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립 호주공군(Royal Australian Air Force. RAAF) 사진병으로 복무했던 버트 윈터(Bert Winter)씨가 태평양전쟁 당시 뉴기니(New Guinea) 주둔 일본군의 항복 순간을 담은 전쟁 이미지를 포함, 30만여 장의 사진자료를 고향인 타스마니아 버니(Burnie, Tasmania)의 지역 박물관에 기증했다. 사진은 1945년 9월 13일, 북부호주 웨와크(Wewak, Northern Territory) 인근의 비행장에서 가진 뉴기니 일본군의 항복 순간. 뉴기니에 주둔하던 일본 제18군 사령관이었던 하타조 아다치(Hatazo Adachi)가 항복의 의미로 차고 있던 검을 호주 육군 호레이스 로버트슨(Horace Robertson) 소장에게 넘기고 있다. 사진 : Burnie Regional Museum / Bert Winter Collection
왕립공군에 복무했던 버트 윈터씨, 타스마니아 지역박물관에 관련 사진 기증
‘억울한 표정’ 담긴 일본군 장군 하타오 아다시의 항복 순간 등 1천200여 장
1945년 9월 13일,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지역 전장이었던 뉴기니(New Guinea) 주둔 일본군의 항복 순간은 어떠했을까.
왕립 호주공군(Royal Australian Air Force. RAAF) 사진병으로 복무했던 버트 윈터(Bert Winter)씨가 포착한 당시의 모습에는 일본군 고위 장교의 복잡한 심경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뉴기니에서 일본군이 마지막으로 항복을 선언한 이날(1945년 9월 13일), RAAF 소속의 사진병 버트 윈터는 1만3천여 명의 호주군 병사들과 함께 북부호주 다윈(Darwin, Northern Territory) 남쪽 웨와크(Wewak) 인근의 비행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뉴기니에 주둔하던 일본군의 항복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그는 호주 장교들과 함께 군용차를 타고 비행장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로 이동했고, 일본 제국군 장군 하타조 아다치(Hatazo Adachi)의 모습을 촬영했다.
일본군 사령관 하타조 아다치(Hatazo Adachi)가 항복의 뜻으로 검을 건네기 위해 호주 육군 군용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아다치의 표정에는 수치와 분함, 체념의 모습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사진 : Burnie Regional Museum / Bert Winter Collection
호주 육군 호레이스 로버트슨(Horace Robertson) 소장과 병사들은 이날 하타조에게 그가 차고 있던 검(sword)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일본 제국군 제18군 사령관이었던 하타조는 뉴기니 전투에서 10만 명의 병사를 잃은 상태였다.
윈터씨가 포착한 사진 속 하타조의 얼굴은 패배에 따른 분함과 고통, 체념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당시의 모습과 함께 뉴기니에서 호주군이 치렀던 전투 장면 등을 포함, 윈터씨는 소장하고 있던 30만여 장의 사진을 고향인 타스미니아 버니(Burnie, Tasmania)의 지역박물관에 기증했다.
타스마니아 북부의 작은 도시 버니의 ‘Burnie Regional Museum’에서 자원봉사로 근무하는 줄리 해리스(Julie Harris)씨는 “아주 훌륭한 사진들”이라고 말했다.
‘Burnie Regional Museum’에서 자원봉사로 근무하는 줄리 해리스(Julie Harris)씨가 버트 윈터(Bert Winter)씨로부터 기증받은 이미지 가운데 태평양전쟁을 담은 사진을 가려내고 있다. 사진 : ABC 방송
뉴기니 전투 장면 담은 1천200여 장 포함
버트 윈터씨는 1930년대 ‘Emu Bay Railway Company’(1897년 세워진 타스마니아 철도회사)에 다니다 퇴직을 당하고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향인 버니로 돌아와 아버지가 하고 있던 가족사진 일을 시작했다.
점차 사진촬영에 매력을 느낀 그는 항공촬영 기술을 배우고자 RAAF에서 훈련을 받기도 했다.
‘Burnie Regional Museum’의 해리스씨는 “버니의 겨울 시즌에 촬영된 버니 사람들의 가족사진은 우리 지역 역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며 “박물관에 기증된 30만여 장의 사진 가운데 특히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한 가족사진이 많다”고 말했다.
왕립 호주공군으로 뉴기니에서 복무하던 당시의 버트 윈터(Bert Winter. 가운데)씨.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오른 뉴기니 산 정상에서 촬영된 것이다. 사진 : Burnie Regional Museum / Bert Winter Collection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뉴기니에서 호주 공군으로 복무하던 버트 윈터씨는 호주군의 중요한 시건, 인물을 사진으로 남겼다. 사진은 뉴기니의 호주군을 위해 위문공연차 방문한 영국 배우이자 코미디언 그레이시 필즈(Gracie Fields)씨. 사진 : Burnie Regional Museum / Bert Winter Collection
그녀는 이어 “제 부친이 2차 세계대전 후 뉴기니에서 토목기사로 일했기에 그곳을 여행하고 싶었다”며 “윈터씨의 사진은 뉴기니의 옛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윈터씨의 사진에 감명을 받은 해리스씨는 지역 박물관의 지원을 받아 뉴기니의 일본군이 항복을 선언했던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Burnie Regional Museum’,
태평양전쟁 종전 75년 전시회 마련
지난해 윈터씨로부터 사진을 기증받은 ‘Burnie Regional Museum’은 1천200장의 전쟁 사진 가운데 일부를 선정, 태평양전쟁 종전 7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중에는 일본군 사령관 하타조의 모습 등 귀한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Burnie Regional Museum’ 큐레이터 조지아 웨이드(Georgia Wade. 사진)씨. “버트 윈터씨가 박물관에 기증한 30만여 장의 사진은 버니 지역 역사에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사진 : ABC 방송
이를 준비하는 박물관의 큐레이터 조지아 웨이드(Georgia Wade)씨는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박물관이 임시 폐쇄 상태이기에 다음달(9월) ‘버니 공공도서관’(Burnie Library)에서 일부를 선보일 것”이라며 “이 전시에는 윈터씨가 사용했던 카메라도 포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웨이드씨는 이어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부대 병사들의 일상생활, 윈터씨가 임시로 사용하던 초가지붕(thatched roof)의 스튜디오 등 흥미로운 이미지가 많다”고 소개했다.
윈터씨의 태평양전쟁 관련 사진 중에는 당시 뉴기니의 전선 후방에서 생활했던 병사들의 모습들도 많다. 사진은 마치 물에 빠진 모의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듯한 모습으로, 나체로 찍힌 것이 흥미롭다. 윈터씨의 기증된 사진들에는 해당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첨부되어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사진 : Burnie Regional Museum / Bert Winter Collection
윈터씨가 태평양전쟁의 뉴기니 전장을 담은 사진 가운데는 호주의 해변인명구조(surf lifesaving) 문화를 보여주는 듯한 이미지도 있다. 웨이드씨는 “한 사진은 물에 빠진 모의 환자에게 소생술 시범을 보이는 듯한 병사의 모습을 담고 있다”며 “흥미롭게도 이들은 나체로 촬영됐다”고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윈터씨가 기증한 사진들 가운데 상당수는 해당 사진에 대한 설명이 첨부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나체로 심폐소생술을 하는 듯한 이미지도 마찬가지로, 웨이드씨는 “이 사진이 어떤 장면인지는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kevinscabin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