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TV 방송 진행자 및 리포터들의 문화적 배경을 조사한 결과 영국 및 아일랜드계인 ‘앵글로-셀틱’ 출신이 전체의 7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특정 민족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심지어 이사회, 임원진도 백인 위주였다. 사진은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 진행 현장. 사진 : Pikist
‘Media Diversity Australia’ 조사... 호주 원주민 출신은 6% 불과
대부분 방송사 임원-이사회-간부급 관리직, 영국계 백인이 차지
호주 공중파 및 케이블 TV의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를 대상으로 한 인종별 구분을 조사한 결과 ‘앵글로-셀틱’(Anglo-Celtic)계 백인들이 압도적 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각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리포트를 맡은 이들의 76%가 영국 및 아일랜드계 백인으로, 다문화 국가임을 감안할 때 특정 민족 출신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호주는 전 세계 300여 민족이 어우러진 대표적 이민국가로, 앵글로 및 셀틱계 인구 비율은 전체의 4분이 1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여론을 형성, 주도하는 TV 뉴스의 진행자 가운데 이들 외 유럽계 및 호주 원주민 출신은 6%, 비유럽계 뉴스 진행자 또는 리포터는 19%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비영리 미디어 관련기구 ‘Media Diversity Australia’(MDA)가 확인한 것으로, MDA가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 관계자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77%가 ‘비앵글로-셀틱 출신이라는 점이 본인의 경력을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MDA는 “호주 TV 뉴스 프로그램 부문 담당자들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최초의 심층 연구”라며 “방송사들이 다양한 출신 배경의 대표성을 높이기까지는 ‘아직도 먼 길’”이라고 결론 내렸다.
호주 원주민 문제를 주로 다루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마들린 헤이먼-레버(Madeline Hayman-Reber)씨. 원주민 ‘고메로이’(Gomeroi) 부족 후손인 그녀는 방송사에 비백인계, 특히 원주민 출신 담당자가 적은 문제를 지적했다. 사진 : Madeline Hayman-Reber 제공
마들린 헤이먼-레버(Madeline Hayman-Reber)씨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NITV News 프로그램을 맡았던 호주 원주민 ‘고메로이’(Gomeroi) 부족 출신 언론인이다.
그녀는 호주 공영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MDA의 이번 조사와 관련, “대다수 방송사들이 원주민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우리(원주민) 문제는 ‘too hard basket’(해야 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피해야 하는 항목의 범주)이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MDA는 이번 조사 보고서에서 “(호주 공영인) ABC 및 SBS의 방송 헌장은 문화적 다양성을 측정하고 보고하도록 명시하고 있는 반면 이외 민간 네트워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어 컨설팅 사 ‘McKinsey’의 연구를 인용, “문화적 다양성 제고는 조직의 최고 경영진 차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며 “다양성을 우선하는 기업이 수익성도 더 높다”고 강조했다.
MDA는 또한 “미국이나 영국의 미디어와 비교했을 때 호주 언론은 다양성의 표현 및 경영진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조직적 대응 모두에서 뒤쳐져 있다”고 지적했다.
ABC 방송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시드니대학교 경영대학원 기업조직 전문가 디미트리아 그로츠시스(Dimitria Groutsis) 박사. 그녀는 ‘Media Diversity Australia’의 이번 조사 결과에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진 : ABC 방송 뉴스 화면 캡쳐
영국 TV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성 개선에 주력하는 ‘Creative Diversity Network UK’의 데보라 윌리엄스(Deborah Williams) CEO는 지난해 ABC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에서 “호주 TV의 인적(담당자 출신별) 다양성은 20년 전의 영국과 같은 수준”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방송사 고위 관리도 ‘백인 남성’ 위주
영국-아일랜드계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는 부문은 뉴스 프로그램뿐이 아니다. MDA 보고서에 따르면 공영 ABC 방송의 이사회는 67%가 여성이지만 이들 또한 대부분이 ‘앵글로-셀틱’계이다. 이는 ‘채널 7’, ‘채널 9’ 등 대부분 방송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방송사 이사회 가운데 성별-문화적 다양성이 높은 곳은 SBS 방송으로, 호주 전체 공중파 TV 방송 가운데 유일하게 호주 원주민 출신 보드멤버(Board Mamber)를 두고 있다.
헤이먼-레버씨는 “호주의 미디어 조직은 긍정적-포용적이며 문화 측면에서 안전한 일터를 조성하기 위해 더 많은 원주민, 특히 여성을 이사회 또 편집 간부직에 배치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우리 산업 전반에 걸쳐 그런 지위에 단 한 명의 원주민만이 있다는 것(SBS 방송 이사회)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보고서와 관련, ABC 방송은 성명을 통해 “공영방송사로서 ABC 방송은 콘텐츠와 서비스, 기타 부서 인력에서 모든 호주인을 대표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ABC는 이어 “우리 방송사가 다른 미디어와 비교해 높은 문화적 다양성을 보이고는 있지만 우리가 설정한 목표(방송 헌장에 명시된)에 부응하기 위해 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각 커뮤니티를 더욱 잘 반영하기 위해 뉴스팀 인적 구성은 물론 콘텐츠 다양화 제고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호주 TV 방송사 인적 구성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영국 ‘Creative Diversity Network UK’의 데보라 윌리엄스(Deborah Williams. 사진) CEO는 지난해 ABC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에서 “호주 TV의 인적 다양성(문화적 배경)은 20년 전의 영국과 같은 수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진 : Creative Diversity Network UK
ABC 방송은 2022년 8월까지 비영국계 출신의 콘텐츠 제작 담당자 및 임원 비율을 15%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설정, 추진하고 있다. 이런 계획에는 또한 전체 직원 중 원주민 출신 3.4%, 장애인 비율 8%, 여성 임원을 절반 수준으로 높인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멜번(Melbourne) 소재 RMIT대학교(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의 자낙 로저스(Janak Rogers) 방송 저널리즘 강사는 “방송 뉴스의 편집 결정과 보도, 그리고 한 국가 안에 있는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분명하게 전달되기까지는 (방송사 내부에) 개선의 여지가 많다”면서 “이는 지금까지 잘 수행되지 않는 것이며 또 영국계 백인이 미디어를 지배하는 동안은 결코 잘 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김지환 기자 kevinscabin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