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유감
지난주 호주 언론에 ‘과로사(kwrosa)’란 말이 등장했다.
호주 공영 ABC는 지난 8월 27일 ‘팬데믹(Pandemic) 기간 중 한국 배달 근로자 20명 이상 과도한 노동으로 사망’이란 제목으로 배달 근로자들의 힘든 삶을 소개하면서 이 말을 인용했다. 이 말이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사망(death from overwork)”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ABC는 한국의 배달 근로자가 죽음에까지 내몰리면서도 배달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40대 배달원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소개했다. “내(배달원)가 벌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이 굶어요. 그래서 나는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죠.”
가족의 생계는 제대로 살기 위해서인데, 그것을 위해 목숨이 걸린 위험도 감수하며 일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호주 언론에 소개된 것이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드물었던 배달 서비스가 최근 호주인들에게도 친숙해지고 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특히 음식 배달은 팬데믹 기간 중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018년 배달 앱 사용자 수는 330여만 명이었으나, 2019년에는 380여만 명, 지난해에는 550여만 명으로 급증했다. 최근 5년간 배달 시장 규모의 연간 성장률은 43.8%라고 한다.
우버 잇츠(Uber Eats), 딜리버루(Deliveroo), 메뉴로그(Menulog), 도어대시(Doordash) 등 다양한 음식 배달 앱을 통해 한 달에 평균 40~50달러를 쓴다고 한다. 특히 MZ세대는 10명 중 7명(73%)이 이러한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 문화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는 호주인들에게 한국 배달 근로자들의 ‘과로사(kwarosa)’는 어떻게 이해될까? 반도체와 자동차에 이어 신성장 동력산업에서도 세계적 수준이고 BTS로 대표되는 ‘케이 팝(K-POP)’에 세계가 열광하는 나라의 이미지와 걸맞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어느 사회나 명암(明暗)은 있지만, 경제는 선진국 수준을 자랑하면서도 사회 곳곳에서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한 일들이 여전하다면 정상이 아니다. 법정 근무시간과 최저임금 등 노동자에 가장 시급한 기본마저 정치 이슈로 싸움거리가 된 것도 문제다.
‘1인당 소득 3만 불 시대’ 자랑에 앞서 모든 사람이 제대로 일하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는지 돌아볼 때다. 호주의 배달 서비스가 배달비가 한국과 비교해 비싸고 시간도 더 걸리지만, 노동시간과 임금 등 기본에 충실하다. 총알 배송, 당일 배송, 로켓 배송으로 소비자인 나와 우리가 기분 좋아할 때 누군가는 그걸 위해 목숨까지 내건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의 음식 배달 거래액은 20조1005억 원으로 2019년과 비교해 43.5%가 증가했다. 동시에 빠른 배송과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교통위반도 1.5배로 늘어나고 난폭 과속 운전도 문제로 지적됐다. 배달기업에 소속된 기사들의 과도한 업무 환경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주 한국에서는 젊은 남성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이 든 배달원에게 막말하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마스크를 내리고 있던 이 남성은 배달원이 ‘마스크를 똑바로 쓰라’고 요구하자 “못 배운 ××”라고 욕을 했다. 또 배달원을 따라 다니며 “그러니까 그 나이 처먹고 나서 배달이나 하지. ×× ××”라고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
이 남성과 배달원이 첫 대면에서 ‘안녕하세요’란 인사를 나눴더라면, 호주에선 보편적인 이런 인사가 한국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상황이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수도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인사도 없이 지적부터 하니 기분이 상했을 수 있다. 그래도 욕은 안 된다. 배달이 천한 일인 듯 모욕한 것은 더 문제다.
이 남성도 연령대로 봐서 평소 배달을 자주 이용하고 있을 듯싶다. 그런데 그가 ‘천(賤)하다’고 생각한 배달원의 수고로 자신이 편안하게 배달 서비스를 즐기고 있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한 것 아닐까? 그들의 수고를 한 번만이라도 생각했다면 ‘그 나이 처먹고 배달이나 하지’란 말은 안 했을 것이다.
내가 누리는 편리함이 누군가의 불공정한 희생으로 보장되는 것이라면 공정하지 않다. 배달 근로자의 상황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할 수도 있으나, 그들도 공정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에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수고로 내가 편할 수 있게 됐다는 감사의 마음은 상식이다.
공정과 상식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모두 외면하고 있었거나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불공정이고 몰상식이다. 내 일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들의 노동 환경에도 관심을 갖는게 공정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그게 함께 사는 세상이다.
김인구 gginko78@naver.com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편집위원장
전 호주한국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