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인들은 높은 생활수준과 보편적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누리고 있으며 국민들의 기대수명과 사망률 측정에서 높은 순위를 보이지만 개개인의 건강 측정치 이면에는 깊은 보건 불평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 : Nine Network 방송 화면 캡쳐
부유-빈곤 계층의 보건 격차 상당... 전염병 사태와 함께 더욱 부각
호주인들은 다른 국가에 비해 공공보건 부문에 있어서는 운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다. 높은 생활수준과 보편적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누리고 있으며 전체 국민의 기대수명과 사망률 등의 측정에서 일관되게 높은 순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건강에 대한 총체적 측정치, OECD 국가 내에서의 높은 순위 이면에는 오랜 보건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부유층과 빈곤계층 사이의 건강 결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COVID-19 전염병 사태를 통해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NSW 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문화-언어 면에서 가장 다양한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시드니 서부 및 남서부의 저소득 계층 거주 지역에 불균형적 영향을 미쳤다. 이 지역의 경우 사람들은 집에서 일할 수 없는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재택근무가 불가능한)이 많으며, 좁고 과밀한 공간에 거주할 가능성이 더 높다. 게다가 공공보건 서비스 이용시 언어 장벽에 직면할 가능성 또한 크다.
올해 중반기, ‘델타’ 변이로 인한 2차 감염자 파동 속에서 드러난 NSW 주의 이 같은 불평등 상황은 지난해 빅토리아(Victoria) 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 바 있다. 멜번의 9개 공공주택 단지(소수민족 이민자가 유사하게 집중되어 있는)가 무더기 바이러스 감염지라는 이유로 강제 폐쇄되었던 것이다.
시드니대학교 사회과학자인 줄리 리스크(Julie Leask) 교수는 “더 가난하고 문화적으로 더 다양한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사회가 COVID-19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며, 우리 사회의 깊은 보건 불평등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녀는 “팬데믹 사태는 빈곤과 사회적 소외가 실제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모든 대중들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건강은 부와 뗄 수 없는 관계
호주에서의 보건 불평등은 원주민 커뮤니티, 지방 및 먼 내륙지역을 포함해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지역 거주민들에게 가장 심하게 느껴진다.
당연하게, COVID-19는 이미 높은 비율의 만성질환, 거주공간 과밀화가 우려되는 NSW 주 서부 내륙의 원주민 커뮤니티, 보다 높은 공공 의료가 필요한 교도소 인구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까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호주 사회의 보건 불평등은 바이러스 대유행을 계기로 더욱 불거지고 있다. 바이러스 억제를 위한 봉쇄 조치가 10주 이상 이어진 광역시드니의 경우 COVID-19는 문화-언어 면에서 가장 다양한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서부 및 남서부 지역의 저소득 계층에 불균형적 영향을 미쳤다. 사진은 한 슈퍼마켓 앞에 놓여진 출입기록 바코드. 사진 : ABC 방송 뉴스 화면 캡쳐
건강 격차의 이유는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대체로 좋은 주거지와 적절한 소득, 교육기회, 사회적 지원 등의 자원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요소들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social determinants)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체 인구에 걸쳐 변화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건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직위가 낮을수록 질병, 장애 및 조기사망의 위험은 커진다.
NSW대학교 공공보건 연구원인 벤 해리스-록사스(Ben Harris-Roxas) 박사는 “장점과 단점에 대한 측정이 따로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COVID-19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이들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문제와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무리를 사냥하는 것과 같다”는 그는 “예를 들어 교육은 삶의 기회에 영향을 미치고 가구 구성에 영향을 미치며 경찰-사법 시스템 참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빈곤, 이동성, 고밀도의 가구
일반적으로 중간 가계소득이 낮고 교육 수준 또한 높지 않은 서부 및 남서부 지역에서는 많은 거주민들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리지 못한다. 상당 비율의 거주민이 고령자 요양 시설, 제조, 운송, 건설, 소매업 등의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건강 격차의 이유에 대해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대체로 좋은 주거지와 적절한 소득, 교육기회, 사회적 지원 등의 자원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요소들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social determinants)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건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사진 : ABC 방송 뉴스 화면 캡쳐
시드니 서부 지역에 거주하는 해리스-록사스 박사는 “사람들이 종종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시드니 남서부 거주민의 경우, 실제로 시드니 지역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라며 “그렇기에 이들은 일을 위해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이들 중 상당수는 많은 가족이 한 공간에 살고 있어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다른 가족과 격리되어 지내기가 쉽지 않다. 또한 정부 보조금 지급이 지연되거나 가족부양 비용을 충당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전염병 사태에서 공공보건 명령을 준수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들도 많다.
시드니 남서부에 거주하는 리스크 교수는 “바이러스 대유행 기간 동안 개개인의 사회적-경제적 상황이 간과되었다”면서 “하지만 이 부분은 사람들이 공공보건 규정을 준수할 여력이 있는지 여부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일부 정책이 취약한 지역사회의 위험을 직접적으로 줄일 수는 있지만 변화시키기 어려운 다른 주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어떤 가족은 2층짜리 맨션에서 단 2명이 거주하고, 또 어떤 가족은 10명의 필수 근로자가 넓지 않은 공간에서 살아가며 한 침실에서 2~3명이 잠을 자기도 한다”는 리스크 교수는 “건강의 결정 요인을 바꾸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임”이라고 덧붙였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계층의 경우 COVID-19 상황에서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이유는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고 주거지 또한 과밀하여 바이러스 감염시 격리가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캔버라의 한 거리에 마련된 팬트리(pantry)에 식료품을 넣어놓는 여성. 바이러스 억제를 위한 봉쇄 기간 중 필요한 이들이 꺼내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진 : ABC 방송 뉴스 화면 캡쳐
더 악화되어 가는 불평등
호주 사회복지협의회(Australian Council of Social Services)와 NSW대학교의 2020년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COVID-19전염병 사태 이전, 호주 상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은 하위 20%에 비해 6배가 높았다.
보고서는 이 소득격차가 지난 20년 동안 크게 확대되어 왔으며 팬데믹 상황에 따른 고용의 영향으로 이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특히 “COVID-19는 저임금 근로자, 여성과 청년 및 그 가족의 소득에 불균형을 초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 영향은 재정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다. 지난 8월, NSW 주 정부는 바이러스 억제 일환으로 COVID-19 감염자 발생 핫스폿 지역에 대해 야간 통행금지를 비롯해 야외 운동 1시간 이내 등을 포함한 추가 제한 규정을 도입했다.
리스크 교수는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엄격한 제한 규정은 이미 보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취학연령 자녀가 있는 가정의 경우 가정 내의 제한된 자원과 공간으로 인해 원격 학습 자체가 상당한 도전이 될 수 있다. 리스크 교수는 “일부 공공보건 명령이 어떤 가정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만 당국은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취약한 가족, 치료가 필요한 아이와 고군분투하는 것, 좁은 주거공간에 갇혀 가족 모두 편히 쉴 수 없는 상황 등이 그것”이라는 얘기다.
봉쇄 조치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자원이 제한적이고 야외 공간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붐비는 주거지 사람들이 가장 심하게 느낄 가능성이 있다.
문화적 장벽과 건강 관련 지식
이번 팬데믹 사태는 또한 취약 영역 및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는 건강 관련 문해 능력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도시에서 가장 영향을 받는 일부 지방정부 구역(Local Government Area. LGA)에서는 60% 이상이 가정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해리스-록사스 박사는 “시드니 남서부 및 서부의 경우 문화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많은 수의 이민자 커뮤니티가 특징”이라고 말했다.
다문화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건강 관련 메시지의 정확하고 빠른 전달은 전염병 사태 시기에서 특히 중요하다. 시드니 지역에는 250개 이상 언어를 사용하는 다민족 이민자 그룹이 있다. 사진 : Sonia Di Mezza
취약 계층을 더욱 불리하게 만드는 것은 언어장벽(정부의 번역 지연으로 도움이 되지 않음)만이 아니다. 더 불리한 이들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도 낮은 경향이 있다.
해리스-록사스 박사는 “불리한 점은, COVID-19 감염여부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거나 추가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의 작업을 수행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반면 고소득 계층에서는 건강 관련 문해율이 높고 ‘건강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동기를 부여’하며 일반적으로 더 쉽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낮은 건강 문해력은 또한 백신접종을 꺼리는 이들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리스크 교수는 포괄적이고 시기적절하며 각 언어로 정확히 번역된 공공보건 메시지가 다양한 이민자 커뮤니티에 잘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공공보건 메시지와 번역을 확대하는데 도움을 받고자 다문화 커뮤니티 지도자들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지만 급여가 제공되지 않는다”며 “이는 당연히 제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입장에서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커뮤니티 강점 활용해야
해리스 록사스 박사는 시드니 남서부 및 서부 지역 사람들이 직면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각 커뮤니티가 COVID-19 확산을 최소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광역시드니 일부 위험 지역에 대해 NSW 주 당국은 공공보건 규정 준수 촉구를 위해 경찰 인력을 확대하고 군인까지 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강압적 조치는 공공보건 대응의 중심이 아니라 '추가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시드니 서부의 한 서버브 중심가를 순찰하는 경찰들. 사진 : Nine Network 방송 화면 캡쳐
그런 반면 제한 규정 준수를 유도하기 위한 경찰과 군인의 과중한 배치가 때로는 공공보건 노력과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리스크 교수 또한 같은 의견으로, “치안 유지는 공공보건 대응의 중심이 아니라 ‘추가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리스 록사스 박사는 “제한 규정 준수를 감시하고자 경찰 순찰을 늘리고 군인을 투입하는 강압적인 조치보다 상호 연결을 포함하여 재정 지원을 제공하고 지역 인구의 강점을 활용하는 것이 규정을 지켜나가게 하고 긍정적 건강 결과를 개선하는 데 있어 더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COVID-19 감염자 확산에 대응하는 것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건강증진에 있어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우리가 실제로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키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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