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예지(仁義禮智) … ‘사람’의 실종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된 한국 드라마 시리즈 ‘D★P’는 병영 폭력 문제를 다뤘다. 탈영병을 쫓는 군무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가 겪는 다양한 사연 속에서 특히 피해자가 제대한 가해자를 찾아가 살해하려는 부분은 충격을 주었다. 체포조가 다양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설득하려 했으나, 가해자에 대한 그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입양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다가 숨진 정인이 사건은 아동 학대의 심각함을 드러냈다. 양부모는 물론, 친부모에게 학대당한 아이의 사연도 연이어 공개됐다. 신체 폭력, 성폭력, 정서 학대 등을 당하는 아이들이 하루 평균 수십 명에 달한다.

올해 초 유명 여자배구 선수 자매가 과거 학교 폭력 사실이 드러나 배구계에서 쫓겨났다. 두 선수는 팀의 에이스이자, 국가대표급 선수라는 점에서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본인들은 폭력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일부 과장된 내용이 있다며 억울하다고 항변했으나 여론은 싸늘했다.

아동 학대와 가정폭력, 학교 폭력, 병영 폭력은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과 방관 속에서 자행된다. 이웃의 부모, 친구와 교사(학교), 동료 병사와 간부들이 내 일처럼 나섰다면 이처럼 심각하진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 예방과 사후 처리 지침이 있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건 발생 후 드러나기도 했다.

 

맹자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인간 본성의 ‘네 가지 덕(四德)’이라 하여 성선설(性善說)의 근거로 삼았다.

인(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남의 불행을 불쌍하게 여기고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서 구하려 하는 마음이 곧 인(仁)이다. 아동 학대와 학교 폭력, 병영 폭력을 보고도 주변에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결국 측은지심이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다. 뒤늦게 분노하는 것은 ‘인(仁)’이 아니다.

 

최근 네이버 등 포털 검색 순서 상위에 올랐던 ‘제주 오픈카 사건’.

연인 사이인 A와 B씨는 지난 2019년 11월 ‘300일 기념’으로 제주에 여행을 갔다. 이틀째 되던 날 A씨가 음주 상태에서 오픈카를 과속으로 몰아 경운기를 연이어 들이받아 안전띠를 매지 않았던 연인 B씨가 차 밖으로 튕겨 나갔다. 이 사고로 머리를 다친 B씨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이듬해 8월 숨졌다.

검찰은 “B씨가 안전띠를 매지 않아 차량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A씨가 제한속도 50km 구간에서 시속 100km가 넘는 과속 운전을 하는 등 고의로 사고를 냈다”며 살인죄를 적용했다.

법정에서 B씨의 유가족은 A씨가 입원 중인 B씨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며 엄벌을 요구하고 있으나, A씨의 법률대리인은 “음주사고는 인정하지만, 살인 혐의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라고 항변하고 있다.

고의든 실수든 자신의 잘못으로 연인이 사망했음에도 미안함은 없고 오직 법대로 하겠다는 건 지나치다. 맹자가 말한 두 번째 덕목인 ‘의(義)’가 보이지 않는다. 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즉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법은 선악을 가려주진 못하지만, 판결로 인해 선악을 느끼도록 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못하면 ‘의(義)’가 실종된 것이다.

딸의 인턴십 경력과 표창장 등을 허위로 만들어 대학 입학 서류로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 법정에 선 엄마에게서도 수오지심을 찾을 수 없었다. 오죽 하면 1심 법원이 판결문에서 “피고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가했다”고 적었을까.

 

미디어아트 작가인 현직 대통령 아들은 최근 1년 사이에 세 차례에 걸쳐 1억 원에 가까운 지원금을 받았다. 지원한 곳이 지자체나 공공 단체들이어서 특혜 논란이 일자, 그는 “전시 한번 할 때마다 날파리가 꼬인다”며 자신을 비판한 언론 보도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코로나로 인해 개인은 물론 소상공인의 피해가 이만저만 하지 않는 상황에서 비록 지원금을 받을 자격 요건이 되었다 해도, 사양하는 게 대통령의 아들로서 온당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자격이 되어서 지원받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대응하거나 비판여론에 비아냥으로 일관하는 건은 예(禮)가 아니다. 예(禮)는 사양하는 마음(사양지심 辭讓之心)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맹자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시비지심 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지혜로움(智)의 극치”라고 했으나, 요즘 이마저도 진영 논리에 의해 보기 어렵다. 합리적 의심이나 보편적 상식도 진영에 따라 나눠질 정도다. 내 편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모함이나 억측이고, 상대에 대한 억측은 합리적 의심으로 포장된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이런 현상은 극에 달한다.

맹자가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다.

 

김인구 / 세계한인언론인협회 편집위원장, 전 호주한국신문 편집인

gginko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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