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보다 아름다운
마지막 사랑
‘늙은 부부 이야기’
저무는 인생인 줄 알았던 60대 황혼에 찾아온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5일(금)부터 3일간 어빙아트센터 두프리 소극장(Dupree Hall)에서 펼쳐진다.
최종원·김미희 주연의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는 5일(금) 오후 8시 30분 공연을 시작으로 6일(토) 오후 4시 30분과 7시 30분, 7일(일) 오후 3시와 오후 6시 공연이 열린다.
호흡 척척, 모든 준비는 끝났다
공연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지난 1일(월). 소박한 툇마루가 한없이 정겨운 무대 위에 최종원(박동만 역) 씨와 김미희(이점순 역) 씨가 한 이불을 덮고 다정스레 누워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침을 꼴깍이게 만드는 묘한 분위기. 그러나 애틋한 공기는 모기 한마리 때문에 삽시간에 날아갔다.
벌떡 일어나며 자신의 팔을 물어뜯은 모기에게 한바탕 쏟아내는 욕지거리. 그런 점순에게 질척거리며 다가서는 동만. 동네에서도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 점순이지만, 동만의 능글스러운 앞에선 맥을 못춘다.
두 명의 배우가 1시간이 넘는 연극무대를 흐트러짐없이 탄탄하게 이끌고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주연배우간의 연기 내공과 호흡이 중요한 터.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는 달랐다. 이번 연극을 위해 지난달 4일(월) 달라스에 도착해 한달동안 여주인공 김미희 씨와 호흡을 맞춰온 최종원 씨는 실제 무대가 아닌 연습무대에서 조차 영락없는 동두천 바람둥이 박동만이었다.
능청스러운 웃음으로 점순을 쥐락펴락하는 장면이나 기름이 뚝뚝 떨어질 듯한 느끼함을 쏟아내는 장면에서는 얼굴 근육 하나 하나까지 대사를 전달하는 듯해 닭살이 돋을 지경이다. 점순이와의 시간을 회상하며 편지를 읽어 내려갈 때는 가슴 저릿한 애잔함이 연습실을 감싼다.
최종원 씨는 부인과 사별한 후 20년을 혼자 살아오다 인생 막바지에 이점순을 사랑하게 되는 63세 박동만 노인을 연기한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김미희 씨의 연기도 천연덕스럽다.
대한민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대선배와의 연기 호흡이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김미희 씨에게선 그런 내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퉁명스럽게 온갖 볼멘소리들을 토해내지만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마음 여린 욕쟁이 이점순 역에 오롯이 푹 빠져있다.
극중 인물인 이점순은 박동만보다 2살 연상인 65세의 인물로, 남편과 사별한 지 30년이 되는 노인이다.
음악, 무대, 각색 등 자신있는 무대
달라스 연극협회 안민국 회장이 연출을 맡아 미 전역의 무대에 올리는 ‘늙은 부부 이야기’는 무엇보다 무대장치에서부터 음악까지 달라스 한인들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올려지는 의미있는 무대다.
현재 연극 ‘늙은부부이야기’는 배우들의 연기력 뿐 아니라 무대 연출과 음악부분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출격만을 남겨두고 있다.
총괄기획을 맡고 있는 안민국 감독은 “일반적인 연극무대와는 도입부터 다르다. 시작부터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특별한 연출’이 숨어있고, 극이 진행되는 중에도 여러차례 ‘빵’터지는 대목들을 장치해놨다”며 관객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가슴을 울리는 명품 연극답게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음악작업을 맡고 있는 이태용 씨는 “편곡과 선곡을 할 때 튀지 않으면서 극의 전개를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한다.
연극에 삽입된 곡은 총 11곡. 60대 중반인 동만과 점순이 20대 시절에 들었을 만한 노래들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무대 위의 감성을 최고치로 끌어 올린다.
60년대 히트곡에서부터 최근 유행곡까지 연극 내용에 적절하게 삽입된 음악은 이번 연극을 맛깔스럽게 즐기는 또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게 분명하다.
무대 세트 제작도 마무리된 상태다.
JS 건축의 정성일 대표가 제작한 무대장치는 휴스턴-시애틀로 이어지는 타도시 공연에서도 사용될 수 있도록 탈착식으로 제작됐다.
주무대인 집과 평상, 미닫이 문 등이 모두 조립식으로 제작됐으며, 집안 수돗가는 틀면 물이 나올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디테일을 살렸다.
출연진들은 모든 무대장치를 공연장소로 직접 운송할 예정이다. 특히 휴스턴 공연이 끝난 후 시애틀로 이동할 때는 안민국 감독과 최종원 씨가 트럭을 렌탈, 직접 운전하며 시애틀로 이동할 예정이다.
노년의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
달라스 연극인들의 뜨거운 열정과 천상 연기자인 최종원 씨의 연극사랑이 하나로 섞여 무대에 오르게 될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는 각각의 짝과 사별한 두 남녀 노인이 황혼 무렵에 집주인과 셋방 노인으로 만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애틋한 정이 들어 함께 살게 되면서 겪는 에피소드다.
젊은이들의 첫사랑이 주는 풋풋함은 없지만 ‘죽음’의 언저리에서 시작된 사랑은 더욱 애달프고 가슴 시리다.
그렇다고 인생의 황혼에 찾아온 노인들의 애틋한 사랑이 마냥 부드러운 것만은 아니다. 서로의 인생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티격태격, 말끝마다 눈길마다 소소한 다툼이 인다.
도무지 정이라고는 붙여지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실강이는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두 노인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과 새로운 사랑의 의미를 전한다.
무대 감성이 가장 최고조인 장면은 점순이 동만의 등에 업혀 세상과 하직하는 순간이다.
노년의 사랑을 만끽하는 이들에게 느닷없이 다가온 ‘죽음’이라는 이별이건만, 동만과 점순이 이별을 준비하는 모습은 잔혹하리만치 아름답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준비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그간 살아온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 마저 달래기에 충분하다.
“기존에 무대에 올려졌던 ‘늙은 부부이야기’와 사뭇 다른 해석이 더해진 부분이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다. 울면서 보낼 수밖에 없는 죽음의 이별을 웃으면서 보내는 접근법으로 각색해 더 큰 감동과 가슴저린 슬픔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안민국 감독의 설명이다.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가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으며 한국에서 롱런하고 있는 데는 ‘공감’이라는 정서가 깔려있다.
마지막 사랑을 그려내는 무대는 황혼기의 ‘부모님’ 모습과, 닮고 싶은 먼 미래의 ‘나’의 모습, 그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돼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연극은 2월 5일(금)부터 7일(일)까지 3일간 다섯차례에 걸쳐 공연되며, 입장권은 △북나라 △장리나 건강마을 △H마트 시세이도에서 구입 가능하다. 티켓값은 20달러.
[뉴스넷] 최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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