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과 함께 노란 꽃을 피우는 와틀(Wattle)은 호주의 국화(National Flower)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봄꽃이다. 호주인들에게 9월 1일은 와틀이 개화하는 날로 인식되어 있으며, 이로써 봄 시즌이 시작된다고 여긴다. 사진 : Victoria 관광청
110년 전 9월 1일 시작... 식량-약물-목재 자원에 ‘국가적 자부심’ 상징
호주산 아카시아로 불리기도 하는 와틀(Wattle)은 수백 가지 품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덩굴처럼 뻗어 자라는 관목부터 키가 큰 나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꽃은 한결같이 노락색 무리로 피어나 호주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호주 원주민들은 이 와틀 씨앗을 불에 볶은 뒤 갈아 입자가 굵은 가루로 만들었으며, 이를 빵처럼 만들어 먹었다. 와틀 씨(wattleseed)는 단백질 및 불포화지방산이 다량 함유하고 있어 원주민들에게 중요한 식재료가 되었던 것이다.
추위에 강한 와틀은 겨울을 견뎌내고 봄이 되어 노란색(또는 황금색)의 꽃을 피우는데, 호주인들에게 있어 9월 1일은 와틀이 개화하는 날이며, 이로써 호주의 봄 시즌이 시작된다고 인식되어 있다.
호주 남동부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와틀은 오래 전부터 비공식 호주의 국화(National Flower) 역할을 했으며 이것이 공식 지정된 것은 1988년이다. 호주 국가대표 스포츠 선수들의 유니폼이 노랑과 초록으로 구성된 것은 와틀의 잎과 꽃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와틀은 국가 문장(Coat of Arms)의 배경이 되고 있다. 각 나라의 국가 문장은 국가적 통일성을 상징하면서 그 권위를 표시하기 위해 제정하는데, 호주 국가 문장을 보면, 와틀을 배경으로 맨 위에 7개의 꼭지점을 가진 별, 그 아래 호주의 6개 주(State)를 상징하는 방패, 양쪽에서 방패를 잡고 있는 캥거루와 이뮤(Emu)가 있다.
와틀은 1988년 호주의 국화로 공식 지정됐다. 이 꽃은 이뮤 등 몇 개의 상징물과 함께 호주의 국가 문장(Coat of Arms)을 이룬다. 사진은 1914년, 와틀 꽃바구니에 호주 국기를 장식한 뒤 이를 판매하는 학생들. 사진 : State Library of South Australia
110년 전인 1910년 9월 1일, 호주 각 도시에서는 처음으로 전국적인 ‘Wattle Day’ 행사가 마련됐다. 물론 국가의 공식 기념일로 제정된 것은 이 와틀이 호주 국화로 지정된 1988년이다. 110년 전의 ‘Wattle Day’는 일부 그룹이 주도한 비공식 기념일인 셈이다.
이 날을 기해 대대적인 이벤트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9월 1일’과 ‘와틀 데이’는 다수 호주인들의 기억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호주 건구기념일이라 할 수 있는 ‘Australia Day’를 대체할 수 있는 날로 여기고, 이를 추진(‘Wattle Day Association’ 주도)하기도 한다.
‘Australia Day’(1월 26일)는 아서 필립(Arthur Philliph)이 영국의 첫 죄수선 제1함대(First Fleet)를 이끌고 지금의 시드니 코브(Sydney Cove)에 도착한 날로, 이날이 호주 국가의 시작(Australia Day)이라는 데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호주의 6개 식민정부가 연방을 구성(1901년 1월 1일)한 날을 실질적인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며, 호주 원주민 커뮤니티에서는 이날(1월 26일)을 ‘침략의 날’로 규정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호주 전역의 일부 지방의회에서는 Australia Day를 인정하지 않고 정부 주도의 세레머니를 하지 않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Wattle Day’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대안이라는 의견이 있다.
와틀을 기념하는 ‘Wattle Day’ 행사가 처음 마련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9월 1일이다. 물론 이는 비공식이었으며, 1988년 국화(National Flower) 지정과 함께 공식 기념일로 제정됐다. 사진은 1910년 전 민간 차원의 ‘Wattle Day’를 기해 와틀 꽃으로 장식한 애들레이드 기차역의 증기기관차. 사진 : State Library of South Australia
‘Wattle Day’의 쇠락과 부활
호주에서 개최된 첫 와틀 주제의 이벤트 중 하나는 1889년 ‘Wattle Blossom Social’이었다. 이 행사는 반이민 민족주의 그룹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이 그룹은 후에 백인 옹호 단체인 ‘Wattle Day League’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수년 동안 ‘Wattle Day’를 지지하는 이들은 진보적인 대의를 내세우고 있으며, 이는 기념일 변경을 주장하는 ‘change the date’ 캠페인 지지로 이어졌다. “호주의 모든 이들이 한 국가 안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축하하는 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I think it is perfectly placed to be a day that all Australians can celebrate all that we have in this country)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1920년대 안작데이(Anzac Day) 기념행사를 지원하고자 애들레이드(Adelaide)의 와틀 정원에 모인 ‘군 어머니회’(Soldiers' Mothers' Association) 회원들. 사진 : State Library of South Australia
‘Wattle Day’ 지지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활발하게 전개된 바 있다. 이들 지지그룹은 적십자(Red Cross) 등의 구호단체에 기부할 기금 마련을 위해 와틀의 잔가지(sprig. 요리 또는 장식용으로 활용)를 판매하기도 했다.
와틀이 국가 주요 기념물에 등장한 것은 1915년 9월 7일로, 당시 호주 총독(governor-general)은 애들레이드(Adelaide, South Australia) 남부의 한 공원에 갈리폴리(Gallipoli) 전투 희생자를 기리고자 마련한 ‘다르다넬스 기념비’(Dardanelles Memorial) 주변을 와틀 나무로 장식했다. 1940년, 이 기념비가 지금의 장소(Kintore Avenue, Adelaide)로 옮겨지기 전까지 그 주변에는 140여 그루의 와틀이 심어져 있었다.
‘Wattle Day’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30년대까지 지속됐으며, 와틀 꽃을 팔고자 가지를 꺾거나 나무를 자르는 행위를 심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시간이 자나면서 대중적 관심은 시들어졌다. 그러던 것이 제1함대 도착 200년을 기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와틀 잎의 짙은 녹색과 꽃의 금색은 1984년 호주 국가를 상징하는 색상이 되었으며, ‘First Fleet’ 도착 200년이 되는 1988년 호주의 국화(National Flower)로 지정된 것이다.
올해 ‘Wattle Day’(9월 1일) 이벤트 일환으로 노란색 빛을 밝힌 캔버라 벌리 그리핀 호수(Lake Burley Griffin, Canberra) 동쪽의 한 상징물. 사진 : Facebook / National Capital Authority
그리고 4년 후인 1992년 9월 1일, 공식적으로 ‘Wattle Day’가 선포됐다. 지금의 ‘Wattle Day Association’은 1998년 캔버라(Canberra)에서 시작됐다.
‘Wattle Day Association’ 회장인 슈제트 서얼(Suzette Searle) 박사는 ‘Wattle Day’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오늘날 이 기념일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동 협회는 올해 기념일이었던 지난 9월 1일(화), 남단 타스마니아의 호바트(Hobart, Tasmania)에서 퀸즐랜드 북부 타운스빌(Townsville, Queensland)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 랜드마크에 노란색 불빛을 비추는 와틀 데이 이벤트를 개최했다.
백인 우월주의 사상을 가진 우파 성향의 민간단체 ‘Australian Natives' Association’(ANA)는 공식 기념일로서의 ‘Wattle Day’ 제정을 지지한 이들이었다. 사진은 단체 기(flag)를 앞에 두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애들레이드의 ANA 회원들. 1924년 촬영된 것이다. 사진 : State Library of South Australia
민족주의와의 연결
1889년 ‘Wattle Blossom Social’의 역할을 이어받는 아이디어는 지금의 ‘Wattle Day’ 기반이 된 ‘Wattle Blossom League’ 회장이었던 윌 소든(Will Sowden)씨에서 시작됐다.
그는 백인 우월주의 사고를 가진 우파 성향의 민간단체 ‘Australian Natives' Association’(ANA)의 애들레이드 지부 부회장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협의회는 호주의 백호주의 정책(White Australia policy)을 지지하고 비유럽 국가로부터의 이민을 반대하는 백인 남성 위주 그룹이었다.
전국에 지부를 두고 있던 이 단체는 2007년, 마지막 하나 남은 지부가 해체되면서 협의회 자체가 없어졌으며, 2015년 캔버라를 기반으로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 서얼 박사는 “ANA와 ‘Wattle Day’의 연관성을 과장해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들은 호주에서 자랑스러워 할 많은 것을 보았고, 와틀은 그 상징”이라는 것이다. 이어 그녀는 “또한 우리가 영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을 때 이들은 ‘호주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덧붙였다.
와틀 꽃무늬로 디자인 된 ‘Princess Highway’ 브랜드의 드레스. 사진 : Princess Highway
와틀의 국민적 인기, 여전히 높아
서얼 박사는 ‘Wattle Day’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국가를 상징하는 이 꽃의 인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런 때문일까. 조만간 새로운 선보이는 100달러 지폐 디자인에는 황금색의 와틀이 눈에 띄게 포함되어 있다.
와틀은 또한 가정용품은 물론 의류의 무늬, 코로나 바이러스를 닮았다 하여 조롱받기도 했던 새로운 국가 브랜드 로고에도 등장한다. 게다가 와틀 씨는 요리재료로 인기를 더하고 있다.
애들레이드 시 의회는 올 회계연도(2020-2021년), 4만3천 달러의 예산을 배정해 도시 곳곳의 공원에 와틀 숲을 조성하기로 했다.
서얼 박사는 와틀의 인기와 관련, “이 꽃은 호주 어느 곳에서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올해 안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100달러 지폐 디자인에는 보다 많은 와틀이 들어 있다. 사진 : Reserve Bank of Australia
새로운 ‘Australia Day’?
현재 ‘Wattle Day Association’는 논란이 늘어나는 ‘Australia Day’의 대안으로 이 기념일을 ‘9월 1일’로 변경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서얼 박사는 “Australia Day는 모든 호주인이 공감하고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고 본다”는 말로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이 제안한 여러 대안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녀는 “Wattle Day가 그 대안에 가장 가까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Australia Day’에 대해 가장 많이 반대하는 이들은 호주 원주민 커뮤니티이다. 원주민 출신의 기독교 지도자 부룩 프렌티스(Brooke Prentis)씨는 “1월 26일은 ‘애도의 날’(day of mourning)이 되어야 한다”는 원주민들의 주장을 다시금 되풀이 했다.
그녀는 “지금의 ‘National Aborigines and Islanders Day Observance Committee. NAIDOC) Week’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주 원주민 문화를 축하하는 주간이며, ‘Wattle Day’는 국가 기념 국경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환 기자 kevinscabin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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