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고 권위의 미술공모인 올해 아치볼드(The Archibald Prize) 수상의 영광은 원주민 예술가인 빈센트 나마짜리(Vincent Namatjira)가 수상했다. 그 동안 원주민 작가들이 이 상의 최종 후보에 오른 적은 수차례지만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은 아치볼드 99년 역사에서 나마찌라씨가 처음이다. 사진 : Art Gallery Of NSW
빈센트 나마찌라, ‘Stand Strong for Who You Are’로 ‘아치볼드’ 수상
알버트 나마찌라의 증손자... ‘아치볼드’ 최종 후보 네 차례만의 최고상 ‘영광’
호주 최고 권위의 초상화 공모인 올해 아치볼드(The Archibald Prize)는 유례 없이 원주민 예술가들이 강세를 보였다. 특히 99년 역사(1921년 시작)의 아치볼드 사상 처음으로 원주민 작가가 상금 10만 달러의 최고 상 수상자로 선정, 화제가 됐다.
‘아렌테’(Arrernte) 부족 출신이자 원주민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가 알버트 나마찌라(Albert Namatjira)의 증손자인 빈센트 나마찌라(Vincent Namatjira)가 원주민 출신 호주 풋볼(Australian rules football) 선수인 아담 구스(Adam Goodes)와 함께 한 초상화 ‘Stand Strong for Who You Are’로 올해 아치볼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올해까지 4회 연속 아치볼드 최종 후보 명단에 올랐으며, 네 번째 만에 수상을 차지하는 한편 100년 가까운 아치볼드 사상 첫 원주민 화가 수상이라는 영예도 함께 가져갔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공식 시상식을 개최하지 못한 가운데 나마찌라씨는 현 거주지인 APY Lands(Anangu Pitjantjatjara Yankunytjatjara)에서 온라인 화상 서비스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수상 소식을 전달받았다. 그는 화상으로 전한 소감에서 “아치볼드를 수상한 첫 원주민 출신 예술가라는 것은 큰 영광”이라 전하면서 “99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덧붙여 백인 위주의 이 상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나마찌라(Vincent Namatjira)씨에게 아치볼드 수상을 안긴 ‘Stand Strong for Who You Are’. 이는 호주 풋볼 선수 아담 구스(Adam Goodes)와 자신을 담은 초상화이다. 사진 : Iwantja Arts 제공
올해 아치볼드 최종심에 오른 웬디 샤프(Wendy Sharpe) 작가의 ‘Magda Szubanski’. 여성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막다 쥬반스키(Magda Szubanski)를 그려낸 작품이다. 사진 : Art Gallery Of NSW
올해 아치볼드 최종 심사 목록에는 전 수상자 루이스 허먼(Louise Hearman), 니콜라스 하딩(Nicholas Harding), 크레이그 루디(Craig Ruddy), 마커스 윌스(Marcus Wills), 웬디 샤프(Wendy Sharpe), 가이 매스트리(Guy Maestri)씨 등 유명 예술가들이 이름을 올렸다.
올해까지 4년 연속 아치볼드 최종 후보에 올랐던 나마찌라씨는 18개월 전인 지난해 5월, 호주 식민지화에 대한 불공정한 격식을 묘사한 ‘Close Contact’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Ramsay Art Prize’를 차지한 바 있다. 이 상은 40세 이하 호주 예술가를 대상으로 하는 미술 공모로, NSW 주립미술관의 연례행사인 ‘아치볼드’에 버금가는 권위를 자랑하며, 우승 작가 상금도 아치볼드와 같은 10만 달러이다.
나마찌라씨는 2018년 처음 아담 구스씨를 만났다. 당시 구스씨는 그가 살고 있는 남부호주(South Australia) 주, ‘APY Lands’의 원주민 예술가 마을인 인둘카나(Indulkana)를 방문, 원주민 자녀들의 문맹퇴치를 촉구한 바 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좋아했던 나마찌라씨는 당시 구스씨와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화가인 처칠 캔(Churchill Cann)의 초상화. 원주민 예술가로 올해 아치볼드 최종심에 오른 샬린 캐링턴(Charlene Carrington)씨의 ‘My Dad, Churchill Cann’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사진 : Art Gallery Of NSW
시드니의 원주민 장로 찰스 마든(Charles Madden)의 초상화. 원주민 작가 데아 퍼킨스(Thea Anamara Perkins)씨가 출품, 최종심에 오른 작품이다. 사진 : Art Gallery Of NSW
원주민 예술가로는 아치볼드 사상 처음으로 ‘Packing Room Prize’를 차지한 메인 와이야트(Meyne Wyatt)씨의 자화상. 와이야트씨 또한 올해 아치볼드 최종심에 올랐다. 사진 : Art Gallery Of NSW
지난 9월 25일(금), 아치볼드 상을 주관하는 NSW 주립미술관 이사회의 데이빗 곤스키(David Gonski) 이사장은 올해 수상자를 발표한 뒤 나마찌라씨의 수상을 축하하는 아담 구스씨의 축하 메시지를 낭독했다. 이 메시지에서 구스씨는 “원주민 출신 예술가로는 처음으로 빈센트 나마찌라씨가 아치볼드 상을 수상하게 되어 매우 감격스럽습니다. 또한 이것이 원주민 예술에 빛을 비춘다는 것에 매우 기쁩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6만 년의 문화와 예술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문화적 지식과 재능을 호주의 모든 지역, 모든 이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2020년은 원주민 예술의 기록적인 해
빈센트 나마찌라씨를 비롯해 원주민 예술가로 아치볼드 최종 심사에 오른 이들은 블락 더글라스(Blak Douglas), 데아 퍼킨스(Thea Anamara Perkins), 타이거 얄탕키(Tiger Yaltangki) 등이 있지만 수상을 차지한 것은 나마찌라가 처음이다.
또한 ‘초상화 대전’인 아치볼드 상 선정에 앞서 발표하는 ‘패킹룸 프라이즈’(Packing Room Prize)도 웡구타-야마찌(Wongutha-Yamatji) 부족 출신인 메인 와이야트(Meyne Wyatt)씨가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 상은 선임된 심사위원이 아닌, 아치볼드를 진행하는 주립미술관 관계자(‘패킹룸’이라는 말 그대로 출품작을 접수받고 이를 프레임하며 벽에 걸어두는 직원들)들이 선정하는 상으로, 상금은 1,500달러이다. 아치볼드의 ‘Packing Room Prize’ 수상도 원주민 예술가로는 와이야트씨가 처음이다.
올해 아치볼드에는 원주민 작가들의 작품이 강세를 보였다. 사진은 케일린 위스키(Kaylene Whiskey)씨의 자화상 ‘Dolly Visits Indulkana’. 사진 : Art Gallery Of NSW
‘Salute of Gentle Frustration’이라는 제목으로 래퍼이자 음반사 대표, 작가인 아담 브릭스(Adam Briggs)를 묘사한 스콧 마쉬(Scott Marsh)씨의 작품. 사진 : Art Gallery Of NSW
블락 더글라스(Blak Douglas) 작가가 묘사한 ‘Writing In The Sand’. 이 작품은 ‘In My Blood It Runs’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 두주안 후센(Dujuan Hoosen)을 그린 것이다. 사진 : Art Gallery Of NSW
와이야트씨는 올해 아치볼드 최종 심사에 이름을 올린 22명의 후보자 가운데 한 명으로, 원주민 후보에는 나마찌라, 와이야트 외 샬린 캐링턴(Charlene Carrington), 케일린 위스키(Kaylene Whiskey. 2018년 ‘John Sulman’ 상 수상자)씨가 포함되어 있다.
작가들이 제출한 작품 가운데는 원주민 유명 인사를 대상으로 한 초상화도 많았다. 래퍼이자 작가인 아담 브릭스(Adam Briggs), 시드니에 거주하는 원주민 장로 ‘엉클 치카’(Uncle Chicka. Uncle Charles ‘Chicka’ Madden. 이 작품은 그의 손녀인 Thea Anamara Perkins씨가 작업한 것이다), 작가인 브루스 파스코(Bruce Pascoe) 등 원주민 인사 10명의 초상화가 출품됐다.
시드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블락 더글라스(Blak Douglas. ‘Adam Hill’로 불리기도 한다)씨는 10대의 아렌테 부족 출신 소년, 가르와(Garrwa) 부족 치료사, 사회활동가 두주안 후산(Dujuan Hoosan. ‘In My Blood It Runs’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 주인공)의 초상화 작품을 출품했다.
작가 브루스 파스코(Bruce Pascoe)를 그려낸 크레이그 루디(Craig Ruddy)씨의 작품 ‘Dark emu’. 사진 : Art Gallery Of NSW
시드니 기반의 원주민 예술가 토니 알버트(Tony Albert)씨가 그린 빈센트 나마찌라(Vincent Namatjira)의 초상화. 알버트씨는 올해 원주민 작가로는 처음으로 NSW 주립미술관 이사회 임원으로 지명됐다. 사진 : Art Gallery Of NSW
더글라스씨는 덩가티(Dhungatti) 부족과 아일랜드계 호주인의 자녀이다.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및 사진을 전공했으며, 순수예술은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는 지난 2015년 처음으로 아치볼드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그가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은 올해로 네 번째이다.
주립미술관도 시대변화 반영...
올해 처음으로 원주민 출신 이사회 임원 지명
원주민 예술가들의 두드러진 활동 이외 또 하나의 변화는 NSW 주립미술관 개관 140년을 맞는 올해, 미술관 이사회에 퀸즐랜드 북부 타운스빌(Townsville) 출신의 원주민 작가로 시드니에 거주하는 토니 알버트(Tony Albert)씨가 이사로 지명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이사회 임원 지명에 대해 “그 테이블에 내가 앉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라며 “이 궤적(원주민의 임원 역할)이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알버트씨는 지난해 빈센트 나마찌라씨가 아치볼드 출품을 위해 작업한 초상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나마찌라씨의 이번 수상에 대해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아치볼드 역사에서 원주민 예술가는 많은 수상 기회가 있었다”고 언급한 그는 “그러나 우리는 (좋은 작품을) 보여줄 수 있지만 (영광의 박수를) 들을 수는 없었다”며 “이번 수상은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아치볼드 수상자 발표에 앞서 선정되는 올해 ‘Wynne Prize’ 수상작 ‘Tjoritja’(West MacDonnell Ranges, NT). 이 상은 풍경화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사진 : 사진 : Art Gallery Of NSW
‘Wynne Prize’와 함께 또 하나의 시상 부문으로 특정 주제나 장르, 벽화 프로젝트 작품에 수여하는 ‘Sulman Prizes’는 마리킷 산티아고(Marikit Santiago)씨의 작품 ‘The divine’(사진)이 차지했다. 사진 : Art Gallery Of NSW
올해 아치볼드 수상자에 앞서 발표된 올해 ‘Wynne Prize’는 원주민 아란다-루리짜(Aranda-Luritja) 부족 작가인 후버트 파레룰짜(Hubert Pareroultja)씨의 ‘Tjoritja’(West MacDonnell Ranges, NT)가, ‘Sulman Prize’는 멜번 태생의 마리킷 산티아고(Marikit Santiago)씨가 출품한 ‘The divine’이 차지했다.
매년 아치볼드와 함께 진행되는 ‘Wynne Prize’(상금 5만 달러)는 풍경화를 대상으로 선정하며 ‘Sulman Prize’(상금 4만 달러)는 특정 주제나 장르, 벽화 프로젝트 작품에 수여된다.
한편 올해 ‘Archibald’, ‘Wynne’, ‘Sulman’ 수상작 및 아치볼드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 전시는 9월 26일(토)부터 공식 오픈됐다.
김지환 기자 kevinscabin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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