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와 중국간 자유무역협장이 체결된 이후 지난 6년 사이, 중국은 호주의 가장 큰 교역국으로 부상했으며 호주의 대중 수출 의존도 또한 높아졌다. 하지만 외교적 문제에서는 무역거래만큼 긴밀하지 못했으며,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갈등의 강도를 더하고 있다. 사진 : ACB 방송
집권 자유-국민 연립의 대중국 정책에 야당 동조, 중국의 ‘일대일로’ 경계
ABC 방송 시사 프로그램 ‘Insiders’ 분석... ‘기존 무역 관계는 지속’ 원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국제적 조사를 지지한 호주에 대해 중국이 무역보복을 단행하고 있다. 중국이 소고기 수입을 금지한 데 이어 호주산 보리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또한 와인수입을 금하고 중국인의 호주 유학 및 관광도 제한했다.
육류, 보리, 와인 생산자들에게는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겠지만 호주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한 번도 강해진 적이 없다.
양국간의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중국 당국은 호주의 (무역재개) 요청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반면 호주의 자원에 대한 중국의 수요는 그 어느 때보다 높고 중요하다.
지난 수년 동안 집권을 이어온 자유당(자유-국민 연립)은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호주를 불황으로부터 구한 것은 노동당(당시 집권 여당)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심각한 경기침체에 직면한 현재, 호주는 그때보다 더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의 무역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적이 없었으며 더 가치 있었던 적도 없었다”는 모리슨(Scott Morrison) 총리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중국과의 거래 규모, 이로써 호주가 벌어들이는 달러 측면에서 호주의 대중 무역은 호황임에 분명하다. 동시에 외교 관계는 악화되고 있다.
최근 양국의 갈등 수준이 더욱 높아지는 가운데 지난 8월 30일(일) 호주 공영 ABC 방송의 정치시사 프로그램 ‘ABC Insiders’는 현재의 호주-중국간 갈등을 짚어보는 주제로 관심을 끌었다.
지난 8월 27일(목) 캔버라 내셔널 프레스센터에서 연설하는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의 왕시닝(Wang Xining. 사진) 부대사. 그는 호주가 코로나 바이러스 기원의 국제조사를 지지한 데 대해 “중국인의 감정에 상처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사진 : ABC 방송 뉴스화면 캡쳐
지난 6년 사이 양국은 높은 무역거래를 이어 왔지만, 현재 외교적 문제는 많은 난항에 처해 있다. 6년 전 시진핑(Xi Jinping) 주석은 호주 의회에서 호주와 중국간 자유무역협정을 환영하는(2014년 11월 17일 협상에 합의함) 연설을 했다.
6년이 지난 후인 지난 8월 마지막 주,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 왕시닝(Wang Xining) 부대사는 내셔널 프레스센터 연설에서 호주를 ‘브루투스(Brutus)가 등 뒤에서 시저(Caesar)를 깔로 찌른 것’에 비유했다. 양국의 교역 규모와 달리 외교 관계에서는 상당한 감정이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발언이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사고 판다...
지난 8월 28일(금) 모리슨 총리는 2UE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존 로스(John Laws)와의 대담에서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판매하며 그들 또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이다.
이는 극히 단순한 표현이지만 양국간 거래관계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에 대한 사실적 특징이기도 하다.
엄밀히 볼 때 모리슨 총리가 두 국가의 관계를 ‘상당한 물품을 사고 파는 것’ 이상으로 가장한다 해도 큰 의미가 없다. 이미 두 나라 사이의 불만 리스트는 점점 더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호주에 대해 ‘내정에서 벗어나야 할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국제적 조사를 요구하는 모리슨 정부에 대해 중국 공산당은 격분하고 있다.
반면 호주는 중국의 자치구 중 하나인 신장(Xinjiang)의 위구르(Uighur) 사람들에 대한 인권,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을 대하는 자세, 남중국해에 대한 일방적 영토 주장, 호주와 태평양 지역에서 힘을 과시하는 행태와 사이버 첩보 활동, 경제적 영향력을 활용해 호주에서의 외교적 우위를 점하려는 방식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여기에 시진핑의 야심찬 계획인 ‘일대일로’ 계획(Belt and Road Initiative. BRI)이 또 하나의 악화상황을 만들었다.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총리는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서로가 필요한 물건을 판매하고 사들인다”는 말로 단순화했지만 내부적으로 양국 사이에는 보다 복잡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사진 : ABC 방송 뉴스화면 캡쳐
중국의 글로벌 지배력은 어느 정도?
지난 2013년 시진핑이 이 구상을 내놓은 이래 정치, 경제 분석가들은 아시아-유럽 및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이 거대한 인프라 프로젝트 계획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불길한 의도인지에 대해 논의해 왔다.
BRI를 통해 중국의 경제 및 무역기회 확대, 그리고 그들이 점한 글로벌 우위는 어느 정도일까. 라오스에서 몽골, 파키스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지역 빈곤 국가들 가운데 일부는 이 사업에 참여했다가 막대한 빚을 떠안았으며 이를 상환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스리랑카는 몇 년 전, 인프라 구축을 위해 중국 자본을 썼다가 이를 되갚지 못해 남단의 요지에 자리한 함반토타 항구(port of Hambantota)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넘겨야 했다. 이는 중국의 비평가들이 우려하는 일종의 ‘채무함정 외교’(debt-trap diplomacy)이다.
경제적 부를 감안할 때 호주가 이런 부채 덫에 빠져들 위험은 없지만, 이미 호주는 일대일로 구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실제로 호주는 중국의 이 계획에 대해 국제적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입장이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다.
3년 전, 연방 무역부를 맡았던 스티브 치오보(Steve Ciobo) 전 장관은 중국과의 양해각서에 서명, 호주가 제3국의 BRI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모리슨 총리는 지난 8월 27일(목), 이에 대한 미디어의 질문에 “BRI를 승인한 협정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확실해 보인다.
이 부분에서는 야당인 노동당도 여당과 공조하고 있다. 지난 2017년 노동당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대해 “열린 마음”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노동당 지도자인 앤서니 알바니스(Anthony Albanese) 대표는 시진핑 주석 하에서 중국이 호주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개입을 하고 있다고 경계를 거두지 않고 있다.
빅토리아 주,
2건의 일대일로 사업 계약
하지만 빅토리아(Victoria) 주는 아니다. 다니엘 앤드류스(Daniel Andrews) 주 총리는 중국의 이 사업과 관련해 2건의 계약에 서명했다.
가장 최근의 서명으로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양 실크로드 공동 추진’(Jointly Promoting the Silk Road Economic Belt and the 21st Century Maritime Silk Road)이라는 제목의 기본 협약(Framework Agreement)은 지난해 앤드류스 주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 체결했다.
공개된 협약 내용은 ‘상호혜택’, ‘협의’ 등에 대한 모호한 언급이 가득한 반면 이를 통해 어느 한쪽이 실질적으로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세부적인 내용은 없다.
지난해 중국의 일대일로(Belt and Road)와 관련, 협약을 맺은 빅토리아(Victoria) 주 다니엘 앤드류스(Daniel Andrews. 사진 오른쪽) 주 총리. 연방정부는 대중국 관련 정책에 한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방침으로, 연방 외교부 권한이 강화될 경우 이 협약도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Chinese Embassy
모리슨 총리는 외교부(Department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DFAT)가 이 협정을 상세히 검토하고 호주의 국익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이를 무효화하기를 원하고 있다.
만약, 현재 의회에 상정되어 있는 ‘Foreign Relations’ 법안이 승인될 경우 DFAT는 각 주 정부, 지방의회나 공립대학이 외국과 체결한 모든 협약에 대한 거부권을 갖게 된다.
또한 만약, ‘Foreign Relations’ 법안이 승인될 경우 빅토리아 주와 중국간 협약은 DFAT가 ‘Foreign Relations’ 법을 적용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VIC 주 정부 BRI 관여 계획에
‘Foreign Relations 법안’ 카드 꺼낸 연방
이런 움직임을 보인 연방정부의 의도는 명백하다. COVID-19 사태로 일부 주(State)가 경계를 봉쇄한 것에 대해 연방정부의 불만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2차 파동으로 다시금 경계 봉쇄를 결정한, 빅토리아 주 정부에 대한 모리슨 내각의 분노임은 분명해 보인다.
‘Foreign Relations’ 법안은 연방정부가 어느 정도 일부 권한을 재확보하는 수단으로 상정돼 앤드류스 주 총리의 중국과의 거래에 대한 우려를 강조하면서 연방정부와 빅토리아 주 노동당 정부 사이에 쐐기를 박고 있다.
이를 통해 연방정부가 얻는 정치적 혜택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이 법안이 좋지 않은 아이디어라는 의미는 아니다. ‘호주는 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해외 강대국과의 거래를 면밀히 검토하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DFAT에 부여하는 것은 야당인 연방 노동당도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이날 ‘Insiders’는 중국에 대한 호주 정치 지도자들의 의도를 설명한 뒤 “무역은 물론 군사 등 모든 부문에서 중국에 대한 호주의 신중하고 방어적 접근방식에서 초당파적 지지는 매우 강력하다”면서 “아울러 중국이 호주산 제품에 대한 ‘엄청난’ 구매가 중단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김지환 기자 kevinscabin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