는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호주 시민 및 영주 거주자를 우선 지원한다는 모리슨 총리의 발언은 충분히 이해한다”며 “그러나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학생들을 귀국시키는 것은, 국제교육 목적지로써의 호주의 명성에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유학생 단체,
성명 통해 강하게 반발
모리슨 총리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유학생 단체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호주 국제학생협의회’(Council of International Students Australia. CISA)는 “총리의 발언으로 유학생들은 희망도 없이 남겨지게 됐다”고 비난했다.
CISA는 성명을 통해 “많은 국가들이 강제 록다운(lockdown)을 시행하는 상황에서 유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매일 매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는 유학생들이 처한 현실, 교육, 이들의 비자 연장 검토를 잊고 있다”고 밝혔다.
CISA는 또 “COVID-19 상황이 끝나면 호주는 다시 전 세계 학생을 대상으로 호주 국제교육 마케팅을 시작할 것”이라며 “유학생들도 호주 경제에 기여하는 납세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공정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학생 대우에 실망스럽다”고 밝힌 CISA는 “재정 문제를 넘어 무시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방글라데시 유학생으로 다윈의 찰스 다윈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선데이 미슈(Sunday Mishu. 사진)씨. 그는 모리슨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이 향후 호주의 국제학생 유치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대학들,
유학생 지원방안 강구
현재 유학생들 가운데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어렵고 호주에서 계속 학업을 이어가는 것 또한 곤경에 처한 이들이 많다. 이들의 이 같은 상황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fallen between the cracks)는 북부 호주(NT) 마이클 거너(Michael Gunner) 수석 장관(Chief Minister)의 언급을 통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수석 장관은 “이들은 현재 직업을 구할 수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면서 “항공기가 멈춰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며 본국에 있는 이들의 가족들 또한 재정적 곤경에 처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NT 정부는 유학생을 위한 방안 마련을 시작했다.
북부 호주(NT)로의 해외 유학생 유치를 담당하는 NT 준주 정부의 ‘Study NT’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영향을 받은 유학생들이 ‘Territory Jobs Hub’를 통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수석 장관실 대변인은 “구직 지원은 물론 숙소나 식료품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도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찰스 다윈대학교도 학생을 돕기 위한 ‘COVID-19 Student Assistance Grant’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는 재정적 곤경에 처한 동 대학교 현지 학생 및 유학생에게 최대 2천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CDU의 사이먼 매독스(Simon Maddocks) 부총장은 “이들은 COVID-19로 실직한 100만 명의 호주인에 포함되어 있다”며 “우리 대학의 유학생들 또한 일자리가 없어져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연방 사회복지부 대변인은 “재정적 어려움이 직면한 임시비자 소지자들(유학생 포함)을 대상으로 한 복지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유학생의 경우 한 주에 20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규정이 있지만 슈퍼마켓이나 고령자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경우 이 규정이 다소 완화됐다고 덧붙였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