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문화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고려인 동포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이 있다.
동포 화가 문 빅토르씨가 그 주인공. 1977~97년까지 무대그림 등을 그린 국립극장 주임 화가를 역임한 그는 이들의 초상화를 그려 지난 6일 알마티한국교육원에서 개최된 제97주년 3. 1절 기념행사장에 전시하였다.
"이 초상화에 그려진 위인들은 내가 각기 다른 시기에 개인적으로 만나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입니다. 1974년 '카작필름'(카자흐스탄국립영화촬영소) 스튜디오에서 약 1년간 일하면서 최국인 감독을 만났고, 작가이자 시인인 양원식을 만났으며, 스튜디오 복도에서 김종훈 감독을 만났습니다. 1980년대에는 극작가 한진과 친하게 지냈으며 그의 희곡 작품에 무대장치를 설치했습니다. 또한 철학자 박일, 작곡가 정추, 기자 정상진과도 가까이 지냈습니다. 모스크바에서는 허웅배와 리경진을 만나 교류했다"고 문씨는 말한다.
문씨가 언급한 이 분들은 해방직후 소련당국에 의해 소집되어 북한 정권수립을 도운 분들이거나 '모스크바 북한유학생 망명사건'의 주인공들이다. 전자는 '소련파'로 알려져 있고 후자는 '최초의 반 김일성 망명사건'으로 세상에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문화, 예술, 교육분야에 종사하면서 소련의 한글문학을 유지,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분들이라는 점이다. 고려극장의 극작가, 기자, 교수, 영화감독 등 직업은 다양했지만 이들은 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조치 후 급격하게 모국어를 상실해 가던 당시 고려인 동포사회에 유일한 한글문학 창작 그룹이었다.
까레이스키 희곡 문학을 대표하는 한대용선생은 평상 고려극장 극작가로 사셨다, 시인이자 고려일보 기자로 한글문학의 창작활동을 꾸준히 한 양원식, 김일성종합대학 부총장을 역임한 전 카자흐국립대학교 철학교수 박일, 전 북한 문화선전성 부상을 지낸 영원한 기자 정상진, 그외 김종훈, 리경진 최국인 등등....
그럼, 문씨는 왜 이 초상화 작업을 하는 것일까?
"내년이 고려인 중앙아시아 정착 80주년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명의 고려인 지도자들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마음먹은 후 벌써 3년째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10명을 그렸는데, 남은 기간동안 10명을 더 그릴 작정입니다. "라고 말하는 그는 "올 가을쯤 한국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씨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평생을 고향을 그리워하며 타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중 한 분인 한대용선생의 단편소설 <그 고장 이름>에 “모든 일에 시작과 마지막이 중요하듯 사람도 마찬가지일 게야. 죽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 사람이 태어난 곳은 고향이라는데 사람이 묻히는 땅은 뭐라고 하느냐? 거기에도 이름이 있어야 할 거야. 고향이란 말에 못지않게 정다운 말이 있어야 할 거야….” 라는 대목이 나온다. 문씨는 고려인 초상화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고려인의 존재를 모국에 알리는데 미력이나마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어 : 김상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