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희주가 전하는 이야기]
한인 2세 정희주 씨가 한국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정상에 선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는 꿈이 있기에 힘든 길을 묵묵히 걷고 있습니다.
오랜 만에 정희주씨가 고향 밴쿠버를 찾았습니다. 오는 27일 포트무디에 있는 인렛 시어터 (Inlet Theatre)에서 교민들을 만날 계획입니다. 그녀에게 노래는 어떤 의미일까. 정희주씨가 전하는 노래 이야기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MBC 위대한 탄생 출연 당시의 정희주 모습
1997년 초등학교 5학년의 저는 가족과 함께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여정의 종착지는 바로 캐나다 밴쿠버였습니다.
8월의 햇살이 내리쬐는 푸르른 잔디와 여유로이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어린 나이였지만 외국 영화에서 봐오던 풍경들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마냥 좋았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 가끔씩 떠올리던, 정말 좋았던 그 곳이 제 삶의 새로운 터전이 되었습니다. 이민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은 큰 설렘을 가져다 주었지만, 딱 한 가지 걸렸던 것은 가수가 되고자 키워오던 저의 꿈이 멈춰 버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떠나는 우리 가족, 우리를 떠나 보내는 친지 가족들이 아쉬움의 눈물로 헤어짐을 맞이하고 있던 김포공항의 그 순간에도 저는 마치 독백을 하듯 성인이 되어 꿈을 이루러 이 땅에다시 올 것을 되뇌고 있었으니 정말 제대로 중2병을 앓고 있던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나름 꿈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캐나다에서의 학교생활은 영어가 부족했던 것 말고는 너무나도 즐겁고 만족스러웠습니다. 모르는 단어투성이라 시험 공부를 하고 싶어도 2배의 시간을 들여 해석부터 해야 했지만 그 마저도 마냥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진짜 즐거움은 사실 노래로서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식 음악 수업 이기도 한 교내 합창단에 들어갔고, 이내 ‘노래 잘 하는 아이’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노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100% 참여했고,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행해진 합창단 순서에서 솔로 파트를 맡아 노래를 하며 더욱 더 특별하고 뜻 깊은 졸업을 맞았습니다. SFU로 진학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좋은 학교에 합격한이상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도록 해야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첫 학기가 끝난 그 연말에 있었던 ‘한인 송년의 밤’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당시 심사위원으로 계시던 김기승 뮤지컬 감독님께 캐스팅이 되어 이듬해 ‘한인 문화의 날’ 행사 중 뮤지컬 ‘Rush’를공연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마음 맞는 한인 친구들과 밴드 ‘BeyondS’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오전에 학교 수업, 오후엔 파트타임을 뛰고, 뮤지컬 연습을 갔다가 밴드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덧 해가 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시험기간 중에 이날은 학교에서 밤을 새며 공부를 하고 있다가 문득 똑같이 밤을 새며 밴드와 연습했던 어제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잠시 잊고 있던 나를 위한 진짜 행복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전 결국 다시 꿈을 좇기로 결정했습니다.
부모님께 너무나도 죄송스러웠지만 이윽고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간 파트타임을 세 군데씩 돌며 비용을 마련하였고, 밴드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밴쿠버와의 작별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포공항에서 일시정지 되었던 제 꿈을 다시 만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밴쿠버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