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극적으로 변화하였다. 북한의 개방을 전제로 한 ‘통일대박론’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 직후 더 이상 김정은 체제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레짐체인지(regime change)’로 전환되었다. 한국과 미국의 해병대가 북한에 대한 상륙작전 다음 단계인 내륙작전까지 감행할 계획이며 김정은을 제거하는 다양한 작전 시나리오마저 등장하고 있다.
‘통일대박론’이든 ‘레짐체인지’이든 분명한 것은 북한의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대박론’은 북한의 개방을 전제로 한 것이며 ‘레짐체인지’는 김정은 제거를 목적으로 한다. ‘통일대박론’은 실패한 정책으로 결론 났지만 ‘레짐체인지’ 또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대외전략은 노출되는 순간 상대방이 경계하기 때문이다. 우리정부의 대북정책 전략은 순진한 기대(통일대박론)에서 극단적 기대(레짐체인지)로 바뀌고 있지만, 이 수를 김정은이 뻔히 알고 있다. 자신이 군사적 목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김정은이 그대로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김정은이 암살되면 자동으로 핵을 쏘는 프로그램이 이미 설정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레짐체인지’는 김정은만 제거하면 절대 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쌍수를 들고 한국과의 평화적인 통일을 원할 것이라는 극단적 기대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북한의 김정은 체제는 단순한 폭력과 억압만으로 지탱되는 정권이 아니다. 종교에 가까운 주체와 수령 사상이 북한 주민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김정은과 운명을 같이하는 노동당과 군부의 핵심세력은 백만 명이 넘는다. 설령 군사적으로 김정은을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당장 통일과 한반도의 안정은 오히려 멀어진다. 레짐체인지를 시도한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의 현실을 보면 김정은이 사라진 한반도에는 내전과 난민 사태, 한국경제 리스크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가 반대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대한 제재는 당연하다.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를 우리 마음대로 변화시키려고 하거나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김정은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인 힘은 북한 주민들에게 달려있다. 김정은 체제는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 변화는 외부에서가 아니라 내부에서 언젠가 터져 나올 것이다. 동유럽과 소련이 무너진 것은 미국의 봉쇄정책이 성공해서가 아니다. 생산성에 기초하지 않는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동유럽과 소련은 자연스럽게 붕괴되었다. 만약 그때 미국과 서방이 적대적이고 인위적인 레짐체인지로 대응하였다면 동유럽과 소련의 집권자는 외부 위협을 명분으로 시민들의 반항을 억누르고 집권을 연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정은이 하는 꼴이 보기 싫다고 김정은 체제를 어떤 식으로 외부에서 변화시키는 것은 오히려 김정은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명분이 된다. 김정은은 3차 핵 실험을 계기로 장성택 등 개혁파들을 처형하는 명분으로 삼고 권력을 강화하였다. 설령 김정은 레짐체인지가 성공하였다고 하더라도 김정은이 사라진 북한은 통일한국이 아니라 지상의 인간지옥인 시리아가 될 가능성이 많다. 김정은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북한 주민들에게 달려있는 것이고, 여기에는 시간이 걸린다.(윤성학 객원논설위원, 고대교수)
동감입니다. 뭐 미국의 북한 침공 시나리오는 새삼스럽지 않은 거죠. 1992년 수정한 '작계 5027-92'와 최근의 5015까지...
최근 듣기에도 섬뜩한 '김정은 참수작전'이니 '체제 교체 시나리오'니 하는 것은, 그동안 상정해온 최악의 경우의 수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에 불과한 거겠죠. 여차하면 한순간에 물고를 내겠다는 건데... 북한이 매년 실시하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더욱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고...
마치 헐리우드 영화처럼 미군 특수부대가 김정은 축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북한의 민주정부 수립으로 직결될 지... 언급하신 대로 이라크 침략 이후의 결과가 가져온 교훈으로 보아도 이게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고, 첨예한 이해관계로 얽힌 중.러가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핫바지 국가도 아니고.
우려스러운 것은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 부시 행정부에 일전불사를 외치는 강경파들로 넘쳐났는데요, 현재의 미국 의회와 한국 정부의 분위기가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겁니다. 다가오는 총선을 위해 서슴없이 호전적인 막말을 내뱉는 자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고, 이를 견제해야 할 언론은 오히려 전쟁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고...
서로 선제타격을 외치고, 서로 도발을 비난하면서 호전적인 수사로 넘실거리는 2016년 한반도, 불안에 떠는 국민들만 2년 동안 '전략적 인내'를 해야 할 판이니. 두렵고 떨리는 오늘입니다.